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눈으로 천리를 보는 부인의 지혜 일세에 성공한 대장부의 영광(상)

2015. 3. 16. 09:13간 선생의 야담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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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윤의 야담카페 제 1화밝은 눈으로 천리를 보는 부인의 지혜 일세에 성공한 대장부의 영광(상)
간호윤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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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14  20:5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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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화
밝은 눈으로 천리를 보는 부인의 지혜 일세에 성공한 대장부의 영광(상)

창의사(倡義使:의병을 일으킨 사람에게 주던 임시 벼슬) 김천일(金千鎰,1537~1593)의 처는 어느 집안의 여인인지 알 수 없다. 시집온 날부터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는 날마다 낮잠만 잤다. 그러니 시아버지가 타일렀다.
“네가 아름다운 부인네란 것은 안다. 그렇지만 부인의 도리에 조금은 빠지는구나. 마땅히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근심하고 경계하는 마음을 가져야 앞날의 허물을 고칠게다. 무릇 부인이라 함은 모두 각각 그 부인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네가 이미 시집 온 이상에는 집안을 다스리고 재산을 불리는 것이 본분이리라. 그런대 너는 시집온 뒤 이러한 일들은 조금도 손을 쓰지 않고 오직 날마다 낮잠만 잘 뿐이니 이 어찌 부인의 도리라 하겠느냐!”
시아버지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부인이 대답하였다.
“아버님께서 가르침을 주시는 것은 이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재산을 불리려한들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야 어떻게 무슨 일인들 해나가겠습니까.”시아버지가 이를 딱하게 여겨 즉시 삼십 석의 조(租:쌀)와 너덧 명의 노비와 여러 마리의 소를 주며 말하였다.
“이만하면 재산을 불릴만한 밑천으로 충당할만할 게다.”이러니 그 부인이 “이만하면 족합니다.”하며 노비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이후로부터 너희들은 이미 나에게 속하였으니 마땅히 내 말을 들어야한다. 이 삼십 석의 조를 여러 소에 나누어 싣고는 무주(茂朱:전라북도 북부에 있는 읍)의 아무 곳으로 들어가거라. 그러고 깊은 계곡을 택하여 나무를 베고 집을 얽고 이 조로 농사지을 동안 먹을 양식을 삼고 화전을 부지런히 경작하거라. 매년 가을이 되면 수확한 곡물의 수량을 잘 따져서 나에게 와 고하여라. 그렇게 조금도 빠짐없이 실제 수량대로 벼를 찧어 쌀로 만들어 저장하여 두거라. 매년 이렇게 하기를 게을리 말라.”
노비들은 명을 받들고 무주로 향하였다.
부인은 여러 날 뒤에 천일에게 말하였다.
“남자의 수중에 돈과 곡식이 없으면 모든 일을 이루지 못하옵니다. 대장부로서 어찌 이에 생각이 미치지 않는지요.”
천일이 말하였다.
“내가 입고 먹는 것을 모두 부모님께 의지하여 왔소. 돈이나 곡식을 어느 곳에서 변통하겠소.”
부인이 말하였다.
“제가 들으니 인근에 이 생원 아무개가 있는데, 아주 많은 재물을 쌓아놓았다더군요. 저 자가 내기를 즐긴다하니 군자(君子:아내가 자기 남편을 높여 이르던 말)께서 저 자와 천 석의 노적가리를 놓고 한 번 내기해 보는 것이 어떠신지요.”
천일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장기바둑을 잘 둔다고 세상이 다 그 이름을 알잖소. 나는 수법이 심히 졸렬하고, 그러니 저자를 어떻게 이긴다 말이오?”
부인이 말하였다.
“이것은 실로 쉬운 일이에요. 제가 묘수를 하나하나 가르쳐 드릴게요.”
천일도 또한 기걸찬 사람이었다. 한나절을 출입하지 않고 부인에게 대국의 진법을 하나하나 배우니 조리가 분명하고 바둑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부인이 천일에게 권하였다.
“이제 이미 수법을 깨달으셨으니 가히 바둑을 두실만 합니다. 군자께서는 모름지기 삼판양승으로 내기를 하십시오. 처음에는 거짓으로 져주고 두 번째, 세 번째 대국에서는 승부를 결정지으세요. 그렇게 저 사람의 노적가리를 얻은 후에 저 사람이 다시 겨루기를 청하거든 이때에는 신묘한 법을 운용하여 다시는 저 이가 대적치 못하게 하세요.”
천일이 부인의 말대로 다음날 이 생원 집으로 갔다. 주인에게 내기바둑 두기를 청하니 그 사람이 웃었다.
“내가 그대와 한 동리에 살았으나 그대가 내기바둑을 둔다는 말은 듣지 못했소. 내 적수가 못 되니 대국할 필요가 없소이다.”
하지만 천일은 여러 차례 대국하기를 간곡히 청하였다. 이러하니 주인이 부득이하여 대국을 하며 말하였다.
“내 평생 동안 쓸데없는 내기를 하지 않았소. 이제 그대가 대국하려면 장차 어떤 물건으로 노름빚을 대려오.”
천일이 “그대 집의 천 석 노적가리로 내기합시다.”라고 하자, 그 사람이 “그대는 뭣으로써 내기하려오.”라고 물었다. 천일이 “나도 천 석을 내기하겠소.”라고 하니, “그대가 부모님을 모시는 사람으로 천 석을 어떻게 마련하려오?”라고 하였다.
천일이 대답하였다.
“이는 승부를 결정지은 후에 이야기할 바요. 내가 진 이상에야 천 석을 족히 염려할 바 아니오.”
이에 삼판양승으로 결정짓자고 하였다. 천일이 처음에는 일 국을 거짓으로 지니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그대는 내 적수가 아니오. 내 애초에 말하지 않았소.”
천일이 “아직도 두 번의 대국이 남았으니 나머지 결과를 봅시다.”라 하고 다시 대국을 하니 주인이 심히 괴이쩍고 의심스러웠다.
최후의 두 국은 마침내 천일의 승리로 돌아갔다. 주인은 매우 놀랍고 이상히 여기며 즉시 천 석을 내어 주며 “세간에 이와 같은 이치가 어찌 있으리오.”하고는 다시 내기 바둑을 청하였다.

