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괴사(怪蛇)는 세 시까지 다른 곳으로 피하라

2008. 8. 28. 21:52포스트 저서/못 다한 기인기사

장붕익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운거(雲擧), 호는 우우재(憂虞齋)로 야담문학에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무신으로서 종로구 돈의동에 살았으며 어영대장 · 훈련대장 · 형조 참판 · 우포도대장 · 형조 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무숙(武肅)이란 시호를 받았다.



14, 너! 괴사(怪蛇)는 세 시까지 다른 곳으로 피하라

 대장(大將) 장붕익(張鵬翼,1646∼1735)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남달리 사리에 밝고 재주가 뛰어났으며 또 용맹하고 굳세고 과감한 기풍이 있었다.

일찍이 남병사(南兵使)1)가 되어 근무하는 처소에 부임하니 시골의 아전과 백성이 모두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신위장군(神威將軍)이라 불렀다.

하루는 붕익이 융주헌(戎籌軒)의 커다란 대들보가 반이나 썩은 것을 보고 군리(軍吏)2)를 불렀다.

“큰 대들보가 이미 썩어 문드러져 몇 년을 지나면 장차 넘어질 근심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거늘 이를 개수하지 않는 게냐?”

“실로 말씀하신 바와 같으나, 이것을 대신할 만한 큰 나무 둥치가 없어 아직까지도 바꾸지를 못하였습지요.”

붕익이 삼문(三門)3) 밖에 있는 큰 홰나무가 있어 열 아름이나 되는 것을 보고는 이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홰나무가 알맞게 맞추어 쓸 만하니, 이것을 베어 고치는 것이 좋겠군.”

“이 나무가 실로 좋은 재목임이 틀림없사오나, 다만 나무속에 한 커다란 괴사(怪蛇)4)가 있습지요. 혹 가지 하나라도 흔들면 뱀이 화를 내려 민간에 큰 역질이 돌거나 화재가 일어나서 감히 이것을 베지 못하나이다.”

붕익이 “허허” 웃었다.

“어찌 괴이한 뱀을 우러러 받들어 인류를 해치는 일이 있겠느냐. 속히 이것을 도끼로 찍어 내어 큰 대들보의 석재에 충당해라.”

영이 내렸으나 군리 등이 아무 말도 없이 서로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며, 뱀이 재앙을 내릴까 두려워하여 감히 명령을 듣지 못하였다.

붕익이 시행하라고 다시 말했다.

“만일 뱀이 앙화를 내리면 그 화는 내 스스로 짊어질 것이니, 곧 내 명령대로 전례에 따라서 시행하라.”

군리 등이 아직도 작고 큰 도끼를 집지 못하며 땅에 엎드려 애걸하였다.

“소인들이 매를 맞아 죽을지언정 감히 명령에 따르지 못하겠나이다.”

이러하자 붕익이 군령을 써서 홰나무에 붙여놓았다.

“오직 너! 괴사는, 세 시까지 다른 곳으로 피하라. 만일 그러하지 않다면 너에게 군령을 시행하리라.”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과연 한 커다란 뱀이 보였다.

길이가 수십 장(丈)5)이요, 그 크기가 여러 둘레였다. 뱀이 구불구불 나가서 서서히 남산(南山)의 너럭바위 위로 가서 융주헌(戎籌軒)을 향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에 군리에게 명하여 홰나무를 베어 대들보를 보수한 후에 낙성(落成)을 축하하는 연회를 크게 베풀었다. 인접 군의 수령을 청하여 맞아서는 술을 마시고 음악을 펼치고 아주 즐거움을 다할 때였다.

홀연 한 군리가 급히 들어와 보고하였다.

“그 괴사가 온 몸의 독기를 내뿜으며 바야흐로 융주헌을 향하여 옵니다.”
붕익이 이에 인근에서 온 벼슬아치들과 기녀 등에게 “잠시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하시오.”하고는, 급히 큰 군문(軍門)에서 쓰는 깃발을 설치하고 징을 크게 친 뒤에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나가갔다.

 뱀은 느릿느릿 오다가 삼문 밖에 이르러서는 나는 듯이 병사의 앞을 향하여 곧장 입을 벌리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더니, 그 몸에 돌연 빛이 번쩍하며 공중에서 높이 뛰어올랐다. 그러자 붕익이 몸을 솟구쳐 보검을 휘둘러 그 머리를 베어버렸다. 그러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가 홀연 한번 뛰어올라, 아가리로 큰 대들보를 ‘우지끈’ 씹어서 삼키고 거꾸로 매달려서는, 더러운 비린내를 사람을 향해 풍기었다.

이때에 이 광경을 본 군리(軍吏)6)들이 모두 얼굴빛이 변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붕익이 그 턱 아래에 있는 검은 사마귀가 구슬과 같음을 보고 그 머리를 베고 몸과 함께 불에 넣어 살라 버렸다. 그러한 뒤에 정신과 기운이 태연자약하니 다시 가무를 베풀고 종일토록 즐거움을 다하는 것이었다.

 각 수령 이하 군리들이 사람의 지혜로는 도저히 생각지 못할 신기한 용기가 무쌍함을 보고 탄복치 않는 자가 없었다.

 공이 벼슬살이한 지 16년 후에 장차 벼슬자리가 바뀌어 돌아올 때 한 명마를 얻었는데 그 값이 천 냥이었다. 하루 700리를 가는데 턱 아래에 검은 사마귀가 있어 전일 본 괴사의 머리와 같았다. 공이 사랑하곤 장수로 있는 내내 이 말을 몰았다.

수십 년이 지나 공의 나이가 칠순에 가까워 늙어 물러났다.

매일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에 말이 뛰는 발굽 소리를 들으면 친히 콩깍지를 꺾어 먹이기를 서너 해를 하였다.

하루는 저녁에 꼴을 잡고서는 말을 먹일 때였다.

 말이 머리로 공의 손을 문질러 아주 기쁜 듯이 하더니 순간적으로 그 어금니의 뾰족한 부분으로 공의 손가락을 찔러 핏방울이 비치게 하였다. 공이 이를 살피지 않고 방에 들어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꿈에 커다란 뱀이 와서 말했다.

“오늘에야 내가 그대에게 원수를 갚았노라.”

공이 꿈을 깨서는 또한 아무 걱정 없이 평정한 모양이더니 며칠 뒤에 병이 들자 자제를 불러들였다.

“내가 이제 상제(上帝)의 명을 받들어 장차 옛날의 직책을 맡아 임지로 돌아가니 너희들은 집안의 명성을 떨어뜨리지 말고 가문을 보전하라.”

말을 마치자 마침내 갑자기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