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10) 이런 사람[人], 사람다운 사람이 그리워

2022. 5. 31. 15:01신문연재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10) 이런 사람[人], 사람다운 사람이 그리워

2022.05.31 15면

인인(人人): 사람이라고 사람이냐

인인(人人): 사람이 사람다워야

인인(人人): 사람을 사람이라 하지

 

2022년 5월 대한민국 이 땅, 대통령이 바뀌고 내로남불 자식교육 장관 임명에 지방선거 정치꾼들 출마 따위로 눈은 찌푸려지고 귀는 소란스럽다. 인간품격은커녕 인간실격인 이들이 사람을 다스리겠다고 한다. 문득 '이런 사람'이 생각났다. 이런 사람! 조선 후기 실학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그는 이런 '사람다운 사람'이었다.

그래, 좋다! 연암이.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유학에 붙은 저승꽃을 하나씩 떼어낸 연암의 삶이 좋다. 약관 때부터 매서운 지조를 지녀 좋고 가슴에 찰랑이는 바른 마음결과 자잘한 예법에 구애 받지 않는 호협성이 좋다. 꿈에서 보았다는 서까래만한 붓대에 쓰여 있는 '붓으로 오악을 누르리라.'라는 글귀가 좋고 나이 들어 병풍에 낡은 관습이나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당장의 편안함만을 취한다는 '인순고식(因循姑息)'과 잘못된 일을 임시변통으로 이리저리 구차스럽게 꾸며 맞춘다는 '구차미봉(苟且彌縫)'을 써놓고 “천하 모든 일이 이 여덟 자 글자에서 잘못되었다.”는 말씀이 좋고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그렇지만 기르면 잡아먹지 않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느니만 못하다.”라는 여린 심성이 좋고 스스로 삶 법을 빠듯하게 꾸리는 정갈한 삶의 긴장이 좋다.

위선적인 무리와 소인배와 썩은 선비들에 대한 통렬한 꾸짖음이 좋고 한골 나가는 양반이면서도 가난 내림하며 청빈한 생활이 좋고 한계성을 지닌 선비로서 제 스스로 몸을 낮춰 자신을 겸손히 하사(下士,삼류 선비)라 칭해 좋고 신분과 나이를 떠난 벗 사귐이 좋고 나라 안의 명산을 두루 다녀 기개를 키워 좋고 홍국영에게 쫓기어 연암협으로 몸을 숨겼다 지었다는 '연암'이란 호가 좋고 양금(洋琴)을 세상에 알려 좋고 안의현감 시절 관아의 낡은 창고를 헐어버리고 벽돌을 구워 백척오동각·하풍죽로당·연상각 따위 정자와 누각, 그리고 물레방아를 만든 실용정신이 좋다.

첫 작품으로 <이충무공전>을 지어 좋고 금강산을 유람하고 지은 <총석정일출>이란 시가 좋고 이서구가 지은 『녹천관집』에 써준 「녹천관집서」와 박제가의 『북학의』에 붙인 「북학의서」가 좋고 처남 이재성이 과거 우수답안을 묶은 『소단적치』에 여며 둔 「소단적치인」이 좋고 농업 장려를 위한 『과농소초』가 좋고 연행록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열하일기』가 좋고 ‘연암체’로 비변문체(丕變文體, 세칭 문체반정)를일으켜 좋고 『연암집』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것이 좋다.

초시의 초장과 종장에 모두 장원을 한 것과 회시에 응시해 답안을 내고 오지 않아 좋고 중년에 과거를 단념하여 좋고 자식들에게 “구차하게 벼슬길에 오르지 마라.”는 가르침이 좋고 안의현감·면천군수·양양부사 깨끗한 벼슬살이가 좋고 안의현감 시절 '저들도 손님'이라며 구휼먹이는 백성들과 똑 같은 밥상을 받는 정치인의 도리가 좋고 관리로서 궁속과 중의 무리를 제어하지 못하자 병을 칭하여 사직하여 좋고 “안타깝도다! 벼슬살이 10여 년에 좋은 책 한 권을 잃어버리고 말았구나.”라는 탄식이 좋다.

