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지조 있고 비범한 동정월, 미천한 출신의 이기축(상)

2015. 7. 14. 09:47간 선생의 야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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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야담카페 제9화(상)
간호윤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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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7.13  10: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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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지조 있고 비범한 동정월, 미천한 출신의 이기축(상)

광해(光海)의 말엽에 평양에 한 명기(名妓)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동정월(洞庭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매우 영리하고 슬기로우며 민첩하였다. 더욱이 용모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시문(詩文)과 가무(歌舞)를 잘하여 당세에 이름을 드날렸다. 나이 열 예닐곱에 정결히 몸을 가지고 눈으로는 도리에 어긋난 것을 보지 않으며 귀로는 음탕한 소리를 듣지 않았다.
일찍이 말하였다.
“기생이라 하는 것이 비록 천하나 맑고 깨끗한 덕만 있다면 사대부의 부녀자에게 조금도 부끄러워 할 게 없다. 내 마땅히 한 지아비를 종신토록 섬기리라.”
그러고 화류계의 모습은 터럭만큼도 마음을 동요치 않았다. 위로 감사(監司), 목사(牧使)와 아래로 부잣집의 자제와 기타 야유랑(冶遊郞:주색에 빠져 방탕하게 노는 젊은이)이 그 자색을 기뻐하여 누누이 가깝게 하려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몽둥이로 때리고 목에 칼을 씌워도 흔들리지도 굽히지도 않았으며 그 마음을 바꾸지 않았으니 영읍(營邑:감영이나 병영이 있는 고을)의 위아래 사람들이 한 괴물로 불렀다.
그녀의 부모가 동정월의 뜻과 절개가 있는 행실을 알았다. 그 마음을 빼앗지 못하겠기에 상당한 인물을 택하여 배필을 정하려고 하니 동정월이 항상 말하였다.
“지아비는 백년의 손님입니다. 이것은 극히 신중치 않으면 안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아무리 선택을 잘하신다 하여도 사람을 알기 어렵습니다. 제 지아비를 선택하는 일은 일절 간섭을 하지마시고 소녀에게 맡겨 주세요.”
부모가 그 뜻을 억지로 꺾기가 어려워, 하는 대로 맡겼다. 이 말이 한번 퍼지자 풍문을 듣고 오는 자가 모두가 잘생긴 사내와 좋은 풍채를 지닌 자며 부귀한 자제가 아닌 자가 없었다. 아침저녁으로 문간에 그득하였으나 동정월은 한번 보고는 모두 한결같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루는 동정월이 대동강(大同) 문루(門樓) 위에 올라가 풍경을 구경하였다. 한 총각이 있는데 나이는 삼십에 가까운 자였다. 머리는 쑥대머리처럼 헝클어졌고 때 낀 얼굴로 땔나무를 지고 문루 앞을 지나갔다. 동정월이 이를 보고 즉시 그 총각을 불러 그녀의 집으로 맞아들인 후에 백년가약 맺기를 청하였다. 총각이 황공무지하야 이에 자리를 피하며 말하였다.
“소인은 한 빈한한 거지입니다. 어찌 귀하신 낭자와 짝을 맺겠는지요. 이는 우스갯소리입니다.”
동정월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부부로서 짝을 맺는 것이 중대한 일인데 총각을 대하여 우스갯소리를 하겠는지요.”총각은 오히려 황공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동정월이 총각에게 정결히 목욕케 한 후에 새로 지은 의관을 내와 입히고는 날을 잡아 마당 한가운데서 혼례를 거행하여 삼생(三生:전생, 현생, 내생에 걸쳐 만나는 인연으로 언제이고 필연으로 만나게 되어있는 인연. 여기서는 혼인을 말함)의 연분을 맺었다.
그 부모가 꾸짖었다.
“네 마음이 실로 이상하구나. 부잣집과 귀한 사람들이 모두 너의 자색을 기뻐 사모하여 발꿈치를 문간에 대고 혼인하려는 자가 헤아리기 어려우니 위로는 본관사또의 별실(別室)이 될 것이요, 중간으로 부잣집 자제와 혼인할 것이요, 아래라 해도 아무개 집 신랑은 잃지 않을 것이다. 이를 일절 돌아보지 않고 천하에 흉악한 일개 거지아이를 취하니 이것이 어찌 된 마음속이냐?”
