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이한 만남은 전생의 인연이 분명하고 사나운 아내는 생에게 투기를 감히 하지 못하다(4)

2015. 5. 4. 11:28간 선생의 야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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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야담카페 제3화(4)
간호윤  |  문학박사
승인 2015.05.03  21:16:54

3. 기이한 만남은 전생의 인연이 분명하고 사나운 아내는 생에게 투기를 감히 하지 못하다(4)

이때였다.
늙은 권 진사의 아내와 며느리가 대청 아래에 엎드려 애걸하기 시작했다. 늙은 권 진사의 아내가 말했다.
“영감, 저 아이의 죄가 설령 죽어 아깝지 않다할지라도 어찌 눈앞에서 외아들의 머리를 자른단 말입니까.”
그러고는 울며 간청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늙은 권 진사는 더욱 노하여 큰소리로 꾸짖어 물리쳤다.
“부인은 저리 썩 비키시오. 아녀자가 관여할 일이 아니오. 이것은 우리 집안이 걸린 문제요.”
그 퍼런 서슬에 아내는 엎드려 곡만할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며느리가 머리로 땅을 찧어 유혈이 얼굴에 낭자히 흐르며 아뢰었다.
“아버님, 이 이가 설령 방자하게 멋대로 한 죄가 있을지라도 아버님의 혈속이 오직 이 이뿐입니다. 아버님께서 어찌 차마 이와 같은 잔혹한 일을 행하여 누대봉사(累代奉祀:조상의 제사를 받듦을 말한다.)의 집안으로 하여금 하루아침에 대를 끊게 하는 것인지요. 청컨대 제가 그 죄를 대신하여 죽겠나이다.”
늙은 권 진사가 며느리의 말을 듣고 더욱 노하여 소리쳤다.
“너도 물렀거라. 집안에 패륜아가 있으면 그 집안을 망하게 함은 물론이요, 그 욕됨은 선조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다. 내가 차라리 눈앞에서 집안 망칠 이 놈을 죽여버리고 다시 명령(螟蛉:나나니(구멍벌)가 명령을 업어 기른다는 뜻으로, 양아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으로 대를 이으면 된다.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어쨌든 집안 망하기는 일반이라. 차라리 깨끗하게 망함만 못하다.”
인하여 사내종들에게 호령하여 급히 머리를 자르라 하니, 종이 입으로는 비록 “예, 예” 대답하나 차마 작두에 얹은 다리를 들지 못하였다.
이때에 며느리가 남편을 부둥켜 안으며 더욱 부르짖으며 살려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렇게 한 식경이 흐르자 늙은 권 진사가 좀 누그러진 음성으로 며느리에게 말했다.
“네 남편이 집안 망하게 한 일은 두 가지다. 부모를 모시는 자식으로 사사로이 첩을 두는 것이 그 망조가 하나요, 또 네 사나운 강샘(여인의 투기)으로 반드시 그 첩을 용납지 못할 것이 뻔하니 그렇게 되면 집안형편이 날로 어려워질 것이니 그 망조가 둘이라. 내 눈 앞에서 이를 제거함만 못하니라.”
며느리가 울면서 말하였다.
“아버님, 저도 사람의 얼굴과 사람의 마음을 갖추고 있습니다. 눈앞에서 이러한 참혹한 광경을 보고 어찌 ‘질투’ 한 자에만 생각이 미치겠습니까? 만일 아버님께서 한 번 용서해주신다면 제가 마땅히 새로들어 온 여자와 함께 살아가며 터럭만큼도 화락함을 잃지 않겠나이다.”
늙은 권 진사가 잠시 눈을 감더니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아니다. 아니야. 네가 비록 오늘의 일이 급박하여 이러한 말을 하지만 반드시 얼굴로만 그러함이요, 속으로는 그러하지 않으리라.”
며느리가 늙은 권 진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할 까닭이 있겠는지요. 만일 이와 같이 한다면 저를 하늘이 반드시 죽이고 귀신이 반드시 죽일 것입니다.”
늙은 권 진사가 짐짓 고개를 홰홰 저으며 말하였다.
“네가 내 생전에는 혹 그리할지는 알 수 없지. 그러나 너같이 투기가 강한 부인네가, 내가 죽은 후에 반드시 다시 그 질투의 악을 늘어놓을 것이 뻔하다. 그 때는 나도 없고 패륜한 네 남편이 능히 집안을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내 생전에 머리를 잘라 화근을 영원히 없애는 것만 못하다.”
며느리가 다시 눈물을 떨구며 말하였다.
“아버님, 어찌 감히 이와 같은 까닭이 있겠습니까. 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만일 조금이라도 시앗을 시기한다면 개돼지만도 못할 것입니다.”
늙은 권 진사가 다시 눈을 감고 한참을 있더니 말하였다.
“네 말이 정녕이렸다. 그렇다면 내 이번 일은 용서하리라. 그러나 네 투기를 보기만 하면 그 날로 네 남편을 반드시 처리할 것이니 그리 알아라.”
그러고는 아들을 풀어주고 또한 종의 우두머리를 불러 분부하였다.
“너는 급히 가마와 말을 채비하고 인부를 인솔해 아무 주막에 가서 서방님의 소실을 맞아 오너라.”
종이 명을 받들고 가서 한나절이 못 되어 그 여자를 데리고 왔다. 이에 즉시 구고지례(舅姑之禮:예식이 끝나고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덕담을 하는 예이다.)를 행하고 또 정배(正配:정식으로 혼례를 치르고 맞이한 아내이다.)에게 깍듯이 절을 시킨 뒤에 한 집에 살게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제 아무리 투기가 심한 며느리도 어쩌지 못하였다. 며느리는 극히 온화한 마음으로 그 소실을 대하여 늙도록 화락자담(和樂且湛:『시경(詩經)』의 “형제가 서로 화합해야 화락하고 즐겁다(兄弟旣翕 和樂且湛)”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하여 집안이 구순하였다고 하더라.

