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4. 12. 17:48ㆍ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술 한 잔하면 꼭 자기 출판사를 차려 내 책을 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해 봄, 어찌 돈을 마련했는지 노량진 어디에선가 출판사를 차렸다며 나를 불렀습니다. 문패도 없고 그저 책상 하나 덜렁 있는 썰렁한 그 출판사에서 호기롭게 막걸리 한 잔을 건네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조기쯤 보일 무렵 이승을 달리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40 후반쯤일 듯합니다. 그래 뜬금없이 이 좋은 분을 생각하자니, ‘나쁜 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한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갔는데, 살아생전 흉악한 일만 한 위인이었답니다. 그런데 이 자의 죄상을 낱낱이 들은 염라대왕님 이렇게 판결을 내리더랍니다.
“이 천하에 나쁜 놈을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라.”
모든 저승사자들이 ‘저 흉한 놈을 지옥에 떨어뜨리지 않고…’하며 놀랐겠지요.
그런데 이어지는 대왕님의 말씀이 한 술 더 뜹니다.
“이놈을 아예 선비로 태어나게 하라.”
어안이 벙벙한 사자들의 귀에 한 마디 더 들어옵니다.
“그리고 아들도 다섯을 점지해 줘라.”
기가 찬 사자님들, 염라대왕을 쳐다보자. 염라대왕님,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이놈들아, 가난한 선비가 자식 다섯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켜내자면, 뭐 지옥과 별다를 것 같으냐.”
사람 노릇에, 꼬장꼬장한 선비 노릇에, 배곯는 애옥살이 살림에 다섯 자식 둔 아비 노릇이라. 대왕님의 판결이 명판결입니다.
가끔씩 고인이 된 그 출판인은 나에게 이런 시가 있다며 사람답게 살고 싶다 했습니다.
人人人 사람이 사람이라고 사람이냐?
人人人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쓰다 보니 저 출판인이 꽤 사람다운 사람이었습니다. 쓰다 보니 저 나쁜 놈과 나도 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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