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통폐합과 인문학의 고사

2015. 6. 24. 11:36학생들의 글, 리포트/학생들의 글과 리포트

[인정물태: 알 필요도 있고 쓸 필요도 있는 주제]라는 과제를 수행한 서울교대 학생의 글입니다. 작그므이 우리 대학 교육에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인정물태: 알 필요도 있고 쓸 필요도 있는 주제]

 

학과 통폐합과 인문학의 고사

2015  윤리교육과 이00

 

서울교육대학교에 재학 중인 저의 심화전공 학과는 윤리교육과입니다. 그러나 타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에게 저의 학과에 대해 얘기하면 이러한 대답이 되돌아옵니다. “윤리교육과라는 과가 있어?” 실제로 서울에 소재한 4년제 대학교에서 윤리교육과를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각종 포탈을 뒤져보며 찾아봐도 서울 소재 윤리 관련 학과는 서울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의 윤리교육과그리고 동국대학교의 윤리문화학과가 전부입니다. 전국에 있는 모든 대학교로 확대해 찾아봐도 교육대학을 제외하고는 고작 18개가 전부입니다. 대한민국 법률이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라고 정의한 대학에서 경영학과’, ‘경제학과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인간의 근본을 찾아간다는 왜 이렇게 윤리교육과’, ‘철학과는 찾기가 어려운 것일까요?

 

최근 중앙대학교 그리고 건국대학교의 학과 통폐합 사안으로 교육계가 뜨겁습니다. 건국대학교는 예술문화대학과 정보통신대학, 건축대학의 학과를 통폐합하겠다는 학사구조 조정안을 내놓았고, 중앙대는 2016학년도부터 학과제를 전면 폐지하겠다는 학사구조 개편안을 발표했습니다. 이러한 학과 통폐합에 대하여 학생들은 강력히 반발하여 집단 데모를 벌이고 학교 측은 절차를 강행하려 하는 등 학교와 학생간의 마찰이 강력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 가까이 있는 친구들 중에서도 이와 같은 학과 통폐합의 직격탄을 맞은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그 학과에 15학번 신입생으로 들어오자마자 과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웃지 못 할 상황에 처해있는 친구도 있습니다. 그는 대학교 새내기로서 대학생활을 즐기는 대신 우리 과를 살려주세요.’, ‘이럴 거면 신입생을 왜 선발하였느냐.’ 등의 팻말을 들고 학교에 모여 시위를 해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학과 통폐합이 몇몇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성대는 순수학문 분야를 유사계열 학과로 합치겠다는 조정안을, 한국외대는 2016학년도부터 학과별로 신입생을 모집하겠다는 조정안을 낸 바 있습니다. 이화여대의 구조개혁 방안도 표면화되고 있고, 국민대와 숭실대도 구조개혁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학 측은 이러한 학과 통폐합에 대하여 산업과 대학 간 미스매치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며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이는 대학교가 취업률과 재정 개선에 최우선 목적을 두고, ‘취업이 잘되는 좋은 대학교라는 평가를 위해 취업률이 낮은 학과를 취업률이 높은 학과로 통합시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입니다.

 

취업률과 재정 상태에 학교의 목표를 두는 소위 기업화된 대학교도 문제지만 이를 조장하는 교육부도 문제입니다. 지난 1월 교육부는 인문학과를 줄이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정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교육부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평가를 통해 대학들을 등급별로 분류하여 낮은 등급을 맞으면 불이익을 주는데, 통상적으로 취업과 직결되지 않는 인문대학과 예술대학은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아 대학이 불이익을 받게 됩니다.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대학교는 인문, 예술대학의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교육부가 대학의 인문, 예술대학 통폐합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학문을 존중하고 지원해야 할 국가가 오히려 학문의 통폐합에 앞장서고 있으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지식인들은 이러한 세태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한 인문대 교수는 요즘 학회에 가면 30·40대가 없다. 대학이라는 인문학적 지식의 발전소가 가동되지 않는다면 대중 인문학조차 소멸될 가능성이 높다.”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융합에 집중할 경우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렇게 대학에서까지인문학이 자리 잡지 못하면 인문학 자체가 고사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뿐만 아니라 한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교육부와 대학 당국의 일방통행식 대학 구조조정은 인문학과 인문대학의 황폐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학문 기반은 한 번 무너지게 되면 회복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구조조정이 건실한 인문대학과 인문학 연구의 기반을 무너뜨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교육부와 대학의 일방적 학과 통폐합의 절차를 지적한 것입니다.

 

지식인들의 우려에도 학교 측의 학사조정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고,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통폐합을 통보받고 있습니다. 학생들로서는 대학 측이 학생들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기를 바라지만 대학의 소통 없는 단행에 답답함과 억울함을 호소할 뿐입니다. 예전에 우연한 기회로 학생들의 시위를 진정시키기 위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총장의 연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단상에 선 총장의 첫마디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여러분 학교의 주인은 총장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중앙대학교 이사장이 총장과 보직교수 등 20여명에게 보낸 전자 우편에서 학사구조 개편에 반대하는 교수들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가장 피가 많이 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내가 쳐줄 것이다이러한 의식을 가진 학교에서 도대체 어떤 소통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의 의사결정으로 모든 것이 결정될 따름이겠지요.

 

학문적 가치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취업률과 재정상태만이 학교의 자랑이며 학과와 학문의 필요성을 재단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일까요?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고, 우리 학생들은 대학에서 무엇을 배워나가야 할까요. 마이클 센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돈벌이가 대학의 정책을 좌우한다면, 대학은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인 학문 추구와 시민의 기대 부응에서 멀어지고 만다.”

 

지금 인문, 예술대학의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상황에서 저는 비통한 심정으로 인문학과에 속해있는 제 자신에게 스스로 묻고 싶습니다.

 

나의 학문의 가치는 얼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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