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사악한 귀신을 쫓아버린 송상서, 충성을 잡고 절개를 세운 사람(中)

2015. 6. 16. 08:44간 선생의 야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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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야담카페 제6화(중)
간호윤  |  문학박사
승인 2015.06.15  22:10:56

6화. 사악한 귀신을 쫓아버린 송상서, 충성을 잡고 절개를 세운 사람(中)

그 뒤에 공이 또 영남지방을 돌아다닐 때였다.
하루는 한 곳에 이르니 골짜기가 크고 깊었으나 구역은 평탄하여 약 수십 호의 촌락을 이룰만하였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질 않고 논밭은 황폐하여 보기에 매우 참담하고 쓸쓸하였다. 공이 이리저리 걸으며 멀리 바라보고 황폐한 폐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동구 밖으로 나왔다.
산기슭 아래에 이르자 몇 간 되지 않는 한 채의 매우 작은 초가가 보였다. 공은 마을이 황폐해진 사실을 묻기 위하여 청려(靑藜;명아주의 줄기로 만든 지팡이)로 껍질 벗긴 대나무로 만든 문짝을 두드렸다. 안에서 60은 조금 넘긴 듯한 한 늙은이가 지팡이를 짚고 몸을 구부리고 나왔다. 공이 문간에 서서는 노인에게 물었다.
“나는 강산을 유람하는 나그네입니다. 사방을 돌아다니다가 오늘 우연히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이 땅이 비록 산골짜기라 하여도 지형은 평탄하고 토지는 광활하여 가히 한 큰 촌락을 형성하였을 만합니다만, 그런데 오직 집은 폐허가 되고 땅은 황량하며 사람의 그림자조차 드무니 이 무슨 까닭인지요?”
노인이 한숨을 쉬고 크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이 땅이 전에는 과연 가옥이 즐비하고 촌락이 아주 번화하였지. 그러더니 거금(距今:시간을 나타내는 말 앞에 쓰여,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어느 때까지의 시간을 나타내는 말) 십년이래로 저 산골짜기 속에 한 허물어진 절이 있는데 망량(魍魎:동물이나 사람의 모습을 한 귀신의 하나)이 출몰하여 사악하고 불길하게 날뛰더니 한밤중에 인가를 불태워버렸지 않았겠소. 또 집안까지 침입하여 가구집기를 부수고 그 작폐가 심하니 이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살아갈 도리가 없었지. 그래, 차례로 집을 부수고 문을 닫아걸고는 이곳으로 옮겨 산 거라오. 이제 와서는 한 집도 없고 자연 폐허만이 있는 풀만 수북한 촌이 되었지.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은 조금은 큰길가에서 비켜있고 저 폐허가 된 절과도 조금 떨어졌기에 흉악한 놈의 피해가 덜하기에 홀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거라오.”
공이 듣기를 마치고는 노인에게 말하였다.
“사악함이 감히 바름을 범치 못하지요. 나는 저 귀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 밤에 내가 마땅히 저 허물어진 절 안에 들어가 귀신의 동정을 엿보아 살피고 어찌해볼 방도가 있으면 내 한 몸을 던질지라도 이 사악한 귀신을 쓸어버리고 사람들의 근심을 없애겠습니다.”
노인이 소매를 잡으며 만류하였다.
“그대가 비록 연소한 혈기로 용기가 있다할지라도 악귀의 앞에는 영웅이란 없는 것일세. 전일 수십 호의 큰 촌락이 오늘에 없어진 동네가 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잖은가. 그대는 어찌 몸을 가볍게 놀려 천금 같은 몸을 해치려드나.”
공이 웃으며 말하였다.
“사람이 죽고 사는 목숨은 하늘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사악한 귀신이 감히 좌우할 바가 아니지요. 이것은 족히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또 사람의 용력으로 사악함을 다스리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심령(心靈:정신의 근원이 되는 의식의 본바탕. 곧, 마음속의 영혼. 육체를 떠나서 존재한다는 마음의 주체)으로써 이를 제거하려는 것이니 노인께서는 과히 심려치 마십시오.”
공이 이렇게 말하고 표연히 짧은 채찍을 가지고 그 무너진 절을 찾아갔다. 이르러보니, 즉 방옥(房屋:겨울에 외풍을 막기 위하여 방 안에 장지를 들여 조그맣게 막은 아랫방)엔 흙이 무너졌고 집은 황락하여 다만 가을 풀만이 무성하게 자라있고 찬바람 소리만이 쓸쓸할 뿐 아니라, 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사람의 해골과 같은 것이 쌓여 서로서로를 베고 나뒹굴었다. 공은 냄새가 너무나 고약하였으나 조금도 두려워 위축 들지 않고 우뚝 서서는 귀신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이경(二更: 밤 아홉 시부터 열한 시까지의 사이)이 지났다.
과연 산골짜기 안에서 천변만마(千兵萬馬)가 몰아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푸르른 화광이 빛나고 섬광이 번쩍하면서 절 문간을 향하여 달려들어 왔다.
공은 더욱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의연히 움직이지 않고 앞만 주시하였다. 수십의 귀신 무리가 모두 머리를 흔들어대고 손뼉을 치며 혹은 노래도 부르고 혹은 웃으면서 각기 큰 막대기를 가지고 마당 가운데로 몰려들었다.
그 중, 한 귀신이 먼저 이르러 공을 보더니 곧 황망한 걸음으로 뒤로 물러나며 여러 귀신들에게 말하였다.
“저 대청의 위에 사람이 있다.”
여러 귀신들이 펄쩍펄쩍 뛰면서 서로 말하였다.
“오는 밤엔 요행히도 놀잇감이 갖추어졌구나.”
그 가운데 한 커다란 귀신이 검을 들고 들어오다가 공을 보고 홀연 벌벌 떨며 뒷걸음질을 치며 여러 귀신들에게 말했다.
“그냥 세상 사람으로만 알았는데, 천만뜻밖에도 송 상서가 왔다! 이 사람은 귀신을 부리는 재주가 있어. 오늘 밤은 득의추(得意秋:‘득의지추(得意之秋)’로 가을의 추수하는 권한을 가진다는 의미로 ‘뜻을 이룬다’는 말)가 아니니 물러가는 것이 좋겠다.”
그러고 장차 걸음을 되돌리려할 때였다.
공이 하늘을 우러러 마음으로 기원하고 한번 휘돌아보고 문득 큰소리로 외쳤다.
“너희들 사악한 귀신이 감히 어느 곳으로 도망하려는 것이냐?여러 귀신이 크게 놀라 일시에 공 앞에 엎드리며 죄를 사해달라고 애걸하거늘 공이 노하여 말했다.
“너희들의 죄가 적잖다! 너희들은 천명이 내릴 때까지 이곳에서 명을 기다려라.”
여러 귀신이 감히 한 마디도 못하고 밤이 새도록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있었다. 날이 밝으니 점차 귀신의 형체가 사라졌다. 일찍이 절의 벽에 걸려있던 옛 화상(畵像)을 그린 종잇조각들이 바람을 타고 땅에 떨어졌다. 공이 이를 수습하여 일일이 불태운 뒤에 그 절에도 불을 놓아 태워 재를 만든 후에 돌아갔다.
이 후로는 귀신으로 인한 근심이 그쳤고 사람들이 점차 이주하여 지난날의 촌락이 다시 생겼다하더라.


