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표절 운운을 보며 (2)

2015. 6. 22. 11:41삶(각종 수업 자료)/나의 이야기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가 새로운 물줄기를 타고 흐른다.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무엇을 하는 단체인지 필자는 알 수 없다)이 고발을 해서  이 문제가 문학계의 자정에 맡겨야 한다는 측과 법정으로 가야한다는 측으로 나뉘어 설전이 오간다. 그동안 켜켜이 쌓인 한국문단 및 출판의 문제가 그 추한 맨살을 드러낸 듯하다. 

관람자로서 흥미롭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딱하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번 표절 작가는 한국 문단의 거목이기에 더욱 그렇다. 거목 뒤에는 저자, 비평가, 출판사가 나누어 가진 이문이 있다 . 그들의 이문은 독자들의 쌈짓돈임은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창비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학동네,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출판사들은 대부분 이 이문과 무관치 않다. 따라서 문학계의 자정(自淨)능력운운은 스님 빗질하는 소리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다. ‘자정작용(自淨作用)’은 '물이 흘러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이미, ‘그들만의 리그라는 고인물이거늘, 어찌 자정작용이 일어날까?) 물론 이 쌈짓돈으로 만든 한국문단의 거목은 제 몸조차 가눌 수 없는 공룡이 되어버렸다. 비대해진 공룡은 더 이상 공룡이 될 수 없다. 

 

작가는 인정물태를 기록하는 이다. 작품 속에는 그래, 그 시절이 들어있다. 한국문단의 거목이던 그 작가의 그 시절이, 이웃 나라 작가의 문장을 표절한 그 작품이었다면, 이를 어떻게 한국문학사에 기술해야한단 말인가? 먼 훗날 후배 문인들이, 우리들이 친일 문학가를 찾아내듯 그러해야하는가? 

 이번 기회에 반드시 이 문제를 짚어야한다. 그동안 한국문단에 이런 문제는 내로라하는 비밀이었다. 그 한 예로 전상국 선생의 <우상의 눈물> 을 패러디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같은 경우도 되짚어 보아야한다. 


글쓰기는 글짓기가 아니다.  글짓기는 꾸밈으로 작위적이지만 글쓰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을 쓴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글은 생명은 걸지 못하더라도 작가의 영혼을 걸었다. 양심이 살아 숨쉬는 글은 여기에서 나온다. 그렇게 써야만 아롱이다롱이 글은 나오지 않는다.


그럭저럭 국문학 밥을 먹은지도 30년이 넘는다. 그동안 20여 권의 책을 내고 내 머리에도 제법 백발이 내려 앉았다. 글쓰는 이와 출판사 (출판인)도 제법 보았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글쓰는 이와 출판사 중, 마음으로 글을 쓴 이 몇이며 진정한 작가 발굴을 하려한 출판사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굳이 수치로 환산하자면 글쓰는 이든, 출판사든, 단 세 손가락을 제대로 꼽지 못하겠다.

 

학문을 한다는 분들 (나 역시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라고 다르지 않다. 책 따로 나 따로인 서자서아자아는 보편적인 학계의 모습이다. 모쪼록 내 글 또한 자음과 모음의 사생아가 아닌지 살필 일이다.

 

(이 글을 쓰는 데 또 신경숙 표절 논란이어 소설 제목 도용 의혹윤희상 시 제목과 일치라는 제하의 글도 인터넷 상에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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