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붉은 수염 장군(朱髥將軍)이 오유선생(烏有先生)이 되다(1)

2008. 8. 4. 15:37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이지광(李趾光)은 양녕대군(讓寧大君)의 13대 종손으로 영조 시대의 인물입니다. 백성들을 잘 다스렸으며 판결을 잘했다고 합니다. 아래 글은 <기인기사록> 제 11화 내용입니다. 편의상 두 부분으로 나누었습니다.

 

11, 붉은 수염 장군(朱髥將軍)이 오류선생(烏有先生)이 되다(1)

 이지광(李趾光)은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로 이름이 높았으니 소송을 판결하는 것은 귀신같았다.

충청북도 청주(淸州)에 고을살이를 할 때 일이다.

어느 날 한 스님이 들어와서 송사를 하였다.

“소승은 아무 절에 있는 중으로 종이를 무역하여 생계를 꾸리옵니다. 금일 시장에서 백지 한 묶음을 지고와 시장 옆에서 잠시 쉬려고 짐을 벗어 놓고 근처에서 소피를 본 뒤에 돌아와 보니 종이 뭉텅이가 없어졌습니다. 사방으로 찾아보았으나 허사였사오니, 이것은 반드시 도둑맞은 것이 분명하옵니다. 사또의 신명(神明)으로 이것을 찾아 돌려주신다면 쇠잔한 목숨이나마 보전하겠나이다.

이지광이 물었다.

“네가 네 물건을 지키지 못하고 사람이 많은 가운데에서 잃어버렸으니, 이것은 너의 불찰이다. 비록 찾아 주고자한들 장차 어떤 사람의 소행인줄 알겠느냐. 번거롭게 소송하지 말고 그만 물러가거라.”

그리고는 지광이 아무리 오랫동안 생각해도 찾을 방도를 얻지 못하였다.

얼마쯤 있다가 지광은 기생 무리와 함께 10리 밖에 있는 정자에 가서는 놀았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일행이 관아로 돌아 올 때였다.

갑자기 지광이 길가에 서있는 나무 장승을 보고 손으로 가리키며 하리(下吏)1)에게 말했다.

“이것은 어떤 물건이건데 관원의 일행 앞에서 감히 교만하게 뽐내면서 길게 서있는 게냐.”

“이것은 사람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사람으로 장승이로소이다.”

“비록 장승이라도 관장(官長)의 앞에 심히 거만스러우니, 즉시 잡아 가두고 내일 아침에 대령하라. 그리고 혹 밤을 타서 도피할 우려가 없지 않으니 삼반관속(三班官屬)1)이 한 줄로 나란히 지키기를 소홀하지 말지어다.”

지광이 이렇게 말하자 관가 사람들이 모두 소리 내어 건성으로 코대답은 하였으나, 그가 취중에 한 망령된 말인 줄 알고 모두 입을 가리고 속으로 웃으며 한 사람도 맡아 지키는 자가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지광이 영리한 통인(通引)1)을 시켜서 몰래 장승을 다른 곳에 감추어 두고, 다음 날 관아를 열자마자 나졸(羅卒)에게 호령하여 장승을 잡아들이라고 하였다.

이졸(吏卒)들이 그곳에 분주히 달려가서 보니 소위 ‘붉은 수염 장군(朱髥將軍)’이라 불리는 장승이 오류선생(烏有先生)1)이 되어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이졸들이 비로소 놀라 겁이나 사방으로 찾아보려 하였으나 관청의 명령이 워낙 성화 같이 급하였다.




1) 관아에 속하여 말단 행정 실무에 종사하던 구실아치. 서리(胥吏).

2) 지방의 향리와 장교 및 관리들.

3) 관아에 딸리어 잔심부름하던 이속. 지인(知印). 토인.

4)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람’으로 여기서는 장승이 없어졌다는 뜻으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