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신령스런 점쟁이 능력 귀신이 하는 바를 알고 사악한 귀신은 감히 바른 사람을 범하지 못하네

2015. 7. 6. 14:28간 선생의 야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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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야담카페 제8화
간호윤  |  문학박사
승인 2015.07.06  10:15:37

8화. 신령스런 점쟁이 능력 귀신이 하는 바를 알고 사악한 귀신은 감히 바른 사람을 범하지 못하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은 문학, 지혜와 덕행, 명예와 절제를 겸비하여 당시에 제 일인자로 받들었다. 어릴 때 아무개 재상의 아들과 함께 한 동리에서 살며 사귐이 매우 친밀하였다. 날마다 어울려 놀더니 그 친구가 아무런 빌미도 없이 여러 해 고질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하여 반드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 친구의 아버지가 다른 자녀는 없고 오직 이 독자만 있기에 밤낮으로 근심하고 탄식하여 의원을 찾고 점쟁이에게 앞으로 운세의 좋고 나쁨을 묻는 등, 온갖 방법을 찾았으나 무효였다.
하루는 친구의 아버지가 사람의 생사를 잘 맞춰 당시의 이름난 맹인 점쟁이를 찾아내었다. 곧 말을 보내어 맞아 온 뒤에 그 아들의 길흉을 점치라하였다. 그 맹인이 점을 치다가 고개를 숙이고 작은 소리로 읊조리기를 한참동안 하더니 말했다.
“이 병은 반드시 불행하여 금년 아무 달 아무 시에 마침내 사망할 것입니다. 설령 편작(扁鵲:중국 전국 시대의 명의)이 다시 살아난다 해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니 그 아버지가 통곡하며 슬프게 물었다.
“혹 구할 방법이 없는가? 밝은 가르침을 바라네.”
점쟁이가 말했다.
“다만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한데, ---이것은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아버지가 구할 방법이 있다는 말을 듣고 더욱 애걸하니 점쟁이가 말하였다.
“만일 말하면 내가 반드시 죽을 것이니, 어찌 내가 남을 위하여 대신 죽겠습니까.”
그 아버지는 그럴수록 더욱 간절히 방법을 구하기를 그치지 않으니 점쟁이가 안색이 변하여 말하였다.
“주인장의 요구가 실로 무리하며 인정이 아니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거늘, 주인장이 아들을 위하는데 나만 유독 내 자신을 위하지 않겠소. 이 일은 다시 말하지 마시오.”
그 아버지가 어찌하기가 어려워 다만 통곡할 뿐이었다. 그 병자의 처가 이 말을 듣고 안에서 칼을 가지고 돌연히 뛰어들어 와 점쟁이의 머리채를 잡고 말하였다.
“나는 병자의 아내요. 지아비가 죽는다면 나도 따라 죽기로 결심하였소. 당신이 만일 점괘를 알지 못하여 말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이미 점괘를 풀어 구할 방법이 있다고 말하면서 자기가 죽는다고 말하지 않으니, 내가 듣지 못하였으면 그만이지만 이미 들어 알고서야 어찌 당신을 돌아가게 놓아두겠소. 내가 이 칼로써 당신을 찔러 죽이고 나도 또한 자살하겠소.”
그러고는 칼을 그 목에 대니 점쟁이가 크게 놀라 말하였다.
“옛 말에 사불급설(駟不及舌:네 마리 말이 끄는 빠른 수레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소문은 빨리 퍼지므로 말조심하라는 말)이라더니 바로 이를 말함이로구나. 말하리니 우선 이것부터 놓아주시오.”
그 부인이 손을 놓으니 점쟁이가 말하였다.
“이항복이라는 자가 있소?”
그 아버지가 말하였다.
“우리 이웃에 있는 아이로 우리 아이와는 벗이오만.”
점쟁이가 말하였다.
“오늘부터 이 사람을 맞아 병자와 함께 거하여 잠시도 서로 떨어지지 못하게 하면 아무 날을 지나서 병이 자연 쾌유할 것이오. 그러나 나는 이날 반드시 죽을 것이니 내 처자를 잘 거두어 한 집안 식구처럼 여겨주시오.”
그러고 곧 작별 인사를 하고는 갔다. 그 아버지가 즉시 백사를 청하여 맞아서는 전후 사실을 갖추어 말하고 병자와 함께 거하기를 요청하였다. 백사가 이를 허락하고 그 날부터 곧 와서 머물러 병자와 함께 일상생활을 함에 잠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삼경에 음산한 바람이 방으로 불어왔다. 촛불이 흔들리더니 병자는 숨 쉬는 것이 정신이 아득해지고 죽은 듯이 인사불성이 되었다. 백사가 그 곁에 누웠다가 잠깐 보니 완연히 촛불 그림자 아래 얼굴이 흉한 한 귀신이 검을 집고 서서 백사의 이름을 부르고 말하였다.
“너는 병자를 내놓아라.”
백사가 말하였다.
“무슨 이유로 병자를 내놓으라고 하느냐?”
귀신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나와 전생에 묵은 원한이 있으니 오늘 밤은 원수 갚을 기회라. 만일 이 시기를 놓치면 어느 해 어느 때에 원수를 갚을지 알지 못하니 빨리 내 놓아라.”
백사가 말하였다.
“이 아이의 아버지가 그 아들을 나에게 부탁하였으니 어찌 너에게 내어 주겠는가.”
귀신이 말하였다.
“네가 만일 내놓지 않으면 내가 너까지 함께 죽이리라.”
백사가 말하였다.
“죽으면 그만이거니와 내가 죽기 전에는 결코 너에게 내주지는 않으리라.”
귀신이 이에 크게 성내어 검을 잡고 백사의 가슴을 곧장 찌르려하다가 갑자기 뒤로 물러서며 칼을 던지고는 엎드리며 말했다.
“원컨대 대감은 나의 정상을 가련히 여기시어 이 사람을 내어 주소서.”
이러니 백사가 의아하여 말하였다.
“네가 나는 어찌 죽이지 않느냐?”
귀신이 말하였다.
“대감은 국가의 동량이라. 이름이 죽백(竹帛:대나무쪽이나 비단 등에 쓴 글이나 책. 여기서는 역사에 이름을 올리는 것을 말)에 드리울 것이니 어찌 감히 해치겠소. 병자를 내주기만 원하오이다.”
백사가 말하였다.
“나를 죽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느니라.”
그러고는 병자를 껴안으니 이미 닭이 새벽을 알렸다.
귀신이 이에 크게 곡하고 “이제 원수를 갚지 못하니 어찌 원망치 않으리오. 이것은 반드시 아무개 맹인이 가르쳐 준 것이니 내가 이 사람에게 원한을 풀리라.”하고 언뜻 보이다가 바로 없어졌다.
이때 병자가 혼절하여 오래되었기에 따뜻한 물을 입에 흘려 넣으니 겨우 소생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사람을 시켜 점쟁이의 소식을 알아보려하니 문 앞에 벌써 점쟁이의 부고가 도착하였다. 주인집에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처음부터 마칠 때까지 장례비용을 후하게 지급하고 그 처자를 거두어 주었다.

