삶(각종 수업 자료)(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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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ㄷ, ㅂ'과 '유오지족(唯吾知足)'
'ㄱ, ㄷ, ㅂ'과 '유오지족(唯吾知足)' “ㄱ, ㄷ, ㅂ, 발음이 부정확해요.” 며칠 전, 시민을 상대로 한 수업 시간이다. 한 분이 내 발음이 부정확하다며 충고한 말이다.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다. 그때는 그냥 지나갔는데 ---줄곧 그 생각이 나 글 한 줄 못썼다. 선생, 그것도 국어 선생이 아닌가. 아무리 줌 수업이라하여 마이크 상태가 그러하다지만, (지금까지 만나는 30년 전,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도 보았다.) 오늘도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ㄱ, ㄷ, ㅂ을 곱씹어 꿀꺽꿀꺽 삼켰다. 문득 책꽂이 옆을 보니 ‘유오지족(唯吾知足, 오직 나는 족함을 안다)’이라 써 붙여 놓은 게 보였다. 살짝 먼지가 앉은 것을 보니 꽤 오래 전인데 왜 써 붙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갑자기 유래가 궁금..
2022.04.22 -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책 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출판사마다 책 내는 족족 죽을 쑤는 판이랍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몇 해 전 고인이 된 꽤 괜찮은 출판인이 생각납니다. 나이는 나보다 적지만 벗으로도 족한 분이었습니다. 책 보는 안목과 책 만드는 장인 정신이 오롯하였지만 살림살이는 빈한하였습니다. 술 한 잔하면 꼭 자기 출판사를 차려 내 책을 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해 봄, 어찌 돈을 마련했는지 노량진 어디에선가 출판사를 차렸다며 나를 불렀습니다. 문패도 없고 그저 책상 하나 덜렁 있는 썰렁한 그 출판사에서 호기롭게 막걸리 한 잔을 건네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조기쯤 보일 무렵 이승을 달리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40 후반쯤일 듯합니다. 그래 뜬금없이 이 좋은 분을 생각하자니, ‘나쁜 놈 ..
2022.04.12 -
<잘려진 벚꽃의 수사학>
한참 눈길이 머물렀다. 인간이란 동물은 참 잔인하다. 며칠만 참으면 되는데 굳이 저 꽃 달린 가지들을 잘라내야 할까? 나무로서는 일 년에 단 한번 맞는 찬란한 봄이다. 불과 며칠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꽃다운 시절이다. 봄꽃은 하나의 어린 줄기가 심한 변형을 거쳐 만들어진다. 벚꽃은 수술과 암술을 모두 갖췄다. 이를 양성화(兩性花)라 한다. 꽃받침·꽃잎·수술·암술이 모두 있으면 갖춘꽃이요, 하나라도 없는 꽃이 안갖춘꽃이다. 안갖춘 꽃이든 갖춘 꽃이든 꽃은 꽃이요, 모든 꽃은 어미로서 꽃씨를 잉태한다. 꽃은 청춘이다. 특히 발그레한 연분홍 양성화 벚꽃을 배경 삼아 찍은 사진에는 늘 웃음기 가득한 싱싱한 청춘 남녀들이 서있다. 이 시절이 인간으로 치면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화양연화(花樣年華)이다. 이제 막 피려..
2022.04.08 -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이런 사람이고 싶다.
얼굴은 두껍고 마음은 시커먼 사람들이 성공한다는 ‘후흑(厚黑)’의 세상이다. 모든 것이 물질에 포위된 이 시대, 문득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이런 사람이고 싶다. 어려운 일이 닥쳐도 큰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고 남 어려움을 지나치지 못하는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지녔지만 내 삶은 강철처럼 굳은 의지로 헤쳐 나가는 사람, 잘못된 이에게는 죽비소리 내는 대나무와 같지만 인간다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환한 웃음을 주는 사람, 남들 대할 때는 부드러운 봄바람이지만 나 자신에게는 가을서리처럼 대하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고 말 한 것은 꼭 지키는 신의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나이를 들수록 나이 값하고 자신을 제어할 줄 알고 욕심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담박한 사람, 남 단점을 들추기 보다는 장점 칭찬하고 내 ..
2022.03.24 -
선인기우도(仙人騎牛圖)를 보며
대선 후, 언론을 절연했다는 이들이 꽤 많다. 심기가 불편해서란다. 세상을 버릴 수 없으니 보고 듣는 것만이라도 막고자 함이다. 나도 TV 선을 묶어버렸다. 가만 생각해보니 '속세의 신선'을 자처함이다. 문득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선인기우도'가 떠오른다. 선인기우도仙人騎牛圖 탕건을 쓴 선비가 소를 타고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그런데 소의 눈망울과 선비의 시선이 비껴있다. 소는 제 갈길 위해 앞만 보고 소 잔등에 걸터앉은 탕건 쓴 선비는 소 걸음 아랑곳없이 놔두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낮술 한 잔 드셨나 본데 저 멀리엔 물새만 난다. 김홍도는 못다 한 마음을 중앙에 이렇게 놓아두었다. 꽃 떨어져 강물 위로 흐르는 데 새는 한가히 울어대고 落花流水閒啼鳴 아무 일도 없으니 땅 위의 신선..
2022.03.20 -
『중용(中庸)』을 읽다가
『중용(中庸)』을 읽다가 대선이 끝났다. 활짝 웃는 당선자 얼굴을 담은 당선사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20만 표 승자의 당선사례로 매우 꼴사나운 짓이다. 세상은 완연 왕권시대로 바뀐 듯하다. 윤 당선인에게 질문하는데 한 기자는 “외람되오나(猥濫되다, 하는 짓이 분수에 지나친 데가 있다)”라며 자신을 한껏 낮추었다. 저 말은 왕권국가에서나 쓸 말이다. 하는 짓이 비위에 거슬리고 우스워 차마 눈뜨고는 보지 못할 꼴불견이다. 저러니 저 당에서는 ‘5.18 북 개입설 방송 진행자, 윤 당선인 정무특보로 임명’했다는 둥, 천하 망종 정치꾼들이 논공행상을 하느라 악취가 벌써부터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중용장구》 제20장을 본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정치하는 도리를 물으니 공자는 이렇게 답한다. “문왕과 ..
2022.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