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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姜邯贊)인가? 강감찬(姜邯瓚)인가?
강감찬(姜邯贊)인가? 강감찬(姜邯瓚)인가? 번역이 꽤 길어진다. ‘姜邯贊’의 한자 이름에서 도울 ‘찬(贊)’자가 아니라, 제기 ‘찬(瓚)’가 맞다는 견해를 소개한다. 『정조실록』 20년 병진(1796) 7월 21일(갑자)에 보이는 기록이다. 예조 판서 민종현이 아뢰기를, “현충사의 위차(位次)에는 이미 고려 태사(太師) 강감찬(姜邯贊)…또 아뢰기를, “송경(松京) 흥국사(興國寺)의 옛터에 탑 하나가 있는데, 탑면에 음기(陰記)가 남아 있습니다. 이는 곧 강감찬이 쓴 것인데 그 이름이 찬(瓚) 자로 적혀 있어 공사 서적에 실려 있는 바와 다릅니다. 대개 석각(石刻)은 목각 판본에 비하여 훨씬 더 믿을 만한 것입니다. 지금 이후로 강감찬의 이름을 모두 찬(瓚) 자로 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하니, 따랐다...
2023.01.19 -
‘강감찬’이지 ‘강한찬’이 아니다.
‘강감찬’이지 ‘강한찬’이 아니다. 을 번역하며 많은 부분에서 멈칫 거린다. 인터넷을 보니 ‘강감찬(姜邯贊)’을 ‘강한찬’으로 독음을 달아야 한다는 글들을 보았다.(‘강감찬’을 ‘강한찬’으로 알린 것은 아마도 재야 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최초의 민족 통일국가 고려』(한길사, 2007)부터가 아닌가 한다.) 뜬금없이 '일제 치하와 연결하여 우리 정기를 말살하려하였다'는 것이 그 한 이유다. 또 한 이유는 ‘邯’의 음이 고을 이름 ‘감’ 고을 이름 ‘한’ 따위로 나오는 데 대부분 ‘한’을 쓴다며 ‘강한찬’으로 읽어야 한다는 참신한(?) 주장이다. 결론부터 말한다. 두 이유 모두 근거 없다. ‘강감찬’이 맞다. ‘姜邯贊’을 한글로 독음을 단 최초는 1446년 한글 반포 이후이다. 이후, 어느 문헌에도 일관되게..
2023.01.18 -
<문고자 물고야(問楛者 勿告也)> 묻는 게 예의 없는 자와 말하지 말아라.
묻는 게 예의 없는 자와 말하지 말아라. 엊그제 00000000을 만났다. 요즈음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든, 항상 감초처럼 따라붙는 ‘이야기 진행법’이 있다. 처음엔 인사치레에서 다음에는 슬그머니 정치로 넘어간다. 서로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은 정치를 찾으면 된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고 수많은 나아갈 길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이야기는 2분이면 충분하다. ‘나쁘다’와 ‘좋다’, 그리고 ‘내 편’과 ‘네 편’ 딱 두 가지 경우밖에 없어서다. 순자는 이런 대화 상대를 만나면 아예 이야기를 하지 말라 한다. 『순자』 제1 「권학(勸學)」에 보인다. “묻는 게 나쁜 자에게는 대답하지 말고 대답이 나쁜 자에게는 묻지 말아라.(問楛者 勿告也 告楛者 勿問也)” 순자는 아예 이야기를 말라 한..
2023.01.17 -
<소손녕과 소배압의 사이>
가끔씩 내가 알고 있던 사실(事實)이 진실(眞實)이 아닐 때가 있다. 『기인기사』상, 마지막 을 번역하며 사실과 진실 구별이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책에서는 강감찬과 싸운 장수가 ‘소손녕(蕭遜寧?~997)’으로 되어 있다. 분명 『고려사절요』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절요』제3권 ‘현종 9년(1018), 송 천희 2년ㆍ거란 개태 7년 12월 무술일’ 항목 기록은 이렇다. “거란의 부마 소손녕(蕭遜寧)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침략하면서 군사 10만 명이라고 소리쳤다. 왕은 평장사 강감찬(姜邯贊, 948~1031)을 상원수로, 대장군 강민첨을 부원수로 삼아 군사 20만 8천 3백 명을 거느리고 영주(寧州, 평남 안주)에 주둔하게 하였다. 흥화진에 이르러 기병 1만 2천 명을 뽑아 산..
2023.01.16 -
<불급마복(不及馬腹)> 채찍이 아무리 길어도 말의 배까지 휘두를 수는 없다
채찍이 아무리 길어도 말의 배까지 휘두를 수는 없다 을 번역하다 ‘마복(馬腹)’을 만났다. 이 말은 『춘추좌씨전』 선공(宣公) 15년에 “채찍이 아무리 길다 해도 말의 배까지 휘두를 수는 없다(雖鞭之長 不及馬腹)”라는 말에서 비롯하였다. 말의 배를 채찍질한 들 말이 더 빨리 달리지 않는다. 긴 채찍은 보기에는 그럴듯해도 실제로는 효용 가치가 별로 없다. 전하여 ‘인생에는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음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보면 부럽다. 공부를 하며 특히 암기에 뛰어난 이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럴 때면 ‘나에게 저런 재주가 있었으면…’하고 내 어리석고 둔함을 탓해보기도 한다. 그래 이런 성어를 만나면 반갑기 그지없다. 채찍이 길건 짧건, 화려하건 못난 건, 말을 잘 달리..
2023.01.13 -
야담의 귀환 <인천일보>에 실린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
[책]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 조선인들의 들숨과 날숨 조선시대 별난 사람들 이야기 송순기 선생 1921년 '기인기사록' 간호윤 교수가 다듬어 책으로 ▲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 조선인들의 들숨과 날숨 송순기 지음·간호윤 편역 경진(도서출판) 260쪽, 1만8000원 100년을 뛰어넘은 대화. 1921년 식민 지식인 송순기 선생이 펴낸 이 한 세기를 넘어 휴헌(休軒) 간호윤 교수가 다듬어 으로 재탄생됐다. 간호윤 교수는 11일 “식민지 시대, 일제는 우리의 혼과 정신을 말살하려 했고, 송순기 선생의 도 세상에 빛을 보기 어려웠다”며 “이번에 이 중 일부를 선정하고 해설을 붙여 로 간행했다”고 말했다. 은 1921년 12월 나왔다. 송순기 선생은 일제의 식민 통치가 본격화되던 1920년대 민족의..
2023.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