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어찌 물을 골라 비치리

2008. 8. 8. 13:53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임희지의 본관은 경주. 자는 경부(敬夫). 호는 수월헌(水月軒)이다. 1790년 역과에 급제한 한역관(漢譯官)출신으로 벼슬은 봉사를 지냈으며, 중인 출신 문인의 모임인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임희지는 키가 8척이나 되고 깨끗한 풍모를 지녔던 일세의 기인이었다. 특히 생황을 잘 불었고, 대나무와 난초를 잘 그려 묵란과 묵죽은 명성이 높았다. 유작으로 패기와 문기(文氣)가 넘치는 〈묵죽도〉·〈묵란도〉등이 여러 점 전한다.



 

52. ② 달이 어찌 물을 골라 비치리

 임희지(林熙之,1765~?)1)의 호는 수월도인(水月道人)이다.

그는 사람됨이 호방하고 옳지 못한 일에 대하여 의분을 느끼고 탄식하였으며 굽힐 줄 모르는 기개와 절조가 있었고 술을 즐겨 여러 날을 술에서 깨어나지 못하였다. 그림을 잘 그렸는데 대나무와 난초 그림이 세밀하였으며 또 생황을 잘 불었으나 집이 찰가난이라 쓸모 있는 물건이라곤 하나 없었다.

일찍이 한 계집종을 기르며 말했다.

“나에게 꽃을 기를 동산이 없으니, 이 계집종을 ‘꽃 한 송이(花一朶)’라 부르리라.”

그가 사는 집은 두어 서까래로 얽은 것에 불과하며 빈 터는 반 이랑도 되지 못하였다. 이곳에 연못 하나를 파 놓으니 사방 몇 자 정도에 그쳤다.

샘을 파지 못하여 쌀 씻은 물을 모아 부었다. 그리고는 늘 그 못가에서 노래를 읊조리며 말하였다.

“내 물과 달의 뜻을 저버리지 않으니 달이 어찌 물을 골라 비치리.”

 일찍이 배를 타고 교동(喬洞)에 가다가 중양(中洋)에 이르러 풍랑이 세차게 일어나 배가 뒤집어질 것이라 하였다.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얼굴빛을 잃고 부처님을 찾았다. 희지가 홀연 크게 웃으며 검은 구름 흰 물결이 치는 데서 일어나 춤을 춰댔다.

얼마 후 바람이 멎고 풍랑이 잠잠해져 무사히 물을 건넌 후에 사람들이 아까 일을 물으니 희지가 말했다.

“사람이 죽어 땅보탬이 되는 것이야 늘 있는 일일세. 허나 바다에서 풍랑이 크게 일어나는 것을 늘 만나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 그러니 어찌 춤을 추지 않겠나.”

늘 달빛이 밝은 밤에는 거위의 털을 묶어 옷처럼 두르고, 두 갈래로 머리를 묶고는 맨발로 생황을 불며 다녔다.

 보는 사람들이 모두 “귀신이다!”하고는 달아나 버리니, 그 세상을 희롱하고 광탄함이 이와 같았다.

 

임희지의 <노모도(老貌圖)>

“달이 어찌 물을 골라 비치리”

달이 어찌 물을 가리겠는가. 달리 말하면, 자연물인 달은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래 내 뜻을 달에 둘 줄만 안다면, 저 달은 내 달이 된다. 허나 저 달을 가진들 실상이 없는 것이기에, 그 풍취만을 취하겠다는 뜻을 알아채야 한다. 욕심 없는 마음, 자연을 통한 인간의 깨달음으로만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저 시절, 저들을 ‘환쟁이’라 불렀다. ‘환’은 ‘아무렇게나 마구 그리는 그림’이요, ‘-쟁이’ 또한 놀림조의 접미사이니, 그림 그리는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그림이나 그리는 ‘환쟁이’가 가질만한 게 무엇이 있었겠는가.

저 앞의 배 이야기도 그러하다. 풍랑을 만난 사람이 무에 그리 좋다고 춤을 춰대겠는가? 가진 게 없으니 남들 다 안 갖는 것이나마 가질 수밖에-. 그래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어떤 가진 것 많은 부자양반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돛단배를 탔단다. 휘 둘러 보니 가슴 뻥 뚫리는 큰 바다요. 마침 바람까지 선선히 부니 살갗을 스치는 바닷바람이 청량하기 그지없다.  잔잔하니 물결 위로 배는 쏘아 놓은 활이요, 뱃사공은 한가로이 휘적휘적 노를 물결에 댈 뿐이었다.

부자양반 건너편짝에 내리며 뱃사공에게 한 마디 한다.

“거 뱃사공도 할 만 하이. 편히 돈을 버는군.”

뱃사공이 닻을 내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풍랑이라는 것만 없어 보슈. 양반네들이 다하지. 우리 차례 오겠소.”

  

 소동파(蘇東坡)는 <전적벽부(前赤壁賦)>로 저 이의 마음을 읽어보자.


“그대는 저 물과 달을 아는가? 가는 것은 이와 같지만 일찍이 다하지 않으며, 달은 찼다 비는 것이 저와 같지만 끝내 줄거나 늘어남이 없다. 대개 변하는 입장에서 보면 하늘과 땅도 한 순간일 수밖에 없으며,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본다면 사물과 내가 다 다함이 없는 것이니 또 무엇을 부러워하겠소. 또,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사물은 제각각 주인이 있으니, 나의 소유가 아니라면 한 털끝만큼이라도 취하지 말아야하지요. 허나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에 들어오면 색깔을 만들어서, 가져도 막는 사람이 없고 써도 다함이 없는 게지요. 이는 조물주가 주신 무진장한 것으로 나와 그대가 함께 즐거워해야 할 것이외다.”


 허나, 저러한 세상사는 묘리(妙理)가 어찌 간난 없이 터득되었겠는가. 그저 바리바리 근심을 몸으로 부둥켜안고 사는 이들만이 누리는 행복이려니. 정녕 누구나 얻는 것은 아니렷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