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는 모두 세 마리옵니다(홍계관)

2008. 8. 10. 10:58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② 쥐는 모두 세 마리옵니다

 홍계관은 명종 때 사람이다.

점을 잘 치기로 유명하였는데 일찍이 그 운명을 계산해 보았다.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뜻밖의 사고를 당하니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을 운수였다. 살날을 세는 것보다 죽을 날을 따지는 것이 빠르기에 생때같은 을 구할 방책을 찾아보니, 임금이 정무를 볼 때 앉던 용상(龍床) 아래에 숨으면 면할 수였다.

그래 계관이 이 뜻을 임금에게 말씀드렸더니 상이 특별히 허락하였다.

그 날이 되자 홍계관이 용상 아래에 숨어 엎드려 있는데, 쥐 한 마리가 마루를 지나갔다. 그러자 임금이 물으셨다.

“지금 쥐가 지나가는데 몇 마리인고? 점쳐 보거라.”

계관이 대답하였다.

“세 마리이옵니다.”

상이 황당한 말에, 즉시 형벌을 담당하는 관리에게 죄인을 압송하라 명하고 목을 베라고 하였다.

이때 죄인을 참수하는 사형장이 당고개(堂峴)1) 남사강(南沙江)가에 있었다.

계관이 형장에 도착하여 점괘를 다시 짚어 보고 형을 집행하는 관리에게 간절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한 식경만 법의 집행을 지연하면 내가 살 도리가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기를 바라오.”

형관이 이를 허락하였다.

상이 계관을 압송한 후에, 점 잘 치기로 이름난 사람이 번연히 눈을 뜨고 한 마리 쥐를 보고 세 마리라 한 것이 이상하여, 혹여 사람들을 시켜서 그 쥐를 잡아 배를 갈라보았다. 쥐의 뱃속에는 두 마리의 새끼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상이 크게 놀라고는 급히 내시에게 명하여 형장으로 말을 달려가서 사형을 멈추도록 하였다. 내시가 급히 달려가 당고개 마루에 올라서 저 멀리 바라보니 막 형을 집행하려고 하였다.

이에 내시가 큰 소리로 멈추라고 하였으나 소리가 미치지 못하였다.

그래 손을 ‘휘휘’ 저으며 멈추라는 뜻을 보내었다.

형을 집행하는 사람이 도리어 명령을 재촉하는 소리로 그릇 알아듣고는 목을 베어버렸다. 내시가 이러한 자초지종을 돌아와서 아뢰니, 상이 “아차차!”하고 탄식을 그치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형장을 당고개로 옮기게 하였다.

이에 당시 사람들이 당고개를 바꾸어 아차고개(呀嗟峴)라고 불렀다.


저러한 이들을 보고 운명(運命),혹은 ‘팔자(八字)’라 합니다.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팔자: 사람의 한 평생의 운수. 사주팔자에서 유래한 말로, 사람이 태어난 해와 달과 날과 시간을 간지(干支)로 나타내면 여덟 글자가 되는데, 이 속에 일생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본다.”

그래, 속담으로는 이러한 것도 있습니다.

 “팔자 도망은 못한다.”

 더 센 속담으로 “팔자는 독에 들어가서도 못 피한다.”도 있지요. 운명은 아무리 피하려고 하여도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책상물림으로 지내는 내 팔자는 어떠한지 생각해봅니다. 언젠가부터 이런 말을 대고 뇌까립니다.

“내가 선생을 해서 그렇지…”

 며칠 전 심노숭(沈魯崇,1762~1837)의 글을 읽습니다.

“운명 그 자체가 궁한 것이지, 그게 어찌 (시문의) 죄이리오?(惟命之窮 豈其罪哉?)”

……

“헉”, 가슴이 턱 막힙니다.

‘아차’하면 지나가는 세월, 지나고 나서야 ‘아차차’한들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책상을 찾아 앉습니다.

다시 인생에 붓질을 해야겠습니다.


'운명은 내 가슴에 있다!' 라고 가만히 되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