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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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아침부터 블로그를 뒤적거린다. 혹 무슨 글감이라도 있을까하여. 14년 전 이 눈에 들어온다. 저 글로부터 10년하고 몇 년이 훌쩍 지났다. 아직도 나는 ‘내 책의 소임을 다했나?’하는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언젠가 책이 나와 어떤 이에게 삼가 내 이름을 적어 1부 증정했습니다. 어떤 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웬 책을 그렇게 자주 내냐?”고, 그러면서 “책은 그렇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라며 충고하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쉽게 책을 쓴 적이 없습니다.’라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하고 싶었습니다. “땅에 뿌린 씨앗은 간혹 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뿌리지 않는 씨앗은 절대 나지 않습니다.” 내 책에서 단 한 줄만이라도 다른 이의 마음에 국문학의 씨앗을 뿌렸다면, 내 책의 ..
2022.06.26 -
“나도 너만큼 알아. 이제 더 이상 전문가 의견 안 들어”
“나도 너만큼 알아. 이제 더 이상 전문가 의견 안 들어” 톰 니톨스의 『전문지식의 죽음(The Death of Expertise)』이라는 책이 있다. 니콜스는 구(舊) 소련 문제에 대한 전문가란다. 그는 SNS에서 러시아에 관해 자기를 가르치려 드는 ‘비전문가’들에 화가나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가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니톨스는 그래 『전문지식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듯한 모양새다. 그러나 꼭 그러할까? SNS에서 보고 들은 지식은 전문지식이 아니고 그러한 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닐까? 나 역시 수많은 전문가들을 보았고 국문학(고전서사)을 공부하는 전문가이다. 하지만 전문지식을 지닌 전문가가 결코 우리 국문학계를 이끌지 못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지금 국어국문학과는 명패조차 지키지 못하고, 어..
2022.05.16 -
“호윤아! 네 글에 감동이 없어.”1.2.
“ㄷㅇ아! 네가 내 글에 감동이 없다. 그랬지. 그 울림이 꽤 길구나. 곰곰 생각해 본다. 내 글이 건조한 거는 내가 이 세상에 감동을 못해서야. 그러고 보니 감동을 한 지가 언젠지 모르겠네. 휴일 잘 보내렴.” 오늘 아침 친구에게 보낸 카톡 문자다. 엊그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대학 동기요, 룸메이트로 40년 지기이기도 하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녀석이다. 햇수로 2년 만이다. 군대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소원했던 적이 없었다. 코로나가 꽤 사람들을 멀리 떼어놓은 듯하다. 술잔이 두어 순 배 돌고 세상사가 자연히 오갔다. 무슨 이야기 끝에 내 글까지 나왔다. “---. 호윤아! 네 글에 감동이 없어.” 무심히 던진 녀석의 말이다. 감동이 없는 글, 가만가만 내 글들을 읽어본다. 가뭄에 논바닥 갈..
2022.04.28 -
“ 호윤아! 네 글에 감동이 없어.”
“ㄷㅇ아! 네가 내 글에 감동이 없다. 그랬지. 그 울림이 꽤 길구나. 곰곰 생각해본다. 내 글이 건조한 거는 내가 이 세상에 감동을 못해서야. 그러고 보니 감동을 한 지가 언젠지 모르겠네. 휴일 잘 보내렴.” 오늘 아침 친구에게 보낸 카톡 문자다. 엊그제 친구를 만났다. 대학 동기요, 룸메이트로 40년지기이기도 하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녀석이다. 햇수로 2년만이다. 군대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소원했던 적이 없었다. 코로나가 꽤 사람들을 멀리 떼어놓은 듯하다. 술잔이 두어 순 배 돌고 세상사가 자연히 오갔다. 무슨 이야기 끝에 내 글까지 나왔다. “---. 호윤아! 네 글에 감동이 없어.” 무심히 던진 녀석의 말이다. 감동이 없는 글, 가만가만 내 글들을 읽어본다. 가뭄에 논바닥 갈라지 듯 바짝 말랐다...
2022.04.24 -
'ㄱ, ㄷ, ㅂ'과 '유오지족(唯吾知足)'
'ㄱ, ㄷ, ㅂ'과 '유오지족(唯吾知足)' “ㄱ, ㄷ, ㅂ, 발음이 부정확해요.” 며칠 전, 시민을 상대로 한 수업 시간이다. 한 분이 내 발음이 부정확하다며 충고한 말이다. 생전 처음 들어본 말이다. 그때는 그냥 지나갔는데 ---줄곧 그 생각이 나 글 한 줄 못썼다. 선생, 그것도 국어 선생이 아닌가. 아무리 줌 수업이라하여 마이크 상태가 그러하다지만, (지금까지 만나는 30년 전, 제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도 보았다.) 오늘도 책상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ㄱ, ㄷ, ㅂ을 곱씹어 꿀꺽꿀꺽 삼켰다. 문득 책꽂이 옆을 보니 ‘유오지족(唯吾知足, 오직 나는 족함을 안다)’이라 써 붙여 놓은 게 보였다. 살짝 먼지가 앉은 것을 보니 꽤 오래 전인데 왜 써 붙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갑자기 유래가 궁금..
2022.04.22 -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책 내기가 참 어렵습니다. 출판사마다 책 내는 족족 죽을 쑤는 판이랍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몇 해 전 고인이 된 꽤 괜찮은 출판인이 생각납니다. 나이는 나보다 적지만 벗으로도 족한 분이었습니다. 책 보는 안목과 책 만드는 장인 정신이 오롯하였지만 살림살이는 빈한하였습니다. 술 한 잔하면 꼭 자기 출판사를 차려 내 책을 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해 봄, 어찌 돈을 마련했는지 노량진 어디에선가 출판사를 차렸다며 나를 불렀습니다. 문패도 없고 그저 책상 하나 덜렁 있는 썰렁한 그 출판사에서 호기롭게 막걸리 한 잔을 건네던 기억이 납니다. 그 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조기쯤 보일 무렵 이승을 달리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40 후반쯤일 듯합니다. 그래 뜬금없이 이 좋은 분을 생각하자니, ‘나쁜 놈 ..
2022.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