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은가

2015. 4. 20. 15:57학생들의 글, 리포트/학생들의 글과 리포트


학생들에게 내준 독후 리포트 중, 한 편입니다.

"세상은 하나이며 동시에 많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이 있으며 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세상도 있다."라는 말이 깊이 다가옵니다. 



나는 어떤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은가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을 읽고

 

 

2015

정00

 

 스무살이 되었다. 스무살이 되면, 무언가 달라지겠지 믿었다. 열아홉의 나는 스무살이 되면, 대학만 가면 뭔가 정해질 것이라,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했다. 뭘 정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냥 나한테 뭔가 정해지겠지, 내가 목표로 삼고 따라갈 무언가가 생기겠지.

 

 처음에 책 제목을 보고 걱정을 많이 했다. 힐러리 클린턴과 관련된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녀는 뛰어난, 많은 이들의 귀감을 사는 여성 리더이며 이를 입증하듯이 그녀에 대한 책은 많았고, 권장도서에는 여지없이 그녀의 이름이 달린 책들이 끼어 있곤 했다. 하지만 나는 자기계발서 라는 점과 제목이 마음에 걸렸고 쉽사리 책을 펼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의 내용은 인생을 성공적으로 꾸려가는 방법, 공부를 잘 하는 방법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두 끊임없는 노력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미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내용이었다. 내게는 그 책들의 내용은 마치 “살을 빼고 싶어요? 적게 먹고 많이 운동하면 됩니다.”라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여겨졌다. 자기계발서의 역할은 자극제 그 이상을 해내지 못했다. 또한 아무리 자극을 받고 무언가를 느꼈더라도 실천하지 않는 이상 도태되는 내 자신을 보며 자기계발서에 염세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이라니.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사람의 위대함을 강조하며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를 그녀를 본받아야 하는 잠재적인 예비 힐러리 지망생으로 탈바꿈 시킨다는 느낌이 참 싫었다.

 

 책은 재미있었다. 누가 자기를 때리면 복수하기보다는 자기가 더 노력해서 아예 건드리지도 못하게 성장해버리라고 가르치는 기존의 책들과 달리 때리면 더 세게 때려주라는 말은 인상 깊었다. 기존의 책들은 자기 자신의 발전이 곧 성공의 척도가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힐러리의 발전은 그녀의 주변사람들과 미국인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에 직결하기에 저런 말이 인생의 지침이 되었으리라. 그녀의 전쟁 같은 삶은 치열했고 열정적이었다.

 

 작가는‘세상에 중심에 선’,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독자들이 모름지기 본받아야 하는’ 힐러리 클린턴의 삶을 조명해 우리에게 조언을 건넨다. 책 뒤에 독자들의 리뷰에서도 힐러리를 따라하고 싶어졌으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우리 딸도 이렇게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힐러리의 삶에 감명 받았다는 의견들을 실어 위의 전제에 힘을 실었다. 물론 나도 일부는 동의한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자아를 압박해 왔던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화 등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아동과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임신 중임에도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그녀의 모습은 멋졌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는 모습은 같은 여자가 봐도 멋졌고 대단했다.

 

 다만, 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그녀에게 얻을 것이 있나? 힐러리가 이뤄낸 성과들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주기 위한 책이었기에, 성공하는 방법 위주의 내용 진행은 당연했지만 나는 그 내용에 거부감이 들었다.

