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8)검찰(檢察), 사람이 하늘 대신 쥔 권력…삼가고 또 삼가야

2022. 5. 3. 09:18신문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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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8)검찰(檢察), 사람이 하늘 대신 쥔 권력…삼가고 또 삼가야 - 인

“법 밖이 무서운 거다.” 이란 영화에 나오는 한 구절이 암울한 회색빛으로 따라온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두고 정계가 또 한 번 요동친다. '검수완박'에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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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8)검찰(檢察), 사람이 하늘 대신 쥔 권력…삼가고 또 삼가야
긍외(兢畏): 삼가고 두려워하라
부호석망(剖豪析芒): 털끝도 갈라 보고 까끄라기도 쪼개 보아라
내만내혼(迺漫迺昏): 함부로 하거나 흐릿하지 마라

 
“법 밖이 무서운 거다.” <사냥의 시간>이란 영화에 나오는 한 구절이 암울한 회색빛으로 따라온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두고 정계가 또 한 번 요동친다. '검수완박'에 반대하기 위하여 검찰총장은 사표를 내고 검사장들은 집단 회의를 하였다. 보수 언론들은 마치 사냥의 시간이라도 된 듯, 이에 동조하는 기사를 쓰고 여론조사를 하는 등 야단(惹端)에 법석(法席)을 떤다. 이 글을 쓰는 지금 “尹, 검수완박=부패완판 생각 변함없어…사실상 제동”이라는 기사가 뜨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검수완박' 법안을 막으려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 검찰총장 출신 당선자요, 그 당 대표이기에 뻔한 행보이다.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문제는,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해야 해결방안을 찾는다. 우리나라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독점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막강한 권한이다. 하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법이 무서운 게 아니다.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일 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검찰'이란 단어 앞에 '용공조작, 검언유착, 제 식구 감싸기 따위 이런 부정부패한 수식어가 불유쾌하게 붙어서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도 검찰의 악취이요, 김근태, 박종철… 일일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급기야는 한 나라의 대통령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일제치하 서슬 퍼런 '영감'이라 불리며 영예를 누린 법관의 후예들, 해방된 이후에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치며 권력의 시녀와 용병임을 자처하고 패거리 문화를 건설한 영감들, 오죽하면 '검찰공화국'이란 감투까지 썼을까. '검찰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하여 한 일이 무엇인가?'라는 반문은 정당한 문제 제기요, 개혁의 대상으로 당위성을 부여한 셈이다. '법 밖'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문헌에 따라 조금씩 설명이 다르지만 법(法)의 옛글자는 법(灋)이다. '법'은 금문(金文·고대 중국에서 금속에 새긴 글자)에서 '치(廌)'자가 들어간 '법(灋)'자였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법(灋)'은 '형벌(刑)'이라는 뜻이다. 공평하기가 물과 같아서다. '치(廌:해치:해태)'는 소와 비슷한데 외뿔 달린 짐승이다. “옛날에 시비와 선악을 가리는데 뿔에 몸을 닿게 하여 가려냈다”라 풀이해 놓았다. 해치[해태]상(象)을 국회, 경찰청, 대법원, 대검찰청은 물론이고 일산 사법연수원에도 세웠고 서울대학교 근대법학교육백주년 기념관 앞에 있는 '정의의 종'에도 새겨놓았다. 법과 관련된 기관이기에 시비와 선악을 물처럼 공평하게 다루라는 이유다.
선조들은 이 법 다루는 관직을 사직(司直)이라 하였다. 사직은 옳고 그름을 밝혀서 바로잡는 관리이니 지금으로 치면 검찰관이다. 해치[해태] 문양은 사직 관리의 업무 복에도 수놓았고 오늘날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대사헌 관복에도 해치[해태]가 그려진 흉배를 부착하였다. 이 사직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잡히기 때문이다. 고대 중국의 시가를 모아 엮은 <시경> <고구(羔 )>에도 “갖옷 입은 저 사람이여, 나라를 바로잡는 일을 맡으셨네(彼其之子 邦之司直)”라는 말이 나온다. 사직은 그만큼 나라 된 나라의 근간이다. 선조들은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을 수차례 중간하였으며 법의학서인 <무원록(無寃錄)>까지도 수입, 간행하였다. 원통한 자가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세종 22년에 <신주무원록>을 간행하였고 영조·정조 연간에는 <증수무원록>을, 정조 16년에는 <무원록언해>를, 심지어 일본에서도 <신주무원록>을 번역하여 간행할 정도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법 관련 서적인 <흠흠신서(欽欽新書)>로 검찰의 갈 길을 물어본다. 그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고 또 죽인다. 사람이 하늘의 권한을 대신 쥐고 있으면서 삼가고 두려워할 줄 몰라, 털끝도 갈라 보고 까끄라기도 쪼개어 처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곧 함부로 하거나 흐릿하여 살려야 할 사람을 죽여 놓고 죽여야 할 사람은 살리면서도 오히려 태연하고 편안하다(惟天生人而又死之…人代操天權 罔知兢畏 不剖豪析芒 迺漫迺昏 或生而致死之 亦死而致生之 尙恬焉安焉).” 법을 맡은 관리들에 대한 선생의 일갈이 서슬 퍼렇다. 선생은 그 끝을 이렇게 맺는다. “흠흠'이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삼가고 삼가는 게 본디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이어서다(謂之欽欽者何也 欽欽固理刑之本也).” 검찰은 개인에게는 생사를, 사회로는 시비와 선악을, 국가로는 나라의 기강을 세우는 법을 집행하는 기관이다. 당연히 '흠흠', 즉 '삼가고 또 삼가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새겨야 한다.
검찰의 구성체인 검사도 동일하다. 검사의 할 일은 선량한 사람은 편히 살게 해 주고, 죄 있는 사람에게 죗값을 받게 하면 된다. 선생은 백성들의 비참한 절규를 듣고도 그것을 구할 줄 모르는 것을 “매우 큰 죄악(斯深孼哉)”이라 하였다. 검사는 일반 행정 공무원과 달리 각자 단독으로 검찰사무를 처리하는 준사법기관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탄핵소추의 대상이다.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는 법무부 장관이나 사건에 따라 정치적 영향을 배제하기 위해 검찰총장만이 지휘·감독한다. 검사에게 이런 막강한 특권을 부여해 주었거늘, 그 '법'을 집행하며 '매우 큰 죄악'을 지어서야겠는가.
대거리하다 불리하다 싶으면 핏대를 세우고는 하는 말이 있다. “법대로 해!”이다. 이 말은 긍정보다는 빈정거림이나 악감정이 담긴 부정 의미가 강하다. '법대로'가 왜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쓰이는지 곰곰 생각해보아야 한다. '법 돌아가다가 외 돌아가는 세상'이란 말도 있다. 법대로 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잘못된 법 밖 방향으로 가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뒤죽박죽되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른다. 검찰은 사람이 하늘 대신 쥔 권력으로 나라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게 임무이다. 권력[법]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삼가고 또 삼가야 한다. 법을 지켜야 할 '검찰'이 '법 밖'에서 이 나라를 외 돌아가는 세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법 밖'은 그만 보았으면 한다. 끔찍하고도 무서워서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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