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6) 복거(卜居), 관석화균한 정치가 이뤄지면 ‘어디든지 살만한 곳

2022. 4. 5. 08:42신문연재

 

새 당선자 일성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다’란다. 언론들은 과잉 충성으로 ‘용산’을 덮기 위한 ‘김정숙 여사 옷값’을 연일 보도한다. 가관이다. 어느 뉴스가 나라의 안위에 큰 것인가? 이 어려운 시절에 시무(時務,당장에 시급한 일) 1조를 청와대 이전으로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주변에 무속인이 많아 그러려니 해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걱정이다. 이전 비용만 496억이니, 1조니 한다. 청와대가 흉지(凶地)라 옮긴다는 뜻인데 그러면 용산이 길지(吉地)인가? 때아닌 ‘풍수지리’ 논쟁이기에 실학자 청담(淸潭) 이중환(李重煥,1690~1756) 선생의 <택리지(擇里志)>를 다시 들추어 본다.

<택리지>는 우리나라 최초 베스트셀러로 ‘사람이 살만한 곳’에 대한 기록이다. 선생은 <택리지> ‘복거총론(卜居總論)’에서 사람이 살 만한 곳 조건을 네 가지 든다. 지리(地理), 생리(生理), 인심(人心), 산수(山水)가 그 4요소이며 이 중 하나만 모자라도 살기 좋은 땅은 아니란다. 유의할 점은 선생이 소위 풍수지리를 기술한 것은 틀림없으나 절대적으로 신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나씩 살펴본다.

지리: 선생은 “지리를 논하려면 먼저 수구(水口)를 보고, 다음에는 들판과 산 형세를, 이어 흙빛과 물 흐르는 방향과 형세를 본다”고 하였다. 사람이 살 집터의 조건으로 자연환경을 들었으니 풍수지리학이다. 현재 우리가 교통이 발달한 곳을 삶의 터전으로 잡으려는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선생이 말하는 삶터는 자연과 사람이 풍수학적으로 완전히 하나 되는 땅이다.

생리: 먹고사는 문제이니 경제지리학이다. 선생은 사대부일지라도 먹고사는 생업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따라서 선생은 생리의 조건을 “땅이 기름진 게 첫째이고, 배와 수레를 이용하여 물자를 교류시키는 곳이 다음”이라 한다. 특히 배와 수레를 이용하여 생산물을 유통하는 운송 수단을 콕 집어내는 말이다. 요즘 쓰이는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식품이 생산·운송·유통 단계를 거쳐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소요된 거리)를 연상케 한다.

인심: “인걸(人傑)은 지령(地靈,땅의 신령스러운 기운)”이라는 지리 인성학이다. 선생이 강조하는 것은 서민과 사대부의 인심과 풍속이 다른 점과 당쟁의 원인 및 경과였다. 선생은 사대부와 당파성으로 인심이 정상적이지 못함을 통탄한다.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정치꾼들은 지방색을 이용하여 인심을 이반시키는 등 톡톡히 효과를 보았다. 아직도 지방색 앞에서는 집단지성이란 말이 무색하다.

산수: 곧 산수 지리학이다. 선생은 “지리가 아무리 좋아도 생리가 넉넉하지 못하면 역시 오래 살 곳이 못 되고 지리나 생리가 다 좋아도 인심이 좋지 못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기고 또 근처에 아름다운 산수가 없으면 호연지기를 기르고 마음을 너그럽게 펼 곳이 없다”고 한다. 선생은 4요소 중, 산수를 맨 마지막으로 꼽았다.

하지만 선생이 4요소를 갖춘 몇몇 곳은 살만한 땅이라는 뜻이지, 꼭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선생은 <택리지> 곳곳에서 풍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항상 “감여가(堪輿家, 풍수지리가)의 말을 빌리면”, “소위(所爲)”라는 말을 사용하여 남들이 ‘세상에서 말하기를~’하는 식으로 인용하였다. 풍수지리를 반드시 믿으려는 어리석음에 대한 경계이다.

그렇다면 선생이 말하는 ‘가거처(可居處,사람이 살만한 곳)’는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택리지>, ‘발문’ 마지막 “아! 실(實)은 관석화균(關石和勻)이요, 허(虛)는 개자수미(芥子須彌)이다. 후세에 반드시 분변하는 자가 있을 게다”에서 그 답을 찾는다. 관석화균은 『서경』 「하서」 ‘오자지가’에 나오는 말로 석(石)은 120근, 균(勻·鈞)은 30근으로 무게 단위고, 관(關)은 유통한다, 화(和)는 고르게 한다는 뜻이다. 석을 유통시키고 균을 고르게 한다는 것은 백성이 사용하는 저울을 공정하게 한다는 의미이니, 곧 ‘법과 제도를 잘 지킨다’는 말이다. 선생은 이 관석화균이 실(實)이라 한다. 개자는 아주 작은 겨자씨요, 수미는 몹시 커다란 산이다. 둘 사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당연히 이는 그른 허(虛)라 하였다. 선생의 삶에 비추어보면 평생 떠돌이로 만든 정치 현실이 허다. 법과 제도가 잘 지켜지지 않는 정치였기에, 자기 죄는 겨자씨인데 벌은 수미산처럼 받았다는 선생의 속내이다. 선생은 남인으로 33세에 병조좌랑까지 올랐다. 이후 정쟁에 연루되어 혹독한 형벌을 받았고 일정한 거처 없이 30여 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였다. 이 역경 속에서 허탄과 한숨으로 한 땀 한 땀 엮은 책이 <택리지>다. 풍수지리학을 다룬 책인 듯하지만, 그 속엔 저러한 서글픈 정치가 숨겨져 있다.

선생의 견해는 ‘개자수미 없는 관석화균한 세상이면 어디나 살 만한 땅’이란 귀결이다. 그러니 청와대니 용산이니, 어느 곳이 길지이고 흉지가 따로 없다. 공명정대한 정치만 이뤄지면 이 나라 어느 곳이나 사람 살만한 땅이다. 당선자 주변에서 설쳐대는 당동벌이(黨同伐異,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이익에 의해 내 편과 네 편을 가름)만으로 정치를 일삼는 이 시대 정치꾼들과 자칭 무속인들이 5년 뒤를 생각하며 새겨볼 말이다.

마지막으로 선생은 ‘용산’을 어떻게 보았을까? 4요소를 대략 갖추었다는 몇몇 곳에 용산의 ‘용’자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자연과 인문을 합한 실학적 사고로 탄생한 세계 최초 실증적 인문지리서”라 별칭을 얻은 <택리지> ‘생리’ 편에 ‘용산 서쪽 강 마을에 공후귀척들이 정자를 지어 잔치 놀이 하는 곳(遊宴之所)이 되었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혹 용산으로 옮기면 저런 강마을이 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할 일이다. 일개 백성이지만 한 나라 운명이 걸렸기에 노심초사하여 썼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