동정월이 대답하였다.
“이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 부모가 딸의 성정을 알기에 어찌하기가 어려워 드디어 불문에 붙였다.
수일 후에 동정월이 지아비에게 말하였다.
“우리 부부가 이곳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옳지 않습니다. 원컨대 그대와 상경하여 산업을 시작하는 것만 못합니다.”
드디어 경성으로 올라가 서문(西門) 밖에 한 주점을 차렸다. 주색가(色酒家)로 장안의 제일이 되니 성 안팎의 부자와 귀인 무리가 매일 폭주(輻輳:수레 바퀴통에 바퀴살이 모이듯 한다는 뜻으로, 한곳으로 많이 몰려듦을 이르는 말)하야 문 앞이 열뇨(熱鬧:시끌벅적함)를 다하였다.
하루는 술꾼 대여섯 사람이 와서는 술을 마실 때였다. 가전(價錢:물건의 값으로 치를 돈)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치 않고 통음하다가 어언간 술값을 많이 짊어지게 되었다. 술꾼이 ‘염치없다’고 하니 동정월이 말하였다.
“뒷날 갚으면 될 것을 어찌 염치없다고 하십니까.”
그 술꾼은 곧 묵동(墨洞:남촌 아래의 먹절골로 한자로는 묵사동(墨寺洞)」또는 묵동(墨洞)으로 현재 동국대학교 언저리) 김 정언(金正言)과 이 좌랑(李佐郞)의 무리였다. 동정월이 김 정언의 사람됨을 알고 조용히 말하였다.
“이 마을이 낯설어서 장차 남촌(南村)으로 옮기려합니다. 바라건대 진사님께서 집을 얻어 주세요.”
김정언이 말하였다.
“아주 좋다. 우리 무리가 멀리 가 술을 마시는 것 또한 불편하였는데 아름다운 여인이 만일 가까운 곳으로 옮겨 살면 우리들이 좋은 주인이 되겠소.”동정월이 이에 즉시 묵동으로 옮겨 김 정언과 날마다 만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간 선생 왈(曰): 동정월은 ‘중국 동정호에 떨어진 달처럼 예쁘다’는 뜻이다. 동정월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동정월이 인연 맺는 이야기, 우리에게 넌지시 건네주는 뜻은 무엇일까? 동정월이 남편감을 고르는 눈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두 눈에 단단히 덮여있는 선견과 편입견이라는 꺼풀을 벗기라는 말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복제>라는 그림이 있다. 내가 거울을 보지만, 그러나 내가 없다. 제대로 세상을 보려면 눈은 더 이상 얼굴의 소품이 아니어야한다. 사물을 보고 분별하는 안목, ‘마음의 눈’이 그래 필요하다.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만, “석회는 물에 축축하니 젖어야 타고(石灰澆則焚), 옻칠은 축축한 속이라야 마른다(漆汁濕乃乾).”라는 정약용 선생의 눈과 마주칠 수 있다.
“왜 사람들은 보이는 것 너머에 또 보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에서 괴물 같은 외모지만, 마음은 비할 데 없이 순수한 슈렉이 밤하늘 별을 올려다보며 읊조리는 대사이다. 세상만사 다 그러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곳에 진실이 숨어있다. 그러니 한 번쯤은 의심하고 부인하는 것이 진실을 찾아가는 방법이다. 문제는 진실을 찾을 만큼 용기가 없다는 데 있다. 변화를 찾으려는, 현실을 보려는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 물론 거지 사내를 남편감으로 받아들이는 ‘용기’는 더욱 필요할 터다. 알고도 실행치 않으면 의미 없는 일일지니. 그래, 우물 안 개구리와는 바다이야기를 할 수 없고, 매미에게는 겨울 이야기를 제 아무리 아름답게 한 대도, ‘쇠귀에 경 읽기’요, ‘말 귀에 봄바람’일 뿐이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1898~1967)의 <금지된 복제>

 

제 생각이 아닌 남 생각만으로 사니, 그 눈이 비어 있을 수밖에 없다. 텅 빈 눈으로는 사물을 볼 수 없다. 제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 한다. 보이는 것 너머를 보아야 한다. 남의 의식을 온전히 받아들인 코드화된 눈으로는 남이 보는 내 뒷모습 밖에는 볼 수 없다.
독자들도 자신이 속한 성(性), 출신지, 학교, 신분 따위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옥죄고 있는지 살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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