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ㄷ, ㅂ'과 '유오지족(唯吾知足)'

2022. 4. 22. 17:09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ㄱ, ㄷ, ㅂ'과 '유오지족(唯吾知足)'

 

“ㄱ, ㄷ, ㅂ, 발음이 부정확해요.”

며칠 전, 시민을 상대로 한 수업 시간이다. 한 분이 내 발음이 부정확하다며 충고한 말이다.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다. 그때는 그냥 지나갔는데 ---줄곧 그 생각이 나 글 한 줄 못썼다. 선생, 그것도 국어 선생이 아닌가. 아무리 줌 수업이라하여 마이크 상태가 그러하다지만, (지금까지 만나는 30년 전,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도 보았다.) 오늘도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ㄱ, ㄷ, ㅂ을 곱씹어 꿀꺽꿀꺽 삼켰다. 문득 책꽂이 옆을 보니 ‘유오지족(唯吾知足, 오직 나는 족함을 안다)’이라 써 붙여 놓은 게 보였다. 살짝 먼지가 앉은 것을 보니 꽤 오래 전인데 왜 써 붙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갑자기 유래가 궁금했다. 중국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대략 이러한 내용이 실려있다.

원음사 대들보에 거미가 있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들음으로써 불성을 갖춰 인간이 되기를 일심으로 기원했다. 부처님도 그것을 알기에 거미에게 물었다.

“너는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人生最珍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거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웃으며 가버렸다.

 

천 년이 지났다.

거미는 언젠가 인간이 되기를 바라며 여전히 날마다 경전을 들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감로(甘露, 도리천에 있다는 ‘달콤한 이슬’로 한 방울만 먹어도 온갖 괴로움이 사라지고 산 사람은 불로장생하며 죽은 사람은 부활한다고 한다. 부처의 가르침이나 깨달음을 뜻한다.) 한 방울이 거미줄에 떨어졌다. 수정처럼 맑은 구슬 같은 이슬을 보고 거미가 천천히 다가갈 때였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이슬을 날려버렸다. 거미는 바람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이로부터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없어졌고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이때 부처님이 다시 나타나 거미에게 같은 질문을 하였다.

“너는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거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아끼는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부처님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래. 내 너를 잠시 동안 세상에 보내주마.”

 

백 년이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갔다.

부처님이 다시 나타나 아직 인간으로 있는 거미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너는 인생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이때 백발이 성성한 거미는 황망히 깨닫고서 대답하였다.

“인생 백 년은 바람이 ‘달콤한 이슬’을 날려 버리듯 지나가며, 일체 마음속 욕망은 다 거울 속의 형상(허상)입니다. 가장 귀한 것은, ‘일상의 것(平常之物)’에 지나지 않으나 이 ‘일상의 것(平常之物)’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내세에도 원음사 대들보 위 한 마리 거미가 되어 날마다 독경 소리나 듣기 원합니다. ‘오직 저는 족함을 알 따름입니다(唯吾知足).’

 

‘일상의 것’이 가장 귀하다는 말, 그저 평상의 삶에 만족하라는 뜻이다. 지족상락(知足常樂, 만족할 줄 알면 항상 즐겁다)이니 안분지족(安分知足, 분수에 맞게 편안하고 만족할 줄 안다)도 같은 말이다. 문제는 내가 저 글자를 알지만 실행을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과연 ‘글의 뜻을 안다일까? 모른다일까?’ '알지만 알지 못함만 못하다'는 말이 이런 경우다. 하기야 저 거미 씨도 1100년이 지나 이 사실을 알고 실행에 옮겼으니 기다려 봄직도 하지만, 어디 삶이 그렇던가. 안간힘으로 ‘오직 나만(唯吾)’이라도 찾으려 이리로 저리로 생각을 옮겨본다. 혹 아나? “ㄱ, ㄷ, ㅂ.”이 가뭇없이 사라질지.

 

 

* 국어사전에는 오유족지(吾唯足知)로 나오지만 유오지족(唯吾知足)이 맞다. ‘스스로 오직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