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풀은 시든 뒤에 나무는 마른 뒤에 썩는 거외다(2)

2008. 8. 7. 16:22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6. 풀은 시든 뒤에 나무는 마른 뒤에 썩는 거외다(2)

 

 

 “있소이다. 안법대운(按法大運)1)하여 천 날의 공덕을 마치면 능히 맑은 날에 하늘에 오르고, 혹 그 몸을 벗지 못하여 생사를 맡긴다는 탁사법(託死法)을 터득하면, 비록 천백 년을 지나더라도 온몸이 썩지 않아 얼굴빛이 살아있는 것 같다가, 기한이 다된 후에는 또 무덤을 가르고 날아오르지요. 이것이 이른바 태음연형(太陰鍊形)으로 땅 속에서 선골이 되기를 기다려 신선이 되어 오르는 방법이외다. 이 법은 이 세상 모든 것을 가벼이 여기고 아주 길고도 긴 시간을 지나서도 홀로 존재하니, 이것이 내가 말한 ‘영원함’이라는 게요. 그대가 말하는 이른바 ‘영원함’은 이미 지나간 것에서 구하는 것이니 어찌 나와 같겠소이까?”

경세가 버썩 무릎걸음으로 노인에게 다가앉았다.

“지금 선생의 훌륭하신 의견을 들으니 속세의 명예와 이익을 생각하는 속마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사라졌습니다. 감히 청하오니, 이 방법을 저에게 전수하여 주옵소서.”

 노인이 한참동안을 바라보다가 말하였다.

“그대의 골격이 이를 감당치 못할 것이니 이는 단념하는 게 좋겠소. 허나 그대는 반드시 과거에 급제하여 부귀와 공명으로 일생동안 이름을 세상에 들날릴 것이요. 이것만 가지고도 인간으로서의 복록은 모두 누렸다할 게요.”

 경세가 다시 자신의 운수가 어떠한 지와, 또 국운의 성하고 쇠한 것을 자세히 물었다.

“그대는 올 해(1586년)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을 날리다가, 몇 년 후에는 세 차례 감옥에 들어 갈 액이 있으나 끝내는 근심이 없어지고, 다시 여러 차례 종요로운 직책을 지낼 게요. 이렇게 6년을 보낸 후에는 나라에 큰 난리가 일어나 모든 백성이 짓밟히고 으깨어지는 화를 만나게 될 것이오이다. 그리고 또 이것이 평정된 후 27년 뒤에 이르러서는 큰 도적이 서쪽에서 쳐들어 와 도성을 지키지 못하고 종묘사직이 몇 번이나 뒤엎어지는 것을 직접 보게 되리다.2)

 경세가 다시 그 말에 대하여 재삼 가르침을 청하니, 노인이 말하였다.

 “그대가 오래지 않아 스스로 경험하여 자연스럽게 알게 되니 억지로 묻지 마시오.”

경세가 이번엔 그 성명을 물었다.

“내 어릴 적에 부모를 일찍이 잃어 나도 내 성명을 알지 못한다오.”

그리고는 마침내 일러주지 않았다.

 밤이 깊어져 경세가 몹시 고단하여 깊은 잠에 들었다가 새벽녘에 깨어 일어나니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몹시 괴이하여 그 집안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 노인의 이름은 유 생원(柳生員)입죠. 산중의 여러 절로 이리저리 떠돌다가, 혹간 와서는 앉았기도 하고 혹은 여러 날을 머물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수 십일이 지나도록 먹는 것은 하나 없고 산을 타거나 산등성이를 오르면 걸음걸이가 나는 듯하여, 그 오고 가는 것을 헤아리기가 어렵습죠.”

 경세는 한참동안을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서있었다.

이 해에 과연 경세가 과거에 급제하고 그가 말한 대로 일일이 꼭 들어맞아 틀리거나 어그러짐이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