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해질녘 궁벽한 목숨을 구하려는 나그네, 천한 집안 여자를 택하여 몸을 의탁하다(하)

2015. 5. 18. 08:29간 선생의 야담 카페

문학과책종합
http://www.artnewsgi.kr/news/articleView.html?idxno=4325
간호윤의 야담카페 제4화(하) - 경인예술신문
www.artnewsgi.kr
본문으로 이동
 
 
간호윤의 야담카페 제4화(하)
간호윤  |  문학박사
승인 2015.05.16  21:30:20

4. 해질녘 궁벽한 목숨을 구하려는 나그네, 천한 집안 여자를 택하여 몸을 의탁하다(하)

이 교리가 일찍 일어나 문간에 물을 뿌리고 빗자루로 마당을 쓰니 유기장이 말하였다.
“우리 사위가 어제는 무사히 유기를 납품하고 오더니. 아, 오늘 아침에는 또 문간을 청소해. 낮잠만 일삼던 때에 비교하면 거의 대인군자가 되었네 그려.”
마당 쓸기를 마친 이 교리가 짚방석을 뜰에 폈다.
유기장이 의아하여 그 까닭을 물으니 이 교리가 말하였다.
“오늘 본관사또가 장차 행차할 것이기에 그를 맞이하려는거요.”
이렇게 말하니 유기장이 냉소하며 말하였다.
“자네가 꿈속에 말을 하는구나. 본관사또가 어찌 우리 같이 천한 상천(常賤:상민과 천민)의 집에 행차할 까닭이 있겠는가.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사리에 전혀 맞지 않는 황탄한 이야기 아닌가? 지금 생각하니 어제 유기를 무사히 납품했다는 말이 필연 노상에 버리고 돌아와 과장된 헛말을 한 것은 아닌가.---”
유기장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문 밖에서 “물렀거라!”하는 벽제(辟除:지위 높은 사람이 지나갈 때 구종 별배(驅從別陪)가 잡인의 통행을 통제하는 소리) 소리가 들리더니 관부의 공방아전이 채색 방석을 가지고 급히 들어와 방안에 펴며 말하였다.
“본관사또의 행차가 문 밖에 이미 도착하였다.”
이러하니 유기장 부부가 크게 놀라 창황히 얼굴빛이 변하여 머리를 잡고는 울타리 사이에 숨었다. 잠깐 동안 본관사또를 인도하는 소리가 문에 이르더니 사또가 말에서 내려 방안으로 들어 와 이 교리의 손을 잡고 한훤(寒暄:날씨의 춥고 더움을 말하는 인사말)을 마친 후에 이 교리에게 말하였다.
“제수씨와 상면하고 싶네.”
이 교리가 아내를 불러 와서 뵙게 하니 아내가 형차포군(荊釵布裙:『열녀전(烈女傳)』에 보이는 고사로 가시나무 비녀를 꽂고 베치마를 입은 부인의 검소한 차림. 후한시대 양홍(梁鴻)의 처인 맹광(孟光)의 고사에 나온다.) 차림으로 와서 절하였다. 그 몸 가지는 태도가 단아하여 상천의 여자와는 크게 다르니 본관이 놀라며 치하를 하였다.
“이 교리가 어려운 처지에 빠졌는데 다행히도 제수씨의 힘을 빌어 오늘에 이르렀소. 비록 의기 사내라도 이보다 더하지 못할 것이니 어찌 경탄치 않겠소.”
유기장의 딸이 옷깃을 여미고 대답하였다.
“미천한 여자로 군자의 건즐(巾櫛:수건과 빗으로 부인이 되어 남편의 시중을 든다는 의미)을 얻어 모신지 삼 년에 귀한 분인 줄을 전연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 지아비를 대접하고 일을 처리하는 절차에 무례가 많았습니다. 그러하온대 어찌 감히 본관사또의 치하 말씀을 받겠습니까.”
이러하니 본관사또가 더욱 큰소리로 칭찬하였다. 그러고는 관례(官隸:관가에서 부리던 하인들)에게 명하여 유기장 부부를 불렀다.
유기장 부부는 매우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릎걸음으로 납작 엎드려 뜰아래에 부복하여서는 감히 사또를 쳐다보지도 못 하였다. 사또가 관례로 하여금 부축하여 일으키게 하여 마루에 올라 오게 하고 술을 내려 치하하였다.
이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자 이 교리의 이야기가 인근으로 퍼졌다. 인근 고을의 수재(守宰:각 고을을 맡아 다스리던 지방관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가 차례로 와서 뵙는 것이 문 앞에 끊임이 없고 매일 인마가 모여 떠들썩하니 구경하는 자들이 담과 같았다.
시나브로 또 며칠이 흘러 경성에 올라 가는 채비가 마무리 되었다. 이 교리가 사또에게 말하였다.
“이보시게. 저 여인이 비록 상천의 딸이라 하여도 내가 이미 배필로 삼아 삼년 간 함께 산 정의가 있네. 이뿐 아니라, 저 사람이 나를 위하여 정성과 예의를 다하였네. 그러하니 내가 지금에 귀하게 되었다하여 내치지 못할 것이네. 원컨대 저 여인이 탈 가마 하나만 빌려주시게. 내 함께 가야겠네.”
“암, 그래야지. 그러해야말고.”
사또가 이를 흔쾌히 허락하고 곧 수레와 말을 준비하고 행구(行具:여행할 때 쓰는 물건과 차림)를 갖추어 이 교리 부부를 경성으로 올라가게 하였다.
이 교리가 대궐에 들어가 은혜를 사례하니 중종(中宗) 임금께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닌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 교리가 이에 그 전후사실을 아뢰니 임금이 두세 번이나 탄식하시며 말했다.
“이 여자는 가히 천한 첩으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 특별히 후부인으로 올리라.”
이 교리는 오래지 않아 지위가 육조(六曹)의 으뜸 벼슬로 정2품(正二品)인 판서(判書)에 이르렀다. 유기장 딸과는 종신토록 해로하였고 지체가 높고 귀함이 비교할 데가 없으며 또 자녀가 집안에 그득하였다.
이것은 곧 판서 이장곤의 이야기라 하더라.

