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 행장>을 읽다가

2022. 8. 27. 09:49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율곡 이이 행장>을 읽다가

 

아침부터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 쓴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 행장을 본다. 사계는 처음에 구봉 송익필에게 예학을 배우고 후에 율곡 이이에게 성리학을 배웠으며 그 뒤 우계 성혼의 문하에도 출입하였다. 율곡의 ‘학문관(學問觀)’이 자못 눈길을 끈다. 아래는 율곡이 선조에게 올린 글에 나오는 학문관이다.

 

“옛날에는 ‘학문(學問)’이란 이름이 없었고 날마다 해나가는 ‘이륜(彝倫 사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의 도리’만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기에 따로 뚜렷한 명목(名目, 겉으로 내세우는 이름)이 없었습니다. 군자는 단지 그 ‘마땅히 해야 할 일만 하는 것’뿐인데, 후세에는 도학(道學)이 밝지 않고 이륜을 행함도 그치고 쓰이지 못했습니다. 이에 그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학문’이라 이름하였습니다. 

학문이란 이름이 생기고부터 도리어 세상 사람들이 취모멱자(吹毛覓疵, 털을 불어가며 흠집을 찾아낸다는 의미다. 다른 뜻으로 남의 과실을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라거나 혹은 위학(僞學, 거짓 학문)을 한다고 지목하여, 선을 행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숨기고 꺼려 흐지부지하게 학문이란 이름을 피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후세의 큰 근심거리입니다. 

군주는 모름지기 학문을 주장하여, 세속의 사람들로 하여금 학문하는 사람을 비방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학문이 어찌 다른 것이겠습니까. 다만 일상 속에서 그 옳은 것만을 찾아서 행하는 것일 뿐입니다.”

 

율곡 선생의 말을 들으면 학문이란 책이나 읽고 사물의 이치를 논하는 게 아니다. 그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학문(行其所當爲者 名之以學問)'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인 이륜이 없어지자 ‘학문’이란 말이 생겼다. 이때부터 ‘학문’은 도리어 남의 흠집이나 찾고 거짓 배움이나 찾는 부정적인 행위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되니 학문하는 사람을 비방하고 자연 학문하는 이들이 움츠러든다. 선생은 그래 선조 임금에게 학문을 장려하고 학자를 비방 못하게 하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지금도 그렇다. 학자연하며 ‘취모멱자’나 즐기고 행동은 따르지 않는 ‘위학’에서 멈춘 이들이 더 많다. 나 역시 저 ‘취모멱자’와 ‘위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선생의 말처럼 '학문이 어찌 다른 것이겠는가. 다만 일상 속에서 그 옳은 것만을 찾아서 행하는 것일 뿐(學問豈有他異哉? 只是日用間, 求其是處行之而已矣)'이다. 학문은 저만치 밀어놓고 그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제대로 하는지 곰곰 생각해 보는 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