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이한 만남은 전생의 인연이 분명하고 사나운 아내는 생에게 투기를 감히 하지 못하다(2)

2015. 4. 21. 11:58간 선생의 야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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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야담카페 제3화(2)

간호윤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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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1  09: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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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이한 만남은 전생의 인연이 분명하고 사나운 아내는 생에게 투기를 감히 하지 못하다(2)

권 생이 한 때 꽃다운 정에 마음이 동하여 중구(中冓:남녀의 운우지락)의 일을 치른 뒤로 백방으로 생각해 보니 이것 참 여간 큰일이 아니었다. ‘엄한 아버지를 모시면서 사사로이 첩을 두는 것이 아들로서 패륜의 행동임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 더욱이 내 아버지의 엄하심은 다른 사람과 비할 바가 아니니 반드시 큰 조치가 있을 테고. 여기에 아내의 질투가 그렇지 않아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터 아닌가. 이를 장차 어떻게 하면 좋은가.’하고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헤아려도 조금도 무슨 뾰족한 계책이 없었다. 도리어 기이한 인연으로 이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것이 커다란 두통거리였다.
권 생은 동이 트자 일어났다. 계집종들로 하여금 문단속을 시키고 그 여자에게 말하였다.
“어젯밤에 일은 실로 천고의 기이한 인연이오. 그러나 집에 엄하신 부친이 계시니 내 임의로 어찌하기 어렵소. 우선 나 혼자 집에 가 그대를 데려갈 대책을 마련해 볼 테니, 잠시만 이곳에서 머무시오. 내 곧 기별을 넣으리다.”
그러고는 주막집 주인에게도 잘 보살펴달라고 단단히 이른 뒤에 문을 나섰다. 권 생은 곧장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지혜 많은 벗을 찾았다. 사실을 자초비종 말하고는 좋은 방도가 없느냐고 도움을 청하였다. 지혜로운 벗은 속으로 한참을 깊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백번을 생각하여도 일을 처리하기가 심히 어려워. 딱히 좋은 방도는 없으나 시험적으로 한 계책을 써보세. 자네가 집으로 간 지 여러 날이 지나 내가 술자리를 베풀고 그대를 초대하겠네. 그러면 그대는 그 다음날 술자리를 마련하여 나를 청하게나. 내가 그 술자리에 참석했을 때 무슨 방법을 써보겠네. 그러니 자네는 이렇게 저렇게 하게나. …한 치의 틀림도 없도록 해야 하네.”
권 생이 크게 기뻐하며 곧장 집에 돌아갔다.
여러 날 뒤에 과연 그 친구가 잔치를 여니 오라는 글을 보내왔다. 권 생이 그 뜻을 아버지에게 아뢰니 아버지가 이를 허락하였다.
그 다음날에 권 생이 아버지에게 아뢰었다.
“아버님! 어제 그 벗이 풍성한 잔치를 펼치고 이 아들을 맞아주었습니다. 마땅히 술자리로 답례해야 옳을 듯합니다. 오늘 술과 안주를 마련하고 마을의 여러 벗들을 청해 맞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만.”
이러하니 그 아버지가 이를 허락하였다.
권 생이 이에 풍성하게 술자리를 마련하였다. 그 벗을 맞이한 후에, 벗이 시키는 대로 마을의 여러 소년들까지도 여럿을 초대하였다. 여러 사람이 시간에 맞추어 와서 먼저 권 생의 아버지에게 일일이 절하여 뵈었다.
늙은 권 진사가 말하였다.
“그대들이 술자리를 마련하고 서로 즐거워하되 한 번도 나와 같은 늙은이를 청하지 않으니, 거 심히 애석하구나.”
그러자 재주 있는 벗이 대답하였다.
“어르신께서 자리에 계시면 저희들이 행동이나 우스갯소리를 마음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어르신의 성품과 도량이 몹시 엄하여 이렇게 잠시 절하고 뵈는데도 마음이 조심스러워 혹 잘못이나 있을까 걱정됩니다. 그런데 어찌 종일토록 어르신을 술자리에 모시고 저희들이 맘 편히 앉아있겠는지요. 어르신께서 만일 저희들과 함께하신다면 차마 눈뜨고는 못볼 풍경일 것입니다.”
그러자 늙은 권 진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술자리는 원래 나이가 많고 적음도 늙음과 젊음도 구별이 없는 법이라. 오늘의 술자리는 내가 마땅히 주석(主席:술자리의 통솔자)이 될 것이니 그대들은 모름지기 평소의 예절을 모두 벗어나 종일토록 즐거움에 취하라. 그대들이 설령 나에게 백 번 잘못할 지라도 내가 조금도 개의치 않을 터이다. 그러니 옛사람의 노소동락(老少同樂)의 뜻을 몸 받아 털끝만큼도 괘념치 말고 즐겁고 우스운 이야기를 하여 이 늙은이의 고적한 마음을 위로 하거라.”
이렇게 되자 여러 소년들이 늙은 권 진사를 자리에 모시고 술동이를 기울이며 마셨다.
권 생의 지혜로운 친구는 늙은 권 진사가 취흥이 도도해져 옥산퇴(玉山頹: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용지(容止)」에 ”산공(山公)이 말하기를 ‘혜숙야(嵇叔夜)의 사람됨은 외로운 소나무가 우뚝하게 서 있는 듯하며 술에 취하면 높고높은 옥산(玉山)이 장차 넘어지려는 것 같다.’고 했다(嵇叔夜之爲人也 巖巖若孤松之獨立 其醉也 峨峨若玉山之將崩)”에서 유래하였다. ‘옥산’은 신선이 사는 산이다.)하고 홍조창(紅潮漲:홍조는 술에 취하거나 부끄러워 달아오른 얼굴빛으로 여기서는 술에 취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을 일는 말로 옥산퇴(玉山頹)와 대구로 만든 조어이다.)하기를 기다렸다.

  
 

『설문해자』에서 ‘우(友)’자는 두 손의 모양으로, 친구가 손을 뻗어 손을 잡는 것을 나타낸다. 고인들은 “同志爲友.”(동지위우 :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친구이다)라고 생각했다. 이 말은 같은 듯을 가진 사람만이 친구라는 뜻이다.
권 생의 벗이 등장하였다. 벗은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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