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2015. 6. 10. 12:44학생들의 글, 리포트/학생들의 글과 리포트

 

세상 사는이야기를 써오라는 과제----서울교대 학생의 글입니다.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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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인정물태

 

그릇

 

 사람을 날 때부터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누군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것은 그 그릇의 크기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그 말에 의문을 품으며 노력하는 만큼 그 그릇의 크기를 넓힐 수 있고, 또 반대로 작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다. 점점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 같았고, 지금에 와서야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그릇의 크기가 아니다.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양이다. 누군가는 타고난 배포와 담력으로 범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내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가는 삶을 살고, 또 누군가는 그런 사람들을 지켜보는 삶을 살아간다. 타고남이라는 것, 그러한 그릇을 가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냥 부러워졌다. 그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나 왠지 먹먹하고 허무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나 묻고 싶어졌다. 그 때의 당신이 그릇에 대해 했던 말이 생각나느냐고. 나는 이제 그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진 현실이 조금 서운하게 다가온다고. 그런 생각으로 며칠을 보내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작은 그릇을 갖고 태어난 자가 큰 그릇을 갖고 태어난 자보다 훨씬 더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해보지 않은 채 현실만은 탓하고 있는 일은 아닌지. 행동 없는 탐욕으로, 잘나고 싶은 욕망으로 변화는 못한 채. 좀 작은 그릇이면 어떠랴, 그래도 어찌되든 단 하나뿐인 소중한 각자의, 자신의 인생 아닌가. 큰 그릇에 콸콸 쏟아지는 수도꼭지로 채워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보다 작은 그릇이라도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로 채워나가려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은 그릇에 크기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이미 가득 찬 삶이었다. 아무리 큰 그릇을 가지고 있어도 담으려 하는 의지와 노력이 없다면 작은 그릇을 꽉 채우는 것만 못하다. 후에 자신의 그릇에 담긴 그것들을 볼 때,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를 보며 가는 삶보다 작지만 찰랑거리는 그릇을 보며 떠날 수 있는 인생도 나름의 가치와 멋이 있었다. 그것을 잊고 보낸 그 시간이 후회스러웠다. 그러면서 지금의 내 그릇의 상태를 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것들을 들여다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사실은 보지 않더라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내 그릇의 크기를 알고 있으면서 내 그릇이 이것밖에 되지 않으냐며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었지 않은가. 무언가를 채우는 게 아니라 어떤 것을 채워야 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 그래서 떠올렸다.

 예쁜 그릇도 아니다. 큰 그릇도 아니다. 그러나 그 그릇이 내 그릇이다. 내 그릇에 담고 싶은 것들이 담겼으면 좋겠다. 그런 것들을 담을 수만 있는 그릇이라면 그것으로 내 그릇은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