 

 이러이러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조언들은 내게 의미가 없었다. 내가 실천하지 않으면 그냥 죽은 지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나는 그 책들을 경각심을 가지고 비판하며 읽지 않았다. 내가 수많은 자기계발서 들을 읽은 이유는 그들이 살아가는, 그 꿈틀거리는 느낌이 좋아서였다. 밤을 새며 공부했다, 벽에 머리를 찧어 매우 아팠지만 수업내용을 놓칠까봐 양호실에 가지 못했다는 내용은 내게 그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느끼게 해 주었기에 자극이 되었다. 똑같은 사람인 저 사람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 주었음과 동시에 당연한 말을 굽이굽이 돌려서 말한다는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간적인 맛이 없는, 어찌 보면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자기계발서인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은 내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힐러리의 삶은 앞서 말했듯이 치열하고 열정적이었으며 전략적이었다. 책에서는 그녀의 삶을 세상의 중심에 선 자의 삶이라 묘사했다. 나약한 도도새에서 강인한 독수리로, 약자에서 강자로 변해가는 그녀의 모습에 찬사를 보내는 구절들을 읽으며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도도새였던 시절의 힐러리를 ‘나약하기 이를 데 없다’하며 독수리가 된 힐러리가 세상의 중심에 섰다고 평가하는 작가와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아연했다.

 

 동화를 뒤집어보는 만화를 즐겨보는데, 거기서‘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을 다룬 만화가 떠올랐다. 탑을 쌓아 하늘에 닿겠다는 애벌레들은 나비가 된 애벌레들에게는 물론 어리석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애벌레들을 사람에 비유해 보자. 모든 사람들이 나비가 되는가? 그럼 나비가 아닌, 힐러리 클린턴처럼 최상위층에 위치한 사람이 아니면 어리석고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일까? 각자 자신의 목표를 가지고 자기만의 세상을 꾸려가는 그 애벌레들을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탑을 쌓는, 절대다수의 애벌레들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순환하는 것이다. 물론 힐러리 클린턴이 이뤄낸 성과가 위대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난 그녀가 세상의 중심에 섰다는 작가에게 진심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그녀는 도대체 ‘어떤’ 세상의 중심에 선 것인가?

 

   힐러리는 새로운 세상을 구축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기존에 있던 세상에서 자기를 공격하는 상대들에게 더 세게 한방을 날리며 그 중심에 섰다. 하지만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그녀의 여정에서, 나는 그녀의 꿈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책에는 그녀의 꿈이 없다. 다만 그녀가 이뤄낸 성과들에 대한 찬양과 우리 모두 이렇게 성공하자는 노골적인 암시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세상은 하나이며 동시에 많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세상이 있으며 나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세상도 있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느끼게 되고 아기는 엄마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세상의 중심이 되며 대통령이나 유엔 사무총장을 진정한 세상의 중심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책을 봐도 전지적 작가시점, 1인칭 주인공 시점 등 세상을 보는 여러 시각이 존재한다.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따라 서게 되는 세상도 변화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힐러리의 삶은 대단하지만 본받고 싶지는 않다. 그녀의 삶은 꿈을 품은 모든 여자가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서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지만 그 방식은 내가 원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그녀가 세상에 중심에 섰다 했지만 그 세상은 내가 서고자 목표할 세상이 아니다. 아직 내가 세상을 모르고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 보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나와 그녀의 목표의 무게가 달라 이렇게 생각한다고 비웃음을 살 수도 있고 몇 년 뒤에 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만약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세상에는 서고 싶지 않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들은 자신의 세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비록 그것이 남들 보기에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 세상의 주인에게는 단 하나뿐인 자신만의 소중한 세상이며 그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전반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줌과 동시에 행복을 찾는 씨앗이 되어줄 것이다. 세상의 중심에 서는 방법은 다양하다. 힐러리처럼 기존에 있던 세상에서 전략적으로 행동해 중심을 차지할 수도 있고, 자기가 새로운 세상을 구축해 그 세상의 중심이 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나는 중요한 것은 어떤 세상의 중심에 서는가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어떤 세상을 목표로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 중심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스무살이 되었다. 사실 스무살이 된 지 좀 지났다. ‘좀 지날’ 동안 내게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나는 이제, 무엇을 정해야 하는지 안다. 내가 어떤 세상에 서게 될지 결정하는 시간들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사실이다. 오롯이 나의 의지로 결정한 세상을 찾고, 그곳에 선다는 것은 분명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믿는다. 내 삶을 함께할 세상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