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8. 11. 15:38ㆍ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49. 귀신같이 길흉을 점치니, 인간의 운명을 도망가기 어렵구나
① 해가 삼림(三林)의 아래로 떨어지니 일지춘(一枝春)을 영원히 이별하네
윤필상(尹弼商,1427∼1504)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양좌(陽佐)이다. 이시애의 난이 평정되자 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중국 명나라 건주위 야인(野人)들의 정세를 탐지, 보고하여 성종 10년(1479) 우의정으로서 이를 토벌하였다. 뒤에 영의정에 올랐고 기로소에 들어갔으며, 갑자사화 때 연산군 생모의 폐위를 막지 못하였다 하여 진도에 유배되어 사약을 받았다.
윤필상(尹弼相)은 성종조의 상국(相國)이었다.
일찍이 북경에 가서 점을 잘 치는 자를 방문하여 운명을 점쳐보니 한평생 길흉이 서로 꼭 들어맞았다.
다만 마지막 구절 “해가 삼림(三林)의 아래로 떨어지니 일지춘(一枝春)을 영원히 이별하네(日落三林下 永別一枝春)”라는 말뜻만 풀어내지 못하였다.
그 후 연산 임금 갑자사화 때(1504년)였다.
지난 성종시절 연산군의 생모인 윤비(尹妃)를 폐위시킬 때 참여한 일로 인하여 전라남도 진도(珍島)로 유배가게 됐다.
어느 날 저녁에 인근 주민이 필상이 들어 사는 주인집에게 김매는 데 손을 빌려 달라고 청하였다.
“내일 아침 상림(上林)으로 오게나. 거기서 보세나.”
그래 공이 주인에게 물었다.
“어디를 상림이라 하는가?”
“이곳에서 한 5리 쯤 가면 상림, 중림, 하림의 지명이 있지요.”
공이 그제야 ‘삼림’의 말 뜻을 비로소 깨닫고 탄식하기를 그치지 못하였다.
그때 마침 자질구레한 일을 맡은 기생이 곁에서 머리를 빗고 있었다.
그래 이 번엔 기생의 이름을 물어보니 “일지춘(一枝春)이에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공이 지붕을 쳐다보고 멍하니 즐거운 기색이 없었다.
과연 이날 필상의 목숨을 거두는 사약이 내려졌다.
그 후 증손자 윤부(尹釜,1510~1560경)1)가 또한 북경에 가 운명을 점쳐보았다.
마지막 구가 “두 개의 관리 도장을 차고 백운산 속에서 죽는다(官雙印綬 魂斷白雲中).”라고 했는데 그 뜻을 풀이하지 못하였다.
훗날 부가 강원감사로 부임하며 병사(兵使)1)의 직을 겸하였으니, 과연 두 개의 관리 도장을 찬 것이다. 부는 오래지 않아 감영에서 죽었는데, 감영은 곧 강원도 원주(原州) 백운산(白雲山)의 북쪽에 있었다.
1) 자(字)는 자기(子器), 호(號)는 시호(諡號)는 청백리(淸白吏). 부(父)는 윤승홍(尹承弘)이고 증조부(曾祖父)가 윤필상(尹弼商)이다. 22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28세에 급제하여 벼슬이 참판에 이르렀으며, 50세까지 살았다.
2) '병마절도사'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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