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개 논평’ 유감>

2018. 3. 28. 18:53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미친개 논평유감>
 
야당의 이른바 미친개 논평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씻고 씻어내도 내 귀가 더럽다. 한 나라 제1야당 국회의원 대변인과 부대변인의 입에서 나온 엽기에 가까운 말이기에 더욱 그렇다. 때문에 애꿎은 개만 복통 터진다.
 
연암 선생은 개를 기르지 마라不許畜狗.”고 하셨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개는 주인을 따르는 동물이다. 또 개를 기른다면 죽이지 않을 수 없고 죽인다는 것은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니 처음부터 기르지 않는 것만 못하다.
狗能戀主 且畜之 不得無殺 殺之不忍 不如初不畜也
 
말눈치로 보아 정을 떼기 어려우니 아예 기르지 마라는 소리이다. 어전語典애완견이라는 명사가 오르지 않을 때다. 계층이 지배하는 조선 후기, 양반이 아니면 사람이기조차 죄스럽던 때였다. 누가 저 견공犬公들에게 곁을 주었겠는가.
언젠가부터 내 관심의 그물을 묵직하니 잡고 있는 연암의 메타포이다. 연암의 삶 자체가 문학사요, 사상사가 된 지금, 뜬금없는 소리인지 모르나 나는 이것이 그의 삶의 동선이라고 생각한다. 억압과 모순의 시대에 학문이라는 허울에 기식寄食한 수많은 지식상知識商 , 정녕 몇 사람이 저 개와 정을 농하였는가? ‘개를 키우지 마라는 연암의 성정을 이렇게 단적으로 드러내는 결절이다.
실상 역사에는 위대한 개들의 이야기도 즐비하다. 사람보다 나은 개도 셀 수조차 없다.
그래서인지 상대의 허물을 꾸짖는 비유로서 개가 등장한다. 심심파적으로 세어보니 한글학회 지음, <<우리말 큰 사전>>에는 어림잡아 52개나 된다. 그중 개 같은 놈이니,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욕이 있다. 앞 것은 그래도 괜찮은 데, 뒤 욕을 듣는다면 정말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사실하는 말이지만, 후자 쪽의 욕 잡수실 분이 꽤 된다.
이런 개를 두고 미친개 논평을 하였으니, 견공들이 꽤 마음 상할 듯하다.
저 국회의사당의 국회의원이라는 저들, 그야말로 개가 웃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