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지겨움>

2022. 12. 16. 15:41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밥벌이의 지겨움>

 

눈덮힌 캠퍼스에 겨울 햇볕이 좋다. 학기를 마쳐 그런지 학교 도서관에 학생들이 없다. 여유롭게 책 몇 권을 골랐다. 도서관에 오면 지적 향기를 느껴 좋다. 겨울 해는 친절하게 점심나절임을 알려준다.

 

학교 뒤 <까사올리브>를 찾아 고민 끝에 ‘토마토 해산물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아무리 찾아도 내 입맛을 당기는 메뉴는 없었다. 음식 단가를 보니 14500원이다. 학교에서 한 학기 수고했다고 2만 원짜리 음식 쿠폰을 주었다.(꼭 <까사올리브>에서만 먹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크리스마스 캐럴 송도 나오고 분위기는 제법이다. 

 

대학가답게 책 몇 권이 꽂혀있다.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이 눈에 들어온다. '밥벌이의 지겨움'과는 어울리지 않는 표지이다. 상당히 고급스러우며 화려하다. 책 몇 권 내다보니 표지만 보아도 출판사에서 보는 저자의 무게를 가늠한다.

 

음식은 내 의구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토마토 국물에 건조한 면발, 그 위에 홍합 1개, 바지락 1개, 새우 1마리, 커피 한 잔은 서비스란다. 영 입맛이 돌지 않는다. 입안을 겉도는 14500원짜리 파스타 면, 그리고 ≪밥벌이의 지겨움≫, 둘이 묘하게 얽히더니 곧 출간될 내 책까지 끌어당긴다. 

 

출간될 책은 10여 년 끼고 앉아 번역하고 덧말을 넣은 야담집이다. 책값은 18000원, 책이 도통 안 팔린다 하여 1쇄는 인세를 안 받는다 하였다. 혹 2쇄를 찍으면 10% 인세를 받게 된다. 그러면 1800원×(?)=20000원이 되나 계산하다가 윗입술을 깨물었다. 순간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글자가 꿈틀 살아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내 학문이니, 글쓰기 역시 ‘밥벌이’였다. ‘나름 고귀하다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이번엔 아랫입술마저 막대기 같은 파스타 면과 함께 씹어버렸다. 

 

햇볕은 참 좋다. 학기를 마친 캠퍼스엔 햇볕만이 오롯이 남아 여기저기 눈을 녹이느라 분주하다. 교문을 나서는데 ‘밥벌이의 지겨움’이 왜틀비틀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