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고자 물고야(問楛者 勿告也)> 묻는 게 예의 없는 자와 말하지 말아라.

2023. 1. 17. 13:10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문고자 물고야(問楛者 勿告也)> 묻는 게 예의 없는 자와 말하지 말아라.

 
 

엊그제 00000000을 만났다. 요즈음 언제, 어디서, 누구를, 어떻게 만나든, 항상 감초처럼 따라붙는 ‘이야기 진행법’이 있다. 처음엔 인사치레에서 다음에는 슬그머니 정치로 넘어간다. 서로 잠자코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은 정치를 찾으면 된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고 수많은 나아갈 길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 이야기는 2분이면 충분하다. ‘나쁘다’와 ‘좋다’, 그리고 ‘내 편’과 ‘네 편’ 딱 두 가지 경우밖에 없어서다. 순자는 이런 대화 상대를 만나면 아예 이야기를 하지 말라 한다.

『순자』 제1 「권학(勸學)」에 보인다.

 

“묻는 게 나쁜 자에게는 대답하지 말고 대답이 나쁜 자에게는 묻지 말아라.(問楛者 勿告也 告楛者 勿問也)”

 

순자는 아예 이야기를 말라 한다. “함께 말할만하지 않은 데 말하는 것을 일러 남을 멸시하는 것이라 한다(故未可與言而言 謂之傲)” 하였다. 순자가 이유로 든 ‘남을 멸시하는 것’이라는 오(傲)는 ‘① 거만하다 ② 놀다 ③ 남을 멸시하다 ④ 오만하다’ 따위 뜻이다. 이미 묻는 자세도 답하는 자세도 대화하려는 의도조차 없다. 둘 중, 하나 나하고 맞으면 ‘옳고’ 나하고 다르면 ‘틀리다’이다. 저쪽이 그러니 이쪽도 마찬가지다. 이미 상대를 대화 상대[벗, 혹은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 서로의 오만이다. 선생 생활 30년 넘어 깨달은 사실이 있다. 이 세상에서 내 말에 설복 당할 학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저런 오만한 상대를 말로 깨우칠 수 없다면 차라리 듣고 있든지, 아니면 훗날을 기다리는 게 낫다.

자리를 뜰 수 없는 사이라면 다음은 돈 버는 이야기다. ‘잘 살고 못 살고' 이야기는 꽤 시간이 길어도 거의 다툼이 벌어지지 않는다. 돈 버는 이야기 역시 순자에게 조언을 구해본다.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를 순자는 이렇게 가른다. 

『순자』 제10 「부국(富國)」에 보인다. 

 

(여러 사람들이) 돈과 재물을 출납하는 계산에는 틀림없고 밝으면서도 예의범절은 어둡고 태만하여 아무렇게나 한다면, 이는 망할 나라이다.(其於貨財取與計數也 須就盡察 其禮義節奏也 芒軔僈楛 是辱國已)

 

예의절주(禮義節奏,예의범절)이 없으면 못 사는 나라라 한다. 잘 사는 나라는 어떠할까?

 

(여러 사람들이) 돈과 재물을 출납하는 계산에는 관대하여 데면데면하면서도 예의범절은 엄밀하고 근엄하여 빠짐없이 살핀다면, 이는 번영할 나라이다.(其於貨財取與計數也 寬饒簡易 其於禮義節奏也 陵謹盡察 是榮國已)

 

역시 ‘예의절주(禮義節奏,예의범절)’이다. ‘정치’든 ‘경제’든 서로 간에 지켜야 할 예의가 있어야 한다. 예의는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으로서 기본이다. 이미 기본이 안 되어 있는 데 어찌 서로 말이 통하고 잘 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