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붉은 수염 장군(朱髥將軍)이 오유선생(烏有先生)이 되다(2)

2008. 8. 5. 18:01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이졸의 무리가 두려워 벌벌 떨며 두려워하여 그 행방을 찾지 못하다가 부득이 관아에 들어가 잃어버린 이유를 고하고 죽은 듯이 기다렸다.

지광이 거짓으로 분노의 빛을 짓고 호령을 해대면서 어제 명령을 어긴 아전과 하인들을 한꺼번에 잡아들인 후에 소리 높여 꾸짖었다.

 “네놈들이 관속이 되어 관장의 명령을 소홀히 여겨 보초를 잘 서지 못하여 오만무례한 장승의 죄를 다스리지 못하였다. 너희들의 죄는 실로 가볍지 않은지라, 마땅히 중장(重杖)1)을 내려 고통을 줄 것이지만, 특별히 관대한 처분으로 너희에게 징벌을 주려 한다. 너희는 이방 아전 이하로 금일 정오 이전까지 각기 벌로 종이 한 묶음씩을 사서 바치도록 하라. 만일 바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마땅히 태(笞)1) 이십에 처하리라.”

삼반관속 들이 각기 백지 한 묶음씩을 사서 바치니 관가의 뜰에 쌓아놓은 것이 무려 수십 묶음 이상이나 되었다.

아전과 하인들이 서로 말하였다.

“우리 사또와 같이 청렴하신 관장은 없어서 평일에 제 몸만 이롭게 하는 일을 하지 아니 했거늘, 지금에 와서 뜬금없이 우리들에게 죄명도 없는 죄를 가하고 벌로 종이를 사서 바치게 하니, 이것은 필시 제가 사사로이 갖으려는 거든지, 아니면 서울에 있는 절친한 사람에게 보내기 위하여 이러한 잔꾀 부림을 하는 게지.”

이런 말을 수군수군하며 각자 의심스런 뱃속을 풀지 못하였다.

 지광이 즉시 어제 들어 와 하소연하던 중을 불러들여 뜰 가운데 쌓아놓은 종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잃어버린 종이가 반드시 이 속에 있을 터이니 찾아내 보거라”

 중은 어렵지 않게 표해 놓았던 것을 근거로 한 묶음을 찾았다.

 “이것이 소승이 무역한 종이입니다.”

 지광이 이것을 사들인 관속에게 명하여 당초에 소유하고 있던 종이 주인을 화급하게 잡아 오라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이 주인을 잡아들여 지광 앞에 데려왔다.

 “이 종이를 네가 어느 곳에서 사왔느냐?”

 그 사내가 얼굴빛이 변하며 우물쭈물 대답을 못하였다. 지광이 곧 이졸에게 명하여 호되게 곤장을 치게 하니 사내가 그 제서야 낱낱이 자백하였다.

이것은 시장가에 한 무뢰한(無賴漢)1)이 스님의 종이를 몰래 훔쳐 자기 집에 감춰두었다가, 마침 관아에서 벌로 종이를 사오라는 명령이 내려 돌연 종이 값이 높이 뛰자 이를 들고 나가 판 것이었다.

 지광이 그 사내의 죄를 징계하여 다스리고 종이를 사온 관속들에게는 그 값을 퇴해 주었다. 그리고 그 종이는 스님에게 되돌려 준 뒤에, 그 나머지 종이는 여러 아전들에게 일일이 나누어 주었다. 스님은 백배 치사를 드리고 온 고을의 관리와 백성은 그 귀신같은 밝음에 탄복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1) 몹시 치는 장형(杖刑).

2) 태장으로 볼기를 치는 형벌.

3) 일정한 직업이 없이 나 다니는 불량한 자.

 

이지광의 일화 중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지광이 공주 판관이었을 때의 일이랍니다.

가뭄으로 유민(流民)들이 피난을 가는데, 그 중 한 사내가 아내를 잃고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관리들은 시큰둥하니 별 반응이 없었지요. 그러자 이지광이 한 아전을 불러, “너는 처가 둘이나 되니 한 여인을 이 가엾은 사람에게 주어라. 만약 명령을 거역하면 장살(杖殺)하겠다.”라고 하였다는 군요.

물론 처를 주기 아까운 아전이 두 아내와 함께 열심히 그 사내의 처를 찾아 주었답니다.

이지광의 지혜를 지금의 관리들께서도 본받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