간 선생 왈(曰): 이장곤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 이 이야기는 『대동야승』 등 여러 야담집에 보이며 그 유명한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1권은 이 이장곤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이 이야기의 유기장의 딸은 『임꺽정』에서 함흥 백정의 딸 봉단이다. 그녀는 이장곤과 함께 한양에 가 교육을 받으면서 양반 규수로 변화한다. 이 봉단의 외사촌이 임돌이고 임돌의 아들이 임꺽정이다.
그러나 실상 이장곤이 유기장(백정)의 딸과 해로하였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이 이야기가 여러 문헌에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유기장의 딸이든 백정의 딸인 봉단이든, 분명히 이장곤을 위기에서 구해준 ‘운명의 여인’이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세상의 반은 남자, 반은 여자이다. 따라서 남자는 ‘운명의 여인’을, 여인은 ‘운명의 남성’을 만난다. 모쪼록 이장곤과 유기장의 딸과 같은 만남이었으면 하지만, 세상사 그리 만만치 않다. 그런 운명같은 만남이었으면하는 간절한 바람이, 때론 서풍의 하늬바람처럼 세고 북풍의 된바람보다 호된 바람이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또한 운명의 만남일지니, 잘 살아낼 밖에.

 

   
 
아름다운 만남의 대명사인 고소설 『춘향전』 표지(신연활판본 세창서관, 1915 판)
방자가 이몽룡과 춘향의 인연을 맺어주려 다리를 건너가고 좌측 중간에는 꽃 본 나비가 그려져 있다. 우측의 이몽룡과 춘향의 만남은 서로에게 운명이었다. 
 

 

< 저작권자 © 경인예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