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사악한 귀신을 쫓아버린 송상서, 충성을 잡고 절개를 세운 사람(상)

2015. 6. 9. 12:42간 선생의 야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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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야담카페 제6화(상)
간호윤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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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08  22: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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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사악한 귀신을 쫓아버린 송상서, 충성을 잡고 절개를 세운 사람(상)

송(宋) 상서(尙書:고려 상서성의 정 3품 관직으로 조선시대의 판서에 해당) 광보(匡輔)의 호는 죽계(竹溪)니 고려 공양왕 때 사람이다. 5세 때에 계집종이 등에 업고 뒤뜰을 거닐 때였다. 마침 담을 이웃한 집의 밤나무 한 가지가 담장을 넘어왔다. 계집종이 밤송이 몇 개를 잡아서는 껍질을 벗겨 공에게 주니 공이 받아서 담 밖으로 던지며 말했다.
“물건은 각각 그 주인이 있으니 남의 물건을 가지만 안 돼!”
계집종이 매우 놀랍고 기이하게 여기며 이후로는 보통 아이가 아님을 알았다. 10세 때에 일찍이 <백이전(伯夷傳):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 속에 있는 <백이열전>이다)을 읽다가 책을 덮고 길게 탄식하였다.
“옛날에 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은 누구나 요임금이나 순임금처럼 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내 어찌 백이숙제(伯夷叔齊):백이와 숙제 모두 중국 은(殷)나라 말기의 현인)가 되지 못하리오.”
글방선생이 이 말을 듣고는 크게 기이하게 여기며 말했다.
“이 아이의 골격과 말이 비상하니 훗날 국가를 위하여 큰 절개를 세울 자는 반드시 이 아이로다.”
18세에 글공부를 잠시 접어두고 산수의 풍경을 구경하기 위하여 호남지방을 이곳저곳으로 두루 돌아다닐 때였다. 하루는 한 곳에 다다르니 날은 저물고 몸은 피곤하여 한 부잣집에서 쉬어가기를 청하였다.
저녁을 먹은 뒤에 밤경치를 감상하기 위하여 홀로 짧은 막대를 의지 삼아 그 집의 뒷동산에 올라 원근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기가 머무는 부잣집의 안채를 바라보니 용마루 위에 요사한 기운과 살기가 넘쳐 하늘로 오를 형세였다. 광보는 마음속으로 매우 괴이하여 경치를 감상하던 것을 그치고 그 집으로 돌아와 자기가 본 것을 말하였다. 주인은 믿지 않으면서 안채에 들어갔다 와서는 공에게 말하였다.
“내 눈에는 요상한 기운이든지 상스런 기운이든지 보이지 않는데 그대는 무엇을 근거로 요기와 살기를 보았다는 것인가?”
공이 말하였다.
“이 기운이 지극히 요사스럽고 악하여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반드시 이 집안에 요사스런 물건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올해 안으로 이 집안에 큰 화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이를 보고 안 이상에야 그 사실을 말해주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일러주는 겁니다.”
주인이 말하였다.
“내가 이 집을 새로 지은 후에 사람은 병이 없고 집에는 변고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해마다 재화가 늘어나 오늘과 같이 부유하게 되었네. 만일 내 집안에 요사스런 물건이 있다면 결코 이와 같은 복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니 그대 말이 틀린 듯하네.”
공이 말하였다.
“옛 사람들의 말에, ‘오늘이 있다고 내일의 없음을 잊지 말며 오늘이 편안하다고 내일의 위태로움을 잊지 말라’ 하였소. 이른바 온 집안의 안락태평과 재물을 늘려 풍요로움은 오늘로써 보면 이미 과거의 복에 속한 것이오. 내일부터는 즐거움이 변하여 근심으로 되며 복이 굴러 화가 될 것이오. 내 말을 믿지 않는 이상에는 나도 어쩔 수가 없거니와 만일 내 말이 이치에 맞다 여기면 내가 이 요사한 기운을 없애도록 한번 시험함이 어떠한지요?”
주인이 이 말을 듣고는 그때서야 놀랍고 겁이 나서는 액을 물리칠 계책을 구하니 광보가 물었다.
“이 집안의 사람 수가 몇이나 되지요?”
주인이 대답하였다.
“아내와 첩, 아내 소생인 올 해 열다섯 된 맏아들, 그리고 계집종과 하인 약간 명이 있을 뿐이네.”
공이 물었다.
“그대의 부실(副室:남의 첩을 높여 부르는 말)은 어느 해, 어느 달에 어느 지방 어느 곳에서 맞아들였는지요?”
주인이 대답하였다.
올 봄에 내가 약초를 캐기 위하여 아무 산에 들어갔다가 하루는 날이 저물었지. 산중이라 마을은 없고 산기슭 아래에 조그만 초가집이 있기에 이곳에 가 하루 묵어가기를 청했다네. 한 묘령의 아름다운 여인이 나와 흔연히 맞아주기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따라들어 갔고. 그 집에는 남자도 없고 다만 그 여자 한 사람뿐이기에 홀로 거처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산에 치성을 드리러 왔다하며.---아 그래, 밤에 잠자리를 하자고 청하지 않겠나. 그래 운우(雲雨)의 정을 나눈 뒤에 다시 백년가약을 맺고 그 여자를 데리고 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것이네만.”
공이 이 말을 듣더니 이윽고 주인에게 말하였다.
“나를 내실로 안내하여 주시오. 나에게 요사스런 기운을 누를 방술이 있소.”
주인이 공을 인도하여 내실로 들어가니 그 첩이 공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갑자기 크게 놀라며 바닥에 거꾸러졌다. 주인이 놀라 급히 일으키려하며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요, 한 마리의 의 구미호였다. 이에 크게 놀라 공에게 물으니 공이 말하였다.
“내가 아까 말한 요사스런 물건은 바로 이 구미호랍니다. 원래 여우라는 악한 동물은 천 년을 지나면 인간으로 변하여 사람에게 화를 주지요. 주인장은 불행히도 이 여우에게 혹한 것이오. 내가 이를 제지하지 아니하였다면 금년 안에 이 집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액을 면치 못할 것이었습니다. 내 일찍이 성인의 도를 배웠기에 이러한 사악한 것이 감히 바름을 범하지 못하게 한 것이지요. 이에 주인 이하 모든 사람들이 ‘신인(神人)이다!’라고 부르며 백배 사례하였다.
그 뒤에 공이 또 영남지방을 돌아다닐 때였다.

