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이곳이 명당자리입니다(1)

2008. 8. 14. 20:47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20. 이곳이 명당자리입니다(1)

상서 김 아무개는 사람을 잘 알아보는 슬기가 있었다.

하루는 길을 나섰다가 노상에 웬 총각이 서있는데 의복이 남루하여 몰골이 추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속으로 불쌍하고 가엾게 여겨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와 사는 곳과 성명을 물으니 총각이 대답했다.

“어렸을 때에 부모를 잃어 빈궁하고 의탁할 곳이 없어 시장 주변으로 구걸을 다닌 지 이미 오래되었기에 성명을 알지 못 하겠습니다.”

“그러면 나이는 몇인고?”

“열다섯입니다.”

김 상서가 그 용모를 자세 살피니 곧 얼굴 생김새가 천인이 아니요, 후일에 반드시 높이 오를 상이어서 총각에게 말했다.

“네가 우리 집에 있으면 먹고 입는 것이 부족치 않을 것이니 너는 나와 함께 한 집에 살다가 후일 좋은 기회를 기다려 벼슬길을 여는 것이 어떠하냐?”

총각이 백배 감사드리며 말하였다.

“남의 집에서 심부름이나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몸입니다. 혈혈단신의 몸을 의지하고 맡길 곳조차 없는 자를 위하야 구렁텅이에 굴러다닐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렇듯 거의 다 죽게 된 목숨을 구해주시니 그 크신 은혜를 이생에서 어찌 다 갚겠습니까.”

“너의 골격을 보아하건대, 결코 상민이나 천인의 상이 아니다. 마땅히 학업을 부지런히 닦아 훗날 좋은 운이 오기만 기다리도록 해라.”

그리고는 이름을 김동(金童)이라 부르고 먹고 입는 등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을 극히 풍족하게 해주었으며, 또 서재에 머무르게 하여 과거공부를 하게끔 하였다.

김동은 총명하고 슬기로워 한 번 눈으로 본 것은 잊지 않았으므로 학업이 크게 진전하여 날로 나아가며 달로 자라났다. 상서가 심이 애지중지하여 잠시라도 떨어지지 못하게 하니 은혜와 정이 마치 부자와 같았다.

상서는 본래 잠이 적은 사람이었다.

비록 깊은 밤중이라도 한 번 부르면 김동이 바로 대답하고 응하는 것이 매우 빨랐고 오히려 하인들은 뒤에야 왔으니 이로써 더욱 사랑하였다.

김동이 상서의 집에 있으며 매일 서재에서 책을 보는데 시간이 조금만 나면 항상 성력(星曆)1)의 책을 열심히 보거늘 상서가 그렇게 된 이치를 물어보면 그 속뜻을 꿰어 말하곤 하였다. 또 함께 옛사람의 일을 말할라치면 익숙한 글을 암송하듯 막힘이 없었으나, 다른 사람과 말할 때에는 우물쭈물하여 피하여 재능을 감추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상서가 친 아들과 같이 대하여 모든 일을 상의하여서는 행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내를 얻는 것만큼은 상서가 몇 번을 권해도 한사코 따르지 않았다.

차츰차츰 세월이 흘러 근 십년이 지났다.

하루는 상서가 밤에 잠을 깨어 김동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두세 번을 불러도 마찬가지여서 아예 불을 켜고 두루 찾아보았으나 모습이 없었다. 상서가 괴이하여 망연히 양손을 잃은 듯 잠자고 먹는 것이 전만큼 달지 않았다.

나흘 만에 김동이 얼굴에 기쁜 빛을 띠고는 와서 뵈니, 상서가 놀랍고 기뻐하였다.

 “아니, 네가 어찌 나에게 알리지도 않고 나갔으며 또 어디를 갔다 온 거란 말이냐? 내 너를 대하는 것이 혹여 못마땅한 점이라도 있었더냐? 또 얼굴에 기뻐하는 빛이 있으니 이는 무슨 연유에서이냐?”

“마땅히 조용한 틈을 타서 상세히 말씀드리겠으니 조금만 계십시오.”

그날, 한밤중이 되자 좌우에 사람이 없는 때를 타서 김동이 상서를 찾았다.

“저는 조선인이 아니요, 중국 아무개 각로(閣老)1)의 아들이옵니다. 부친께서 간신에게 헐뜯음을 당하여 사문도(沙門島)1)로 멀리 귀양을 가셨고 문중의 겨레붙이들도 모두 죄를 당하였기에 제 몸을 의탁할 곳이 없었습니다. 부친께서는 사람의 운수를 보는 지혜가 깊으셨지요. 귀양을 떠나실 때 소자에게 가르침을 주시기를, ‘내가 십년 후에 마땅히 황제의 용서를 받아 다시 돌아 올 것이다. 네가 중국에 있다가는 간신의 손에 죽게 된다. 동쪽 조선으로 가 반드시 화를 멀리하고 있으면, 온전한 몸으로 무사히 살아 돌아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저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구걸하여 조선에 온 것이었는데 천행으로 대인의 하해와 같은 은택을 입은 것입니다. 친 아들과 같이 길러주시고 가르쳐 인도해 주셨으니 이승에서 막대한 은혜를 갚을 방법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 아뢰지도 않고 나간 것은 과천(果川)에 있는 오봉산(五峯山)에 올라 성상(星象)1)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부친이 이미 석방되어 돌아오셨기로 얼굴에 기쁜 빛이 돈 것입니다. 그러나 십년간 대인께서 어루만져 사랑해주신 정을 하루아침에 뒤로하고 돌아갈 것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겠기에, 어떻게 해서든지 은혜를 갚으려는 마음이 깊고도 간절하였습니다. 그래 오봉산에 들어 가 길한 곳을 두루 찾아보았더니 천하에 드문 한 혈맥이 있어 이를 점쳐 얻어 놓고 온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저와 함께 가서 보시지요.”

상서가 심히 놀랍고 기이하여 칭찬하고는, 다음 날 오봉산에 함께 가 한 언덕배기에 올랐다.

김동이 한 곳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곳이 곧 크게 길한 땅입니다. 한 달 이내로 급히 부친 산소를 옮겨서 장사를 다시 지내십시오.”

그리고 아무 날이라는 날짜를 가리고 무덤의 방향까지 정해주며 말했다.

“이 땅은 자손이 창성하야 다섯 손에 걸쳐 다섯의 재상이 나올 것이니 의심치 마옵소서.”

그리고 곧 돌아가겠다고 하직 인사를 올리니 상서가 애틋한 정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며 작별을 하였다.



1) 별의 운행을 고찰하여 만든 역법(曆法).

2) 중국 명나라 때에, ‘재상(宰相)’을 이르던 말.

3) 중국 산동성(山東省) 봉래현(蓬萊縣) 서북쪽으로 60리 떨어진 바다에 있는 성으로 송나라 때 죄인을 유배시키던 곳임. 

4) 별자리의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