아버지를 위해 손가락 베어 약주발에 떨어뜨린 고운 효심이 좋고 형과 형수에 대한 정이 좋고 큰 누이의 죽음을 슬퍼하며 “누이의 눈썹이 새벽달 같다.”한 ¨백자증정부인박씨묘지명〃이 좋고 가난을 가훈으로 여긴 곱게 싼 인연 아내를 생각하며 홀아비로 생을 마쳐 좋고 고추장을 손수 담가 자식에게 보내는 잔잔한 정이 좋고 며느리의 해산바라지까지 걱정하는 살가운 시아버지 마음이 좋고 장인을 늘 칭송하고 공경하여 좋고 처남을 아껴 좋고 청지기 김오복이를 정으로 대하여 좋다.

하룻저녁 오십여 잔 술을 자시고도 주정 없어 좋고 첫 벼슬에 받은 녹봉으로 친구에게 빚 갚을 줄 아는 마음이 좋고 제자들을 학자로 대하는 스승의 자세가 좋고 벗 홍대용이 세상을 뜬 뒤 마음 아파 음악을 끊어 좋고 제갈량·한기·왕양명의 위인전을 지으려 한 것이 좋고 조헌·유형원을 존경하여 좋고 김창협과 김창흡을 마음으로 따라 좋고 “현달해도 선비의 도리를 떠나지 않고 곤궁해도 선비의 도리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개결한 다짐장이 좋고 마지막 유언이 “깨끗이 목욕시켜다오.”가 좋다.

변증적 사물인식이 좋고 사물에 대한 치밀한 관찰로 사실을 기술하고 대상을 묘사한 솜씨가 좋고 수평적 질서의 가치관이 좋고 다치적 사고와 언어 인식이 좋고 실증적 사고와 열린 사고가 좋고 당대 의고주의(擬古主義,진나라와 한나라 문풍을 모방하는 주의) 문풍에 반기를 들어 좋고 진정한 '진(眞,참)'을 얻으려 경험론적 요소와 관념론적 요소의 통합을 꾀하여 좋고 법고(法古,옛것을 익혀)와 창신(創新,새것을 찾음)을 통한 변증적 사고가 좋고 “작자가 글을 쓸 때는 전쟁에 임하는 마음으로 써야 한다.”는 전략적인 글쓰기가 좋다.

마음을 도스르고 먹을 갈아 역설·반어·속담·예증 따위 수사를 두루 써 좋고 우언(寓言,세칭 우화)으로 세상을 풍자하여 좋고 글줄이 맑고 향기로워 청정무구한 도량이 있어 좋고 억지 밖에 없는 세상에 칼 같은 비유를 든 뼈진 말이 좋고 연암의 붓끝에 완전한 사람이 없는 직필(直筆,곧은 글)이 좋고 남루한 삶까지 끌어안으려는 순수함이 좋고 조국 조선을 사랑하여 좋고 삶과 작품이 각 따로가 아니라는 점이 좋고 발맘발맘 낮은 백성들 삶을 붙좇아 갈피갈피 소설로 그려낸 것은 더 좋다.

인간들의 아첨하는 태도를 꾸짖는 <마장전>이 좋고 똥을 쳐서 밥을 먹는 천한 역부에게 '선생'이라 부른 <예덕선생전>이 좋고 놀고먹는 양반들을 '황충(蝗蟲,벼메뚜기)'이라 부른 <민옹전>이 좋고 진정한 양반을 따진 <양반전>이 좋고 유희 속에 몸을 숨긴 <김신선전>이 좋고 얼굴 추한 걸인 이야기 <광문자전>이 좋고 역관의 슬픔을 그린 <우상전>이 좋고 학문을 팔아먹는 큰 도둑놈 이야기 <역학대도전>이 좋고 배우지 못했어도 부부간 예절을 지킬 줄 아는 <봉산학자전>이 좋고 배웠다는 사이비 학자에게 범이 일침을 놓는 <호질>이 좋고 문장이 몹시 비분강개한 <허생>이 잼처 좋고 “남녀의 정욕은 똑같다.”고 외친 <열녀함양박씨전 병서>는 그 중에 더더욱 좋다.

이런 사람다운 사람 연암을 써 좋고 이 나라 5월의 푸르른 하늘이 참 좋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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