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이곳이 명당자리입니다(2)

2008. 8. 16. 09:40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20. 이곳이 명당자리입니다(2)

 상서가 김동의 말을 따라 장차 그 부모 산소의 면봉(緬奉)1)을 행하려 할 때였다.

 관을 묻기 위해 구덩이를 일곱 척쯤 파 들어가니 평평한 돌이 나오고, 돌 네 귀퉁이에는 조그만 틈새가 있어 손으로 누르니 돌이 요동하여 물위로 떠 있는 바위와 같았다.

상서가 이미 평평한 돌이 나타날 것을 김동에게 들었기 때문에 부친의 관을 하관하려고 등불을 묘각(墓閣)1)에 매달아 놓고는 잠시 앉아 있었다.

상서가 아끼는 한 하인이 홀로 관을 묻을 구덩이에 가서는 그 평평한 돌을 흔들어서 돌 밑에 어떤 물건이 있는 지 보고 싶었다. 그래 가만히 손으로 돌을 들춰보니, 그 돌 아래 네 귀퉁이에 웬 옥동자들이 돌을 받치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또 중앙에도 한 옥동자가 있었는데 네 귀퉁이의 동자들보다 조금 커서 이 때문에 돌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하인이 깜짝 놀라 돌을 급히 내리니, 돌연 “뚜두둑”하고 옥 부러지는 소리가 아래서 들렸다. 하인이 크게 후회하여, ‘우리 집 대감의 후하신 은혜를 받고 이 길지를 내가 그르치게 하였으니 훗날 필연 재앙이 있을 것이야. 비록 고의에서 나온 것은 아닐지라도 하여간 죄를 범하였으니 죽는 것만 못하지. 그러나 차마 사실을 고하지 못하겠어.’하고는 아예 입을 막고 말하지 않았다.

시간이 되어 상서가 하관하고는 봉분을 만들어 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 상서의 집에 사소한 근심만 있어도 하인은 애가 타는 듯이 위태위태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편안해지기를 일이 생길 때마다 그러하였다.

 김동은 상서에게 보은하는 일로 길지를 가려 주고는 곧 중국으로 돌아가니, 그 아버지가 과연 임금의 은혜를 입어 놓여 돌아온 후에 관직을 회복하고 간신은 이미 벌을 받은 뒤였다.

부자가 만 번 죽임을 당한 말미에 서로 만났으니 그 기쁜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김동이 얼마 지나지 않아 또한 과거에 급제하여 직위가 한림학사(翰林學士)1)에 이르렀다.

하루는 각로가 물었다.

“네가 십년동안 조선에 있으면서 김 상서에게 막대한 은혜를 받았구나. 그래 너는 무엇으로써 이를 보답하려느냐.”

“한 명당자리를 택하여 드렸습니다.”

“그래. 어느 곳의 길지를 택점하였느냐?”

 김동이 그 땅의 산세, 지맥과 용호(龍虎)1), 득파(得破)1)의 대략을 말하니 각로가 크게 놀라 말했다.

“네가 은인에게 도리어 끔찍한 재앙을 끼쳤구나.”

 김동이 식겁하여 그 까닭을 물으니 각로가 말했다.

“땅 속에 다섯 명의 옥동자가 산 밖의 다섯 봉우리를 응하였으니 가운데 봉우리는 즉 흉살이라. 이것은 생게망게 귀하게 되었다가는 빠르게 망할 것이니, 네가 어찌 자세히 살피지 아니하였느냐?”

한림이 크게 뉘우쳤으나 이미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저 탄식을 그치지 못하니 각로가 말했다.

“지금 흉한 무리들이 이미 법에 따라 다스려졌으니 머지않아 천하에 큰 사면이 내릴 것이다. 내가 천자께 아뢰어 너를 반조사(頒詔使)1)를 제수하야 조선에 가게 해주마. 너는 맡은 일을 끝낸 후에 곧 김 상서를 위하야 다시 길지를 택하여 속히 산소를 이장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아무쪼록 산지(山地)1)의 형세를 자세히 살펴 이번에는 그릇됨이 없게 하라.”

