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윤의 실학으로 읽는, 지금] (12) 언어(言語), 경계하고 경계하라! 망령된 말하는 입이여!

2022. 6. 27. 18:33신문연재

말할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안 되고 말할만하지 않은데 말해서도 안 된다.

자본주의의 악취를 쫓는 영화 <기생충(寄生蟲)>을 만든 나라답다. “맘충(엄마 벌레), 틀딱충(틀니 딱딱거리는 노인 벌레), 설명충(설명을 해대는 벌레), 진지충(농담을 못 알아듣는 벌레), …급식충(급식 먹는 청소년 벌레), 학식충(학생 식당 이용하는 대학생 벌레), 월급충(월급 받는 직장인 벌레)”. 우리 청소년이 즐겨 쓰는 언어들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쓴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식으로 말하면 언어적 폭력인 '언어[말] 밈(language meme)' 현상이다. 밈은 일종의 사회적 유전자로 후대에게 전달된다. 문화유전은 역사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문화권 내에서 습득, 모방, 변용되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의 언어는 청소년의 문화이다. 자칭, 혹은 타칭으로 쓰는 이러한 혐오성 어휘들로 우리 청소년들은 시나브로 맹독설(猛毒舌)꾼이 되어간다.

“노키즈존, 노교수존, 노시니어존, 노중년존, …개저씨, 남혐(男嫌), 여혐(女嫌), 극혐(極嫌)”은 또 어떤가. 노소를 가르고 빈부를 가르고 남녀를 가르는 이런 저주성 어휘들이 이 땅에서 전염병처럼 창궐(猖獗)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6월 7일 경남 양산 문재인 전 대통령 자택 주변의 보수단체 '욕설 시위'에 관해 '대통령 집무실 시위도 허가되는 판이니까 법에 따라서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는 보도는 더욱 끔찍하다. 이쯤 되면 이 나라는 애나 어른이나 관리나 백성이나 언어문화가 저열하기 짝이 없다. 마치 디스토피아 세계를 소설화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과 <동물농장>에나 나올 법한 어휘들 아닌가.

언어는 한 사람의 사고를 좌우할 뿐 아니라 사회적 관계이며 당대의 가치관을 담아낸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 선생은 “그러므로 천하만물의 정을 모두 드러내 전하는 것이 바로 언어다(故而盡萬物之情者 言語也)”(<답임형오논원도서>)라 했다. 때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우호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길흉과 영욕도 오직 언어로 인해서이다. 인간의 학명이 호모 로쿠엔스(homoloquens·말하는 인간, 혹은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인 이유다. 언어가 정신이고 정신이 마음이고 마음이 곧 언어이기에 언어는 곧 그 사람이요, 그 나라 문화이다. 인간의 욕망을 언어를 통해 분석한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언어는 트로이 목마'라 정의했다. 트로이 목마(Troy 木馬)가 난공불락 트로이성을 함락시키듯 언어는 우리의 사고와 세계를 식민지화 한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쓰는 언어지만 그 언어가 한 사람의 삶과 사회문화를 점령한다는 뜻이다.

그래, 사상의학을 창시한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1838~1900)는 <격치고(格致藁)>에서 “경계하고 경계하라!, 망령된 말하는 입이여!(戒之戒之 妄出口兮)”(<유략> 20조목)라 했다. 이유는 '입은 백(口屬魄)'을 달라붙게 해서이다. '백(魄)'은 넋이요, 얼이요, 혼이니, 우리 몸을 주재하는 정신이다. 또 입은 들숨과 날숨을 주관하기에 폐와 연결된다. 선생의 또 다른 저서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에서 “폐는 나쁜 소리를 미워한다(肺惡惡聲), 나쁜 소리는 남에게 상처를 입히고 헐뜯는 소리(惡聲 是毁謗之聲)”라 하였다.(<성명론>) 선생은 또 이렇게 되면 '전증(癲症, 실실 웃는 증세), 광증(狂症, 미친 증세), 나증(癩症, 문둥병 증세), 서증(癙症, 속 끓이는 증세)' 따위 근심이 닥친다 하였다.

플라톤(Platon) 역시 언어를 '파르마콘(pharmakon·문자는 기억과 진실을 돕는 약이자, 망각과 거짓을 가져오는 독)이라 정의하여 언어가 지닌 선악, 이항대립 속성을 지적한다. 오죽하면 불교에서도 십악(十惡)에 입으로 짓는 악업이 네 개나 되니, 망어(妄語·남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말), 양설(兩舌·이간질 시키는 말), 악구(惡口·남을 성내게 하는 말), 기어(綺語·교묘하게 꾸며대는 말)이다. 타인을 해코지하려는 독언(毒言)과 독설은 기생충처럼 자기 몸을 파고들어 병들게 할 뿐 아니라 사회도 파괴한다.

뇌는 더욱 그렇다. 1.3㎏밖에 되지 않는 회백질 뇌에는 1000억~1조에 달하는 뉴런이 있다. 뇌는 사람의 사고에 관여하고 신체를 움직이는데 신호를 보내는 중추기관이다. 뇌 무게는 몸무게의 2% 정도밖에 안되지만 인체 소모 에너지 중 20~25%일 정도로 절대적이다. 생각이나 느낌, 의도를 드러내거나 타인에게 의사를 전달할 때 작용하는 좌뇌가 바로 언어영역이다. 상대에게 퍼붓는 냉소와 독설의 언어문화는 부메랑으로 돌아와 좌뇌에 문제를 일으켜 개인의 삶과 사회를 파괴시킨다. 명장 페릴루스(Perillus)가 만든 형벌기구 '시칠리아 암소(Bronze bull of Phalaris)'의 최초 희생자는 바로 그 자신이었음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세 치 혀는 구화지문(口禍之門·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설참신도(舌斬身刀·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 선인들은 적구독설(赤口毒舌·붉은 입으로 내뱉는 독한 말)하면 혀를 뽑아 쟁기로 갈아엎는다는 뜻으로 말로 죄악을 저지른 사람이 간다는 발설지옥(拔舌地獄)에 떨어진다고 입단도리하며 말을 삼가고 삼갔다. 선한 말을 하고 선한 글을 쓰지 못할 바엔 입을 틀어막고 손을 묶어 두는 게 차라리 낫다.

임진왜란, 정묘.병자호란 때 의병장을 지낸 안방준(安邦俊·1573~1654) 선생의 <구잠(口箴·말을 경계하는 글)>이란 글로 오늘날 우리의 언어문화를 경계해 본다. “말할만하면 말하고(言而言), 말할만하지 않으면 말하지 말고(不言而不言), 말할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안 되고(言而不言不可), 말할만하지 않은데 말해서도 안 된다(不言而言亦不可), 입아! 입아!(口乎口乎), 이렇게만 할 뿐인져!(如是而已)”

6월, 이 땅은 아름다운 신록의 계절이다. 산하는 엷은 연록에서 짙은 갈맷빛으로 진행 중이다. 잠시만이라도 입을 다물고 자연을 보았으면 한다. 자연은 말이 없다. 생로병사를 묵묵히 참아내는 침묵의 언어들이 빚는 찬란한 생명의 소리를 한순간이라도 조용히 듣기 바란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인하대학교 초빙교수·고전독작가(古典讀作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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