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귀신같이 길흉을 점치니, 인간의 운명을 도망가기 어렵구나

2008. 8. 11. 15:41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김안로(金安老, 1481~1537)의 본관은 연안(延安). 자 이숙(頤叔). 호 희락당(希樂堂) ·용천(龍泉) ·퇴재(退齋)이다. 1506년(중종 1)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갑과로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대사간을 지냈다. 1519년 기묘사화 때는 조광조(趙光祖)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1522년에 부제학(副提學)이 되고, 1524년에는 대사헌을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아들 희(禧)가 효혜공주(孝惠公主)와 혼인한 뒤부터 권력 남용이 잦았다. 정적(政敵)에 대해서는 종친(宗親) ·공경(公卿)이라 할지라도 이를 축출하여 살해하는 등 무서운 공포정치를 한 끝에, 문정왕후(文定王后)의 폐위를 도모하다가 중종의 밀령을 받은 윤안임(尹安任)과 대사헌 양연(梁淵)에 의해 체포되어 유배, 이어 사사(賜死)되었다. 허항(許沆) ·채무택(蔡無擇)과 함께 정유삼흉(丁酉三凶)으로 일컬어진다. 저서에 『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가 있다. 


김안로(金安老)가 어렸을 때에 중국의 점쟁이에게 운명을 점쳤는데 점쟁이가 이런 글을 써 주었다.

“이 세상 모든 부귀 다 누리고 다만 갈(葛)에서 죽는다(極富極貴 但死于葛).”

그 뒤에 안로가 과연 국권을 장악하여 부귀가 높아 빛났으나 ‘갈(葛)에서 죽는다’는 뜻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 뒤 중종(中宗) 16년 정유년(丁酉年.1537년)에 문정왕후(文定王后, 1501~1565)1)의 폐위를 도모한 죄로 사헌부(司憲府)와 사간원(司諫院)에서 죄과를 논하여 유배지로 갈 때, 진위갈원(振威葛院)1)에 도착하여 사약을 받아 그곳에서 죽었다.



1)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윤지임(尹之任)이다. 조선 중종의 계비로서, 중종 12년(1517) 왕비에 책봉되었으며, 명종의 모친이다. 1545년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이 동안 동생인 윤원형(尹元衡)을 신임하여 소윤(小尹) 일파에게 정권이 돌아갔다.

2) 현재 경기 평택시 북동부의 지명이다. 갈원은 현재의 경기 송탄시 이충동 부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