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냐 존재냐>를 읽다가

2022. 2. 25. 11:56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소유냐 존재냐>를 읽다가

책을 읽다 프롬이 옮긴 바쇼의 시에 눈길이 멈춘다.

 

 

 

 

<소유냐 존재냐> 저자:에리히 프롬/출판:범우사/발매:1999.01.20.

 

 

E. 프롬은 인간 생존을 두 가지 양식으로 나눈다. 프롬에 의하면 ‘소유(所有)’란 산업 사회에 있어서 기본적인 생존 양식이다. 자기의 가치, 자기의 주체성, 혹은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물건뿐 아니라 인간, 지식, 관념, 신, 나아가서는 건강이나 질병까지 모두 포함한다. 프롬은 이 소유를 주체와 객체를 ‘물건’으로 환원시켜 버리기 때문에 그 관계는 살아 있는 관계가 아니라 죽은 관계라 한다. 이 소유는 끝없는 생산과 소비라는 악순환을 낳게 되고 우리는 만성의 기아 상태에 빠진다.

 

 

이에 반해서 ‘존재(存在)’는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속박당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하지도 않고 끊임없이 성장한다. 그것은 하나의 고정된 타이프나 태도가 아니라 유동하는 과정이며 타자와 관계에서는 주고 나누어 갖고 관심을 주며 함께 하는 살아 있는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달관한 이들은 고약한 이 세상을 살아내는 비결로 ‘무소유(無所有)’를 꼽는다. 허나 저 이뿐만 아니라 누구나 인생살이를 하며 모두 놓아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그래야 행복하다는 것도.

 

 

무엇부터 놓아야 할까? 나이를 먹으며 놓아야 할 게 참 많다. 명예, 지위, 물질, 놀이, 배움, 욕망, 건강,…인생살이 사람살이기에 사람만은 가장 나중에 놓아야 한다.

 

 

하지만 그 마지막에는 그 사람도 놓아야 한다. 지금 아버지에, 그 아버지에, 그 그 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랬듯이, 모두들 놓았고 그렇게 가뭇없이 사라졌고 사라진다. 도를 얻은 이건 못 얻은 이건, 원하든 원치 않든, 그렇게 모두 무소유를 실천하는 게 우리네 삶이다.

 

 

그러니 무소유를 실천하려 고집스럽게 모두 떼어낼 필요 없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시나브로 소유할 수 없는 시간으로 가는 중이다. 제 아무리 길어야 그 시간이란 것도 겨우 손가락 몇 번 꼽으면 넉넉하다.

 

 

하고 싶지 않아도, 애쓰지 않아도, 우리네 삶은 그렇게 무소유의 삶이다. 실천하지 않아도 실천되는 게 무소유다. 그러니 이 오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무소유가 아닌 소유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덧붙임: 책을 읽다 프롬이 옮긴 바쇼의 시에 눈길이 멈춘다. 고은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선생이 바쇼를 모르진 않았을 터이니 표절? 아니면 바쇼의 시를 소유하고픈 마음에? 그도 아니면 정녕 영향력 없는 유사성?

“자세히 살펴보니 냉이꽃이 피어 있네 울타리 밑에!”-바쇼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