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의 조건

2022. 8. 22. 15:26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성해응(成海應) 선생의 「추담집서(秋潭集序)」를 읽다가 좋은 글의 조건을 생각해 본다.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은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을 지은 실학자이다. 본집은 원집 61권, 외집 70권, 속집17책, 행장을 합하여 88책이다. 서족으로 아버지는 부사를 역임한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다. 성대중은 서족 출신임에도 문과에 급제한 뒤 종3품 북청 도호부사라는 최고위직까지 오르고, 『청성집(靑城集)』을 남겼다. 

추담(秋潭)은 서우보(徐宇輔, 1795~1827)이다. 조선 최고 양반 중 하나인 달성 서씨 가문으로 32살 나이에 요절하였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를 만든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아버지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는 113권 52책 250만 자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로 가히 우리 조선의 농업과 일상생활의 집대성이자 실학사상의 정수이다. 저술 기간만 무려 18년간에 달하는데 이 책을 내는 데 서우보의 공이 크다. 

성해응과 서우보는 서족과 양반, 25년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학문적인 교류를 하였다. 「추담집서」에서 성해응은 좋은 문장의 조건으로 기(氣, 기세)‧법(法, 법도)‧식(識, 식견) 세 가지를 들었다. 

 

“그러하여 문장이란 반드시 기세를 위주로 해야 한다. 기세가 진실로 창성하지 않으면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족히 금석의 악기 소리를 감당치 못한다. 기세가 있으나 법도가 없으면 건장한 말이 끄는 아름다운 수레라도 그 방울소리가 절주에 맞아 법도가 맞지 않는 것과 같다. 법도가 있으나 식견이 없으면 먹줄과 자를 가지고도 이를 쥐고서 재단할 줄 모른다. 이 세 가지가 다 갖추어진 뒤에야 가히 온전한 문장이라고 이를 만하다.(然文章必主乎氣 氣苟不昌則類蟋蟀之吟 不足當金石之樂 有氣矣而不以法則類馬壯輿美而不能中鸞和緩節之響 有法而不以識則類䂓矩繩墨。存乎握而不知所以裁之也 具是三者而後方可謂之全矣)”

 

성해응은 문장에서 기세, 법도, 식견이 모두 중하지만 그 중 보고 들어 아는 ‘식견’을 가장 크게 여겼다. 글을 써본 이라면 안다. 문재(文才)라는 게 분명 있다는 사실을. 특히 글의 기세에는 이 문재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나 법도와 식견은 글쓰기에 들이는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 책을 읽고 사물의 이치를 생각하며 키운 풍부한 견식은 글의 법도를 바로잡아줌은 물론, 주제와 내용의 폭을 확장시켜주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글은 조건은 재주보다는 노력에 있다. 

그러고 보니 내 논문이 거의 엉덩이로 쓴 논문이란 생각이 든다. 재주란 있으면 좋지만 꼭 필요한 충분조건은 아니다. 자음과 모음을 재주로 엮었다고 좋은 글은 아니기때문이다. 작가의 사상, 즉 주제와 내용이 없어서다. 온 마음을 다해 쓰고 또 쓰다 보면 주제는 명확해지고 내용의 폭도 넓어진다. 이 과정에서 글품은 자연 늘게 마련이다. 

이 글품이 심품(心品)으로 가고 심품이 행품(行品)으로 이어지고 인품(人品)으로 나아가야 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