   
 
<kbs>에서 방송하였던 ‘구미호 : 여우누이뎐 (2010)’ 포스터
전설의 고향에 자주 등장하는 여우 이야기이다. 동물이 사람으로 변하는 일이 있겠는가마는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 듯싶다.
오늘 신문(2015년 6월 6일)에 메르스와 관련하여 ‘서울대공원 낙타가 음성 판정으로 격리 해제’되었다는 기사를 보다가 고소를 금치 못해 이 이야기를 싣는다.
각설하고, 송광보와 같이 ‘신인(神人)이다!’라고 불릴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여하간 저런 현인(賢人)이 국가를 경영하는 세상에서 살면 퍽 좋을 듯싶다.

 

 1)관은 진천(鎭川). 찬화공신(贊化功臣) 상산백(常山伯) 송인의 7세손이며, 할아버지는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송지백(宋之伯)이고, 아버지는 평리(評理)를 지낸 송소(宋玿)이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3일간 두문불출하고 개경을 향해 통곡하고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지금의 진천군 덕산면으로 내려와 은거하며 고려의 멸망을 비탄하면서 가야금을 타거나 독서로 조용하게 살았다. 그 후, 태조 이성계가 부르나 송광보는 “만약 강제로 따를 것을 명령하면 이 몸을 황해에 던져 고기밥이 되리라”고 거절하였다고 한다.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두촌리에 그의 묘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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