한림이 크게 기뻐하여 아버지의 말처럼 번조사로 조선에 왔다.

김 상서를 명설궁(明雪宮)에서 만나 전날의 정을 펴니 마음속에 슬픔이 다시 살아나 ‘은야(恩爺)!’1)라 부르고 묏자리 일을 털어 놓았다.

그리고 이렇게 부사의 직책을 맡은 것은 모두 은야의 그 묏자리 일을 위하야 온 것이라는 뜻을 말했다.

상서가 심히 놀랍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침 아끼는 하인이 따라왔다가 두 사람이 하는 얘기를 몰래 엿듣고는, 그때에 자기가 옥을 부러뜨린 일을 낱낱이 말하니 상서가 크게 기뻐하였다.

“네 잘못이 도리어 화가 굴러 복이 되었구나. 묘를 팠을 때 요동하던 돌이 하관할 때에는 움직이지 않아 속으로 의심스럽고 이상하였는데, 하관 후에는 홀연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생게망게 쳐서는 가운데 봉우리에 있던 큰 바윗덩이를 산산이 부수기에 또 이것을 의심하였는데, 이제 보니 이것이 액이 사라졌다는 증험이었구나.”

한림이 또한 크게 기뻐하였다.

“평일에 은야께서 사람들에게 덕을 쌓은 일이 많으셨기에 자연히 길한 것이 끼워 맞춘 것입니다. 마땅히 큰 복을 누리실 것입니다. 이후로는 자손이 크게 번창 하고 여러 대에 걸쳐 공경(公卿)이 나올 것이니 의심치 마소서.”

그리고 돌아가 각로에게 앞뒤 사연을 갖추어 말했다.

 외사씨는 말한다.

군자는 풍수지리의 술수와 풍수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니, 이와 같은 일에 대하여 미혹하지 않는 것이지마는, 하여간 이것이 기이하지 않은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김 상서의 자손이 크게 일어난 것은 따지자면 덕을 쌓은 가운데에 있었다. 사람의 화복이 어찌 죽은 사람의 뼈를 묻는 산지의 길하고 흉함에 달려있다고 말하겠는가.


각종 선거 때만 되면 조상묘를 이장하느라 바쁩니다. 조상이 돌봐줘야 된다는 의미겠지요.  그런데 또 우리 속담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조상 탓”

영 이치에 닿지 않는 말이지요. 그래 어느 조상이 저승에 가서까지 제 자손을 못되게 하겠습니까. 다 덕을 쌓지 못한 제 탓이지요. 말가리가 없는 맹탕 헛소리입니다.


1) 무덤을 옮겨 다시 장례를 지내는 일.

2) 묘상각(墓上閣) 묘상각(墓上閣), 옹가(甕家). 장사지낼 때 비와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임시로 묘의 구덩이 위에 세우는 뜸집이나 둘러치는 휘장을 가리킨다.

3) 천자(天子)의 사인(私人)으로서 고문역할을 담당하여 중대한 조칙(詔勅)을 기초하거나 기밀문서를 작성했으며, 천자의 행행(行幸) 때는 시종으로서 호종하는 주요직이다.

4) 풍수설에서 묏자리나 집터의 왼쪽과 오른쪽의 지형.

5) 풍수설에서 물의 들어옴과 빠져 나감. ‘득(得)’은 명당 또는 혈처(도시나 촌락이 들어선 자리)에서 볼 때 ‘처음으로 보이는 물길’ 또는 그 ‘물길이 보이는 방향’이고 ‘파(破)’는 득을 통해 들어온 물길이 인간 삶터를 유장히 적신 후에 ‘빠져나가는 쪽’ 또는 그 ‘빠져 나가는 물길’을 말한다.

6)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황제의 조서(詔書)를 각 지방에 포고하는 직책.

7) 묏자리로 적당한 땅.

8) ‘은혜로운 아버님’ 정도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