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기우도(仙人騎牛圖)를 보며

2022. 3. 20. 14:52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대선 후, 언론을 절연했다는 이들이 꽤 많다. 심기가 불편해서란다. 세상을 버릴 수 없으니 보고 듣는 것만이라도 막고자 함이다. 나도 TV 선을 묶어버렸다. 가만 생각해보니 '속세의 신선'을 자처함이다. 문득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선인기우도'가 떠오른다.

                          선인기우도仙人騎牛圖

 

탕건을 쓴 선비가 소를 타고 한가로이 거닐고 있다. 그런데 소의 눈망울과 선비의 시선이 비껴있다. 소는 제 갈길 위해 앞만 보고 소 잔등에 걸터앉은 탕건 쓴 선비는 소 걸음 아랑곳없이 놔두고 깊은 상념에 잠겼다. 낮술 한 잔 드셨나 본데 저 멀리엔 물새만 난다. 김홍도는 못다 한 마음을 중앙에 이렇게 놓아두었다.

 

꽃 떨어져 강물 위로 흐르는 데 새는 한가히 울어대고 落花流水閒啼鳴

아무 일도 없으니 땅 위의 신선이로구나 一事無干陸地仙

 

이 시구는 당나라 시인 고변(高駢, 821~887)의 <방은자불우(訪隱者不遇)>와 유사하다.

 

꽃 떨어져 강물 위로 흐르고 세상 참으로 넓구나 落花流水認天台

술에 반쯤 취해 한가로이 읊조리며 혼자 돌아오네 半醉閑吟獨自來

 

늦봄, 고변이 숨어 사는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였나 보다. 떨어지는 꽃과 흐르는 물에 자신의 심정을 담아냈다. 세상과 불우를 한 잔 술로 달래려니 쇠잔한 봄이 그대로 시인의 마음이다.

 

김홍도는 저러한 자들이 ‘신선’이라고 한다. 속세를 떠나야만 신선인 줄 알았는데 퍽 많은 신선이 이 세상에 있었나 보다. 지금도 여기저기 회재불우(懷才不遇,재주를 품고 있으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는 의미)한 이 시대 신선들이 꽤 많다.

 

그나저나 묶어버린 TV 선은 언제쯤 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