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이한 만남은 전생의 인연이 분명하고 사나운 아내는 생에게 투기를 감히 하지 못하다(3)

2015. 4. 27. 12:23간 선생의 야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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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책종합
간호윤의 야담카페 제3화(3)
간호윤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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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6  23: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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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이한 만남은 전생의 인연이 분명하고 사나운 아내는 생에게 투기를 감히 하지 못하다(3)

술이 얼마쯤 취하자 권 생과 약속하였던 지혜로운 친구 늙은 권 진사의 앞으로 나가 말하였다.
“제가 기이한 한 고담(古談:예 이야기)이 있으니 원컨대 어르신을 위하여 우스갯소리를 하고자 합니다.”
늙은 권 진사가 웃으며 말하였다.
“고담이라. 거 좋지. 그대가 나를 위해 어디 말해 보거라.”
그 친구가 권 생이 주막집에서 겪은 기이한 일을 한 편의 고담으로 만들어 흥미롭게 이야기하니 늙은 권 진사가 구구절절이 그 기이함을 칭찬하였다.
“실로 기이한 일이로다. 옛날에는 가끔씩 이런 기이한 인연이 있었지.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일이 있음을 듣지 못하겠구나.”
그 친구가 말하였다.
“만일 어르신께서 이런 일을 당하셨다면 어떻게 일을 처리하시겠는지요? 적적한 삼경, 사람도 없는 때에 절대가인이 옆에 있으면 이 여인을 가까이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여인을 돌아보지 않으시겠습니까? 또 만일 이 여인을 가까이 하셨다면, 첩으로 삼겠습니까? 아니면 버리겠습니까?”
늙은 권 진사가 말하였다.
“진실로 궁형(宮刑:자는 생식기를 거세하는 잔인한 형벌)을 당한 이가 아닌 이상에 아름다운 여인을 한밤중 은밀한 방에서 만나 어찌 그저 보낼 이치가 있겠느냐. 또 이미 여인을 가까이 하여 베개와 잠자리를 함께한 이상에야 끝까지 인연을 맺지 않을 수 없으리라. 어찌 이 여인을 버려 원한을 품게 하겠는가.”
그 친구가 말하였다.
“어르신께서는 원래 성품이 엄하고 준열하셔서 비록 이런 경우를 당하실지라도 반드시 마음을 움직이지 않아 절개를 훼손치 않으실 듯한데, 이런 말씀을 하시는군요.”
늙은 권 진사가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하였다.
“이것은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네. 혈기 방정한 소년이 왕왕 미인을 보면 온갖 계책으로 유인하는 일이 다반사거늘, 하물며 이 경우는 그 여자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정으로써 나를 흠모한 것 아닌가? 제 스스로 나에게 온 이상에야 아름다운 여인을 보고 마음이 동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 또 그 여자가 이미 사족(士族:문벌이 좋은 집안)의 신분으로 이러한 일을 행한 것은 실로 그 정경이 슬픈 것이요, 그 처지가 아주 궁한 것이라. 만일 그 여인을 거절한다면 반드시 여인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머금고 원한을 쌓게 되는 터. 그렇게 되면 불행히 내 몸을 덮쳐 제 명대로 살지 못할 터이니, 이 어찌 사람에게 악을 쌓는 짓이 아니리오. 군자로서 일을 처리함에 한 곳에 치우쳐 둘을 잊으면 안 되는 것이라.”
친구가 늙은 권 진사의 마음을 더욱 굳히기 위하여 다시 물었다.
“인정과 사리로 어르신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만, 정녕 이외에 다른 변통은 없겠는지요?”
늙은 권 진사가 말하였다.
“어찌 다른 변통이 있으리오. 단연코 나는 박절한 사람이 되지는 아니하겠다.”
늙은 권 진사 말이 이러하니, 그 소년이 그제야 웃으면서 사실을 고하였다.
“어르신, 이것은 고담이 아니라, 즉 댁의 영윤(令胤:남의 아들에 대한 경칭)의 일입니다. 아드님이 일전에 아무 주막집에서 여차여차하여 이와 같은 기이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르신께서 이미 사리의 당연한 것으로 두세 차례나 틀림없이 여인을 책임져야한다 말씀하셨으니, 아드님이 이제는 다행이도 잘못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권 진사가 이 말을 듣자 얼굴이 붉어지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한나절토록 말이 없다가 홀연히 노기를 띠고 얼굴빛을 정색하고는 음성을 엄숙히 하더니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만 자리를 파하고 가거라. 내가 마땅히 이 일을 처리해야겠다.”
여러 사람들은 모두 놀라 겁이 나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시에 흩어졌다. 지혜로운 친구도 하릴없이 물러 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물러가자 늙은 권 진사가 큰 소리로 노비에게 명하였다.
“자리를 대청에 펴라!”
집안사람들은 모다 두려워 몸을 옹송거렸다. 장차 아들 권 생을 어떤 죄로 어떻게 다스릴지 알지 못하여 모두들 부들부들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늙은 권 진사가 자리에 높이 앉아 또 큰소리로 급히 작두를 가져오라하였다. 사내종이 황망히 명을 받들고 작두를 가져와 섬돌 아래에 놓으니, 늙은 권 진사가 또 종에게 소리쳤다.
“넌 곧 서방님을 데리고 와 이 작두에 엎드리게 하라!”
종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권 생을 데리고 와 목을 작두에 엎드리게 하였다. 그러자 늙은 권 진사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이런 패륜한 자식이! 입에서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아이놈이 부모에게 고하지 않고 첩을 사사로이 두었단 말이냐! 이는 집안이 망하는 행동이라. 이 애비가 아직 죽지 않고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이렇거늘, 하물며 내가 죽은 뒤에야 뻔한 일 아니냐. 이러한 패륜한 자식을 두었다가는 집안이 망할 뿐이니, 내가 생전에 머리를 잘라 뒷날 폐단을 막는 것만 못하다.”
그러고는 추상같이 호령하여 사내종으로 하여금 “작두로 목을 잘라라!”라고 하니, 집안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모두 얼굴빛이 아니었다.

  
 

권 진사는 아들의 목을 소여물을 써는 ‘작두’로 자르라고 한다. 원본에는 ‘작도(斫刀)’로 되어있다.(작두는 지역에 따라 ‘짝도(경상남도 창녕)·짝두(강원도, 전라남도 영광)·작뒤(함경도)’로 불린다.)
작두는 그렇고, 이쯤이면 지혜로운 벗의 계략은 실패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아들의 목이 저 작두에 달아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가 나타나서 아들을 구해줄 것인지?  다음 회를 기대하시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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