간선생 왈(曰): 이 야담에는 두 가지의 지혜가 보인다. 아들의 일을 권 진사에게 슬몃 물어 권 진사의 행동에 제약을 준 친구의 지혜가 하나요, 시앗을 보게되는 며느리의 투기를 막아 집안을 화락하게 한 권 진사의 지혜가 또 하나이다. 문제는 이 두 지혜가 모두 며느리에게는 영 지혜가 아닌 성 싶다는 데 있다.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실 여인들의 투기는 무서울 정도로 냉혹하다.
‘인체(人彘:사람돼지)’라는 말이 있다. 사람을 돼지 모양으로 만드는 혹독한 형벌이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절단하고, 두 눈을 칼로 후벼서 파내 장님 만들고, 구리를 녹여 귀속에 집어 넣어 귀머거리 만들고, 혀를 잘라 벙어리를 만드는 극형이다. 그러고 나서 몸뚱이를 뒷간에 버려둔다. 바로 유방의 부인인 여태후가 척부인(戚夫人)에게 내린 벌이다. 유방이 죽은 뒤 여태후는 남편의 총애를 받은 척부인을 저렇게 뒷간에 넣어죽였다. 시앗에 대한 무서운 증오이다.
허나, 두 사람이 정녕 인연이라면---. 그래, 인디언 주례사는 이렇단다. “사랑할 때까지만 함께 행복하니 잘 살아라.”

우리 고소설 <흥부전>에도 이 시앗이 나온다. <흥부전>에서 흥부는 박을 타서 온갖 금은보화를 다 얻는다. 그런데 시앗을 얻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그 대목은 이러하다. 박을 타 놓으니 그 속에서 연인이 나와서는 나부시 엎드려, “저는 월궁의 선녀입니다.”라고 한다. 흥부가 그래 왜 내 집에 왔냐고 하자, 선녀는 “강남국 제비왕이 나더러 그대 부실이 되어라하시기로 왔나이다.”라고 한다. 물론 흥부처의 투기도 없지 않으나 흥부는 이 여인을 첩으로 맞아 행복하니 살게 된다. 그런데 이 첩이 놀부 아내가 보기에도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는지, 박을 타며 “다른 보화는 많이 나오되 흥부 아주버니같이 첩만은 나오지 마소서”라고 한다. 흥부에게는 행복이지만 흥부 처에게는 행복이라고 할 수 없을 듯하다. 이 선녀가 이본에 따라서는 아래와 같이 양귀비로 나오기도 한다.

 

   
 
어여쁜 계집이 나오며 흥부에게 절을 하니, 흥부 놀라 묻는 말이,
"뉘라 하시오."
"내가 비요."
"비라 하니 무슨 비요."
"양귀비요."
"그러하면 어찌하여 왔소."
"강남 황제가 날더러 그대의 첩이 되라 하시기에 왔으니 귀히 보소서." 하니, 흥부는 좋아하되 흥부 아내 내색하여 하는 말이,
"애고 저 꼴을 뉘가 볼꼬. 내 언제부터 켜지 말자 하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