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풀은 시든 뒤에 나무는 마른 뒤에 썩는 거외다 (1)

2008. 8. 6. 18:08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우복 정경세의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경임(景任)이다. 아버지는 좌찬성 여관(汝寬)이며, 어머니는 합천이씨(陜川李氏)로 가(軻)의 딸이다. 정경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수찬이 되고 정언·교리·정랑·사간에 이어 1598년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다. 예론에 밝아서 김장생 등과 함께 예학파로 불렸다. 시문과 서예에도 뛰어난 인물이다.

두 번에 걸쳐 연재하겠습니다.


6. 풀은 시든 뒤에 나무는 마른 뒤에 썩는 거외다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가 일찍이 서울로 과거보러 갈 때였다.

 단양(丹陽)1) 땅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길을 잃었다. 산골짜기 속으로 10여 리를 가니 소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늘어서 있어 갈 곳을 알지 못하였다. 홀연 한 점 등불이 소나무 사이에 은은히 비쳐 인가가 있음을 알렸다. 경세가 바삐 그 곳에 가보니 서너 칸의 이엉을 얹은 허술한 집이었다.

경세가 사립문짝에 서서 인기척을 내니 선풍학골(仙風鶴骨)의 한 노인이 등불을 밝히고 나와 맞아들였다. 노인은 책을 보던 중이었는지 경세를 들인 후에 책을 덮으며 물었다.

 “객은 뉘신데 어찌 깊은 밤중에 예까지 오셨소?”

 경세가 오게 된 까닭을 말하고 또 굶주렸음을 넌지시 털어놓았다. 노인이 주머니에서 떡 한 개를 꺼내어 주기에 경세가 먹어보니 달콤하고 매끌매끌하니 꼭 잣과 같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먹은 게 아직 채 반도 안 됐는데 배가 충분히 불렀다. 경세가 속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여 노인의 얼굴 생김을 자세히 뜯어보니 풍채와 태도가 보통 사람들과는 영판 달랐다.

 “어찌 이름을 이 세상에 드러내어 ‘영원함(不朽)’를 구하지 않고, 적막하니 이름이 드러나지 않음을 스스로 달게 여겨 초목처럼 썩으려 하십니까?”

 노인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대가 말하는 ‘영원함’이란, 입공(立功)․입덕(立德)․입언(立言)1)과 같은 게요?”

경세가 “그러합니다.”라고 하자, 노인이 말을 이었다.

 “세상에 도덕을 갖춘 것으로 따지면 공자와 맹자보다 높을 사람이 없고, 뛰어난 공적으로는 관안(管晏)1)보다 풍성할 자가 없지요. 하지만 오늘날에 찾는다면 인골은 모두 다 썩어버리고 오직 그 이름만 남았잖소. 이것을 두고 어찌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겠소이까. 하물며 글을 짓는 것과 같은 작은 재주야 말하여 무엇 하겠소. 아, 예로부터 글쟁이가 무수했다지만 ‘귀뚜라미 우니 가을 서리가 내리고(蛩吟秋露)’와 ‘새가 우니 봄 바람 부네(鳥鳴春風)’와 같이 그저 아름다움과 고움을 글 몇 자로 다투어서 잠시 동안 눈부시게 빛남이 극에 달할 뿐이지요. 허나 활짝 핀 꽃이 모두 시들어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서리와 이슬이 섞여 모이면, 말소리도 가라앉아 끊겨버리고 적적한 원래대로 되돌아가니 ‘슬프다’고 할 만하잖소. 내가 말하는 ‘영원함’이라는 것은 이와는 다른 게요.”

경세는 선뜻 이해가 안 되었다.

“무슨 말씀이시지요?”

“이른바 ‘풀은 시든 뒤에 썩고 나무는 마른 뒤에 썩는다.’라고 하는 것은 이미 죽어서 그러한 거 아니요. 만일 죽지 않았다면 어찌 썩겠소?”

노인이 설명해주자, 다시 경세가 물었다.

“그러하면 세상에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1) 현재의 충청북도 소재의 군소재지.

2) 이른바 三不朽(삼불후)로 立德(입덕) 덕을 세운다. 立功(입공) 공을 세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바지하는 일 을 하는 것. 立言(입언) 좋은 학설, 이론, 작품 등을 남기는 것.

3) 관중(管仲, B.C 685∼B.C 645)과 안영(晏, B.C 556∼B.C 500)이다. 이들은 임금을 도와 나라를 부국강병도록 만든 제(齊)나라의 명재상들이며 춘추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