작가의 변

간호윤의 야담카페를 시작하며

들숨소리 하나,

이 야담카페는 『기인기사록』이라는 신연활자본 야담집을 번역하고, 이를 다시 저자 나름대로 매만져 놓은 글이다. 『기인기사록』은 상․하 2권으로, 일제 치하인 1921년과 22년 물재(勿齋) 송순기(宋淳夔,(1892~1927)가 현토식(懸吐式) 한문으로 편찬한 ‘신문연재구활자본야담집(新聞連載舊活字本野談集)’이다.

‘기인기사(奇人奇事)’라. 검은 먹대로라면 맨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란 뜻이다. 허나 글줄을 따라잡다보면 백문선이 헛문서 같은 글이 아님을 안다. ‘별난 사람, 별난 이야기’로되, 삶의 꼼수와 기술을 터득한 축들이 여봐란 듯이 세상을 휘젓는 꾀부림 이야기가 아니요, 잇속을 얻어 부를 몸에 두르고, 권세를 얻어 머리꼭지에 금관자를 붙이고 ‘물렀거라’ 외치는 권마성 소리만도 아니다. 조금만 살피면 깔깔대며 주고받는 그저 우리네 이웃 사람들의 엇구수한 삶의 소리이다.
이것이 바로 야담(野談)이다.
야담은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흥미 있게 꾸민 것이다. 그래, 야담은 이 세상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보탬이 되려는 심결에서 나왔다. 이 책 속에는 재주놀음 하는 이, 풍 치는 이, 바른 맘결을 가진 이들이 나와 저러한 세상을 조롱하기도, 혼내기도, 생글 웃어넘기기도 한다.
때로는 적당히 허구도 섞어작 곁들였지만, 그렇다고 온통 스님 얼레빗질하는 흰소리만은 아니다. 여기엔 세상을 꼬느는 꼬장함도, 저기엔 고운 마음결로 평생을 눈물로 산 이들의 삶도, 땀땀이 수놓아져 있기 때문이다. 때론 예리한 붓끝으로 사정없이 세상을 벼리고 불의를 산골(散骨)하여, 문자의 표본실에 안치해 둘만한 논객의 글발보다도 나은 영채가 도는 글도 만난다.

들숨소리 둘,
난 이 야담을 초승달에 비유해본다. 야담은 우리네 부대끼는 삶의 실개천에서 건져 올린 초승달이다. 초승달은 음력 초사흗날 저녁에 서쪽 하늘에 낮게 뜨는 눈썹 모양의 달이다. ‘초승달은 잰 며느리가 본다’한다. 어쩌다 산머리에 낫 같은 초승달이 걸린들 아무나 보는 것이 아니다. 건강하게 하루 삶을 보내고 고개를 들 줄 알아야만, 우련한 저 초승달을 볼 수 있다. 초승달이 앞서야 반짝이는 저녁별도 총총 나온다. 그래 별은 누구나 보지만, 초승달은 누구나 보는 게 아니다.
그림으로 치면 엷은 담묵(淡墨)기법의 수묵화이다. 그래 가만히 산머리를 치어다보고, 화지를 스치듯 지나간 엷은 붓 자국을 훑을 줄 아는 마음이 먼저 선손을 걸어야만 한다. 이렇듯 야담 속에 들어 있는 저 이들의 붓질은 보는 이의 마음이 있어야만 통성명을 하고 따라잡을 수 있다.
모쪼록 ‘간호윤의 야담카페’를 찾은 분들, 여명 우려든 아침 햇살이 창호 살을 투과하며 빚어내는 그 해맑고도 평안한 청안(淸安)함이 든 야담 카페의 차 한 잔 드시기를 바란다.

 

   
 
간호윤(1961) 문학박사
서울교육대학교 인하대학교 교수, 저서로는 한국 고소설비평 연구』(경인문화사:2002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기인기사』(푸른역사,2008),『아름다운 우리 고소설』(김영사,2010),『당신 연암』(푸른역사,2012), 『다산처럼 읽고 연암처럼 써라』(조율:2012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그림과 소설이 만났을 때』(새문사:2014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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