 

   
 

 

 

<백사 이항복 초상>
이항복의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ㆍ필운(弼雲).
임진왜란 때 병조 판서로 활약했으며, 뒤에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다. 광해군 때에 인목 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 북청(北靑)으로 유배되어 죽었다. 평생을 청빈으로 일관하였으며 유머감각을 지닌 명재상이었다.
저서에 ≪백사집(白沙集)≫, ≪북천일기(北遷日記)≫, ≪사례훈몽(四禮訓蒙)≫ 따위가 있다.

 

간 선생 왈(曰): 장사에게 이득이면 손님은 손해이다. 아들은 살았지만 점쟁이는 죽었다. 따지고 보면 세상사 다 이렇다. 하나의 일에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사실이 따라붙는다. 그러고보니 점쟁이 측에서 보면 아는 것이 모르는 것보다도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문득 언젠가 써 둔 <발이 스승>이라는 글이 생각나 찾아보니 이렇게 써놓았다.

<발이 스승>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문자 좀 쓰자면, “사람의 얼굴은 아나 마음은 알지 못 한다(知人知面 不知心)”, 혹은 “호랑이의 겉은 그리나 뼈는 그리기 어렵다(画虎画皮 難画骨”)라는 말쯤 될 것입니다. 과학을 짊어지고 사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우주의 거리는 138억 광년입니다만, 고작 6,371㎞밖에 안 되는 지구 내부는 볼 수 없습니다.
이렇듯 세상은 상식에 뻐그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 지인과 가까운 시외를 거닐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선생님, 발이 스승이더군요.”
눈으로만 사물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어리석었지요. 제 아무리 밝은 눈이라도 발이 데려가지 않으면 어림없는 일인 것을. 생각해보니 발품 팔지 않고 되는 일이라고는 없습니다. 그래, 신발창 날깃날깃 해지도록 돌아다녀야만, 그때서야 눈이 알아차립니다. 더욱이 눈이야 그저 제 주인이 탐하는 것만 보여주는 것뿐이지요. 하여, 눈이 아닌 발이 스승인 까닭입니다.
가끔씩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도 다시 챙겨보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