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선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남음이 있고 복숭아를 던져 구슬로 보답하네(상)

2015. 8. 27. 13:23간 선생의 야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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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야담카페 제12화
간호윤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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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8.24  20: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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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선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가 남음이 있고 복숭아를 던져 구슬로 보답하네(상)

강릉 김씨인 한 선비가 있었는데 집안이 가난하였다.
가빈친로(家貧親老: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늙었을 때는 마음에 들지 않은 벼슬자리라도 얻어서 어버이를 봉양해야 한다는 말)하여 변변치 않은 음식으로 대접하는 것조차 궁핍하였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말하였다.
“우리 집의 선대는 본래 부자로 불리었다. 노복 등이 호남의 섬 가운데 흩어져 있으나 알지 못하니 네가 가서 저들을 속량(贖良;몸값을 받고 종을 풀어 주어서 양민(良民)이 되게 함. 속신(贖身)이라고도 한다)해주고 돈과 곡식을 거두어 오너라.”
그러고는 노비 문권을 내 주었다.
김생이 그 문권을 가지고 호남의 섬으로 가니 백여 호가 한 마을을 이루어 번성하니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노비의 자손이었다. 김생이 그 문권을 내보이니 모두 앞에 와서는 나열하여 절하고 수천 금을 거두어 노비 이름을 삭제해주기를 청하였다.
이에 김생이 노비문권을 불태우고 돈을 말에 싣고는 오다가 도중에 금강(錦江: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발원하여 충청북도 남서부를 거쳐 충청남도과 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면서 군산만으로 흐르는 큰 강)을 지날 때였다.
이때는 십이 월 한겨울이었다.
날씨는 몹시 추웠는데 이리저리 거닐며 강변을 바라보니 한 영감과 노파, 그리고 한 나이 어린 부인이 강가에서 물속으로 들어가거니 붙잡거니 만류하며 서로 통곡하였다. 김생이 심히 괴이하여 그곳에 달려가 연고를 물으니 영감이 말하였다.
“내가 자식 하나를 두었는데 금영(錦營:충청감영)에서 아전을 하다가 포흠(逋欠:관청의 물건을 사사로이 써버림)으로 감옥에 갇혀 있답니다. 여러 차례 납부 기한을 어겨 내일은 곧 죽는 날이라오. 집안 형편이 몹시 가난하여 동전 한 푼 마련할 곳조차 없으니 어찌 수천 금을 변통하여 자식의 사형을 구할 도리가 있겠소. 이렇기에 결심하고 물에 빠져 죽으려고 하니 늙은 아내와 며느리가 함께 죽는다고 하는군요. 이게 어찌 사람이 할 일이겠소. 그리하여 서로 물에서 꺼내고는 이렇게 통곡하는 거라오.”
그러고는 다시 부르짖으며 우니 김생이 만류하며 말했다.
“돈이 얼마 있으면 포흠을 갚을 수 있겠소.”
영감이 말하였다.
“이천 금만 있으면 충당할만하지요.”
김생이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여차저차 받아오는 돈이 족히 이천 금이 되리니 이것으로써 갚으시오.”
그러하고는 말에 싣고 온 금전 전부를 꺼내 주니 그 세 사람이 크게 놀라 통곡하며 말했다.
“우리 세 사람의 생명이 이로 인하여 다시 살아나고 또 죽은 자식을 구해내니 이와 같은 큰 은혜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소. 종신토록 집편(執鞭:중국에서 귀인이 나다닐 때에 채찍을 들고 따라다니며 길을 터서 치우던 사람)의 종이 될지라도 이 세상 이 생애동안 다 갚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우리 집으로 가 하룻밤을 머물고 내일 아침에 길 떠나시기를 바랍니다.”
김생이 말하였다.
“날이 저물고 길은 먼데 나이 드신 어머님께서 의려(依閭: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림. 의려지망(依閭之望), 혹은 의문이망(依門而望)으로 제나라 때 왕손가의 어머니가 아들이 나가서 늦게 오면 집 문에 의지하여 아들이 오기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하신 지 오래되셨소이다. 하루라도 머무르지 못하겠소.”
그러고 말을 끌고 가니 그 영감과 그 처, 부인 세 사람이 다만 백배치사를 할 따름이었다. 즉시 그 돈을 실어 가지고 금영으로 가 묵은 채무를 모두 갚으니 그 당일에 아들이 석방되었다. 그 부모처자의 기쁨의 정이 어찌 그 다함이 있으리오.
이후로는 밤낮으로 은혜 갚길 생각하나 김생의 거주하는 곳과 성명을 영원히 알 도리가 없어 이것을 생전의 한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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