   
 
<조선 후기의 문신 김조순의 『풍고집[楓皐集]』.> 1868년(고종 5) 그의 문중에서 간행하였다.

귀신의 형상과 인간 송광보의 대결이다. 왜 인간 송광보가 이겼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김조순의 『풍고집[楓皐集]』에는 이에 대해 생각해 볼 말이 있다.
“무릇 고심하면 반드시 생각이 깊어진다. 깊이 생각하면 반드시 이치가 해박해지고, 이치가 해박하면 반드시 말이 새로워진다. 말이 새로워지고도 (노력을) 그치지 않는다면 공교해지고, 공교해지고도 (노력을) 그치지 않는다면 귀신도 두려워 벌벌 떨게 되고 조화가 옮겨온다.(夫吟苦則思必深。思深則理必該。理該則語必新。新而不已則工。工而不已 則可以慴鬼神 而移造化矣”(≪풍고집(楓皐集)≫ 권 16, ‘잡저’, <서금명원경독원미정고후(書金明遠畊讀園未定稿後)>)
고심→깊은 생각→이치 해박→새로운 말(노력)→공교해진 말(노력)→‘귀신도 두려워할만하게 되고 조화가 옮겨 온다’라는 과정이다. 물론 이글은 글쓰기에 대한 것이나 세상이치라고 다를 바 없다.
송광보가 귀신을 물리친 힘은 아마도 세상에 대한 고심, 즉 ‘이 삶을 어찌 살아야하나?’, ‘학문을 어떻게 해야 하나?’ …등의 무수한 ‘고심’이 ‘생각’으로 ‘이치’로 옮겨져, ‘귀신도 두렵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2015년 6월, 많은 대한민국 백성들은 ‘메르스’라는 병원체를 귀신이라도 본 양 떠들어 댄다. 그렇다면 ‘메르스’를 쫓아버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떻게 쫓아버릴까?’ 고심하면 된다. 많은 이들이 ‘고심’하고 있고 또 여기저기에서 ‘완치됐다’는 새로운 말도 들린다. 곧 ‘메르스’라는 병원체 귀신도 두려워 벌벌 떨며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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