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저서(35)
-
20. 이곳이 명당자리입니다(2)
20. 이곳이 명당자리입니다(2) 상서가 김동의 말을 따라 장차 그 부모 산소의 면봉(緬奉)1)을 행하려 할 때였다. 관을 묻기 위해 구덩이를 일곱 척쯤 파 들어가니 평평한 돌이 나오고, 돌 네 귀퉁이에는 조그만 틈새가 있어 손으로 누르니 돌이 요동하여 물위로 떠 있는 바위와 같았다. 상서가 이미 평평..
2008.08.16 -
20. 이곳이 명당자리입니다(1)
20. 이곳이 명당자리입니다(1) 상서 김 아무개는 사람을 잘 알아보는 슬기가 있었다. 하루는 길을 나섰다가 노상에 웬 총각이 서있는데 의복이 남루하여 몰골이 추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속으로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 사는 곳과 성명을 물으니 총각이 대답했다. “어렸을 때에..
2008.08.14 -
23. 이것을 허리에 차면 몇 천 리라도 노자가 필요치 않을 게요(2)
23. 이것을 허리에 차면 몇 천 리라도 노자가 필요치 않을 게요(2) 이때에 생원이 동자와 함께 방향을 정하지 않고 가다가 한 곳에 이르렀다. 저녁노을이 지더니 이내 저물어 한 객줏집을 찾아 들어가 묵었을 때였다. 저녁밥을 먹고 막 잠자리에 들려하는데, 웬 나그네가 커다란 상자를 짊어지고 들어왔..
2008.08.13 -
23. 이것을 허리에 차면 몇 천 리라도 노자가 필요치 않을 게요(1)
23. 이것을 허리에 차면 몇 천 리라도 노자가 필요치 않을 게요(1) 영남 안동(安東)1)에 이 생원이란 자가 있었다. 집안이 거덜 나 아주 빈한하여 생계를 유지할 길조차 없으므로 부부가 상의하여 집안 세간을 모두 팔아치워 돈 60냥을 얻었다. 20냥은 그의 아내를 주어 본가로 보내고 40냥은 생원이 가지고..
2008.08.12 -
49. 귀신같이 길흉을 점치니, 인간의 운명을 도망가기 어렵구나
김안로(金安老, 1481~1537)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 이숙(頤叔). 호 희락당(希樂堂) ·용천(龍泉) ·퇴재(退齋)이다. 1506년(중종 1)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갑과로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대사간을 지냈다. 1519년 기묘사화 때는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1522년에 부제학(副..
2008.08.11 -
49. 귀신같이 길흉을 점치니, 인간의 운명을 도망가기 어렵구나
조위(曹偉,1454∼1503)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 태허(太虛). 호 매계(梅溪)이다. 시호는 문장(文莊)이며 1474년(성종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검열(檢閱)이 되고 수차에 걸쳐 시제(詩製)에서 장원하여 명성을 떨쳐, 성종의 총애를 받아 경연에 나갔다. 1495년(연산군 1) 대사성(大司成)으로 춘추관지사(..
2008.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