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주인을 위해 원수를 갚은 계집 종, 남을 대신하여 원수를 죽인 의로운 남아(상)

2015. 3. 30. 14:22간 선생의 야담 카페

 

간호윤의 야담카페 제 2화(상) - 경인예술신문
www.artnewsgi.kr
본문으로 이동

http://www.artnewsgi.kr/news/articleView.html?idxno=4195
 

간호윤의 야담카페 제 2화(상)

간호윤  |  문학박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5.03.29  21:26:31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2화. 주인을 위해 원수를 갚은 계집 종, 남을 대신하여 원수를 죽인 의로운 남아(상)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1)이 나이가 어렸을 때이다. 고을에 이름난 여러 선비들과 과거를 보러갈 때였다. 도중에 한 소교(素轎:장례에서 상제가 타기 위하여 희게 꾸민 평교자)를 탄 여인과 혹 앞서거니 뒤서거니 갔다. 소교 뒤에는 한 어린 계집종이 뒤를 따라가는데 검은머리를 늘어뜨렸다. 그 용모가 매우 아름답고 행동거지가 단아하여 어떤 사람이 보든지 눈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사람이 말 위에서 모두 눈길을 주면서 가니 어린 계집종도 자주 뒤를 돌아보는데, 유독 동계 정온에게만 추파를 보냈다.
이렇게 동행한 지 한나절이 되자 여러 사람이 정온을 희롱하였다.
“우리들이 문장학식에는 당연히 동계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이나 용모에 있어서는 우리들보다 특출한 점이 없거늘. 저 여자는 무슨 이유로 유독 동계에게만 마음을 주고 추파를 보내지? 세상일이란 이렇듯 알기 어려운 것이로다.”
그러며 서로 실없이 희롱하며 웃어댔다.
얼마 후에 그 소교는 동계 일행과 헤어져 한 촌락을 향하여 가버렸다. 그러자 동계가 말을 세우고 동행하던 선비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이십 여 리를 가면 주막이 있으니 자네들은 그곳에서 머물며 나를 기다리게들. 나는 아는 이 집에서 하룻밤 지내고 동이 트면 곧 자네들이 머무는 곳으로 뒤쫓아 가겠네.”
여러 사람들이 말하였다.
“사람들이 동계에게 기대하는 것이 실로 가볍지 않다네. 지금 과거 길에 말고삐를 나란히 하였으니 중도에서 서로 이별치 못할 것이거늘, 길에서 자그마한 한 요녀를 만나 부질없는 정욕에 끌려 도리에 어긋나는 마음을 일으켜 우리들 보고 주막집에 머무르게 하다니. 이러한 망령된 행동을 하니, 고인의 소위 ‘사람은 진실로 알기가 쉽지 않고 다른 사람을 알기도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한 말이 실로 자네의 행동을 두고 하는 말일세.”
동계는 웃으면서 대답지 않고는 말에게 채찍을 휘둘러 그 소교가 향한 마을로 들어갔다. 소교가 도착한 집에 이르니 집채는 크고 아름다우나 바깥쪽에 달린 사랑채는 부서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동계가 말에서 내려 사랑의 난간 위에 앉아 그들의 동정이 어떠한 지를 보았다. 잠시 후에 그 어린 계집종이 안에서 나오는데 웃는 얼굴이 품에 안을 만하였다.
어린 계집종이 동계에게 말하였다.
“서방님께서 이곳에 오실 줄 제가 이미 점쳤지요. 이미 이곳에 오신 이상에야 이렇게 찬 난간에 앉아계시지 말고 잠깐 제 방으로 가시지요.”
동계가 계집종을 따라서 들어가 보니 방 안이 극히 정결하였다. 저녁상을 내왔는데 풍성하게 잘 차렸다. 동계가 식사를 마치니 어린 계집종이 말하였다.
“제가 안에 들어 가 청소를 하고 다시 나오겠습니다.”
어린 계집종이 안에 들어간 지 여러 시간 뒤에 나와서 무릎을 맞대고 촛불아래 앉으니 동계가 웃으면서 물었다.
“네가 어찌 내가 올 줄 알고 이와 같이 하는 것이냐?”
어린 계집종이 말하였다.
“제 나이 이제 막 열일곱이고 용모가 과히 추루하지는 않아요. 오늘 길에서 서방님에게 여러 차례 추파를 보냈지요. 그렇게 하였기에 서방님같이 굳센 마음을 지닌 사내라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는 못 배기셨을 겁니다. 제가 이와 같이 한 것은 가슴 속에 가득 찬 원통한 마음이 있어 서방님의 손을 빌려 그 원통함을 풀고자 함이에요. 원컨대 저에게 은혜를 내려주세요.”
그러고는 눈물을 흘리니 안색이 처연하였다. 동계가 그 연유를 물으니 어린 계집종이 대답하였다.
“저의 상전은 여러 대 독자인데 한 음란한 부인네를 얻었기에 돌아가셨답니다. 가까운 일가붙이도 없어서 원통함을 풀어 복수할 방법도 없고, 다만 저 한 사람뿐이에요. 마음 속 깊이 원통하고 분한 마음이 가슴 속에 맺혔으나 스스로를 돌아보건대 일개 여자의 몸으로 실로 어떻게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 천하의 뛰어난 인물에게 제 몸을 허락하고 그 손을 빌려 이 원통함을 풀고자 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음란한 부인네가 친가에서 돌아옴에 제가 부득이 뒤를 따른 것이랍니다. 길에서 서방님 일행을 만났을 때, 여러 사람 중에 오직 서방님이 가장 영웅호걸의 기상이 있어 평생의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겠기에 이와 같이 한 것이지요. 오늘 밤에 저 음란한 부인이 또 간통할 사내를 끌어들여 안방에서 음란한 짓을 낭자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천년에 한 번 있는 기회입니다. 원컨대 서방님께서 이 기회를 타서 일을 꾀해주신다면 백년의 한을 풀어 볼까합니다.”

1)자는 휘원(輝遠). 호는 동계(桐溪)ㆍ고고자(鼓鼓子). 부제학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척화(斥和)를 주장하였으며, 이듬해 화의가 성립되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저서에 『덕변록(德辨錄)』, 『동계집』 따위가 있다.
    
 
저 시절이나 이 시절이나 남녀 간의 은밀한 밀회는 언제나 있었다.
신윤복의 <월야밀회>라는 그림이다.
< 저작권자 © 경인예술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