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은 조각

2012. 6. 25. 10:59학생들의 글, 리포트/학생들의 글과 리포트

조각가로서 학생들을 본 글이다. 교육은 조각이란 말을 생각케 한다.

 

 

 

<언어와 문화 피드백>

20120213 박지원

나와 학우들은 1학기 언어와 문화 수업에서 각자 한명의 조각가가 되었다. 이전에는 조각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을 보여주고 주어진 도구로 그 작품을 모방하는 것과 같았다. 이제는 교사의 길 혹은 교육관이라는 돌을 스스로 골라 자신에게 맞는 도구를 고르고, 자신의 뜻을 조각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돌조각이 떨어져 버리고 산산조각 나거나, 다른 조각과 부딪혀 깨져버리는 것처럼 기존의 생각이나 교육관이 깨져버려 마음이 아프고 혼란스러운 경우도 있었지만, 조금씩 스스로 융통성 있게 대처하는 방법을 익힌 것 같다. 교수님께서는 스승으로 직접 조각을 다듬어 주시지는 않지만 때때로 ‘3분교육’처럼 작은 조각을 보여주셨고, 토론에서 서로의 조각이 부딪혀 금이 갈 때 ‘중재’ 혹은 ‘정반합’이라는 좋은 접착제를 붙여주셨으며, ‘광휘일신’, ‘이여관지’ ‘선명고훈’ 등 강의를 통해 돌의 속을 보는 법, 내 마음을 읽어 돌을 조각하는 법, 새로운 관점에서 돌을 판단하는 법 등을 가르쳐주셨다. 학우들도 토론 과정에서 생각이 다른 까닭에 조각끼리 부딪혀 깨지는 경우도 여러 번 발생했지만, 깨진 것을 다시 만드는 과정에서 더 예쁘게 조각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서로 교육관을 공유하고, 문학에 대한 느낌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조각을 할 수 있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조각가들의 모범이 되어주며 자신의 조각을 보여주시고 분위기를 이끌어주시고 많이 가르쳐주신 학우 조각가에게도 감사드린다.

돌이켜보면, 다른 조각을 보고 틀에 맞게만 조각하며 약간의 우월감에 빠져 있던 나에게 이 수업은 충격이었다. 수업 중에 틀에 맞게 만든 조각을 나 스스로 깨버리기도 했으며, 전과는 다른 수업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조각에 손도 대지 못한 날도 많았다. 특히 교수님께서 가끔 내 주시는 레포트가 많이 당황스러웠다. 예전처럼 틀에 맞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오는’ 혹은 ‘만들어오는’ 과제였기 때문이다. 매번 과제마다 처음에 시행착오를 겪었고, 만드는 조각마다 부서져 매번 다시 만들곤 했다. 이런 의미에서 나에게 이 강의는 교육을 조각하는 것 외에 박지원이라는 조각가가 ‘어른이 되어가는 성장과정’이었다. 실제로 과제 혹은 교육관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발표 주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 외에도 ‘나는 지금 어떠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교대에 들어온 것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아이일 때는 상급 학교에 진학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미래였다면, 지금은 정말 내 선택에 의해 천차만별로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내가 예상하던 것과 다르게 주어진 자유와 그에 따라 부과된 의무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와는 다른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고,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으며 때로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학기 초와 달리, 수업을 듣고 다른 학우들을 보면서 혹은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생각이 철이 없거나 아직 어리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문학 시간에 문학을 새롭게 정의해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문득 떠오른 것이 있다. 나에게 문학은 ‘핫식스’이다. 지치고 피곤할 때에도 문학은 나를 끊임없이 긴장하게 해주며, 심장을 뛰게 하고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나에게 이 수업도 ‘핫식스’가 아니었나 싶다. 조별 과제를 하면서 학우들끼리 발표 준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 질문을 찾아보면서 토론을 하고, 토론을 하다 보면 누구도 느끼지 못했지만 어느덧 심화된, 발전된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발표가 끝나고 학우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하고, 교육관을 더 단단하게 재정립할 수 있었다. 또한 다른 학우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새롭게 알게 되고,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하게 된 것들도 많았다. 통일 후 국어 교육이라는 주제에서 나온 남북한 교사 두 명이 한 학급에 배치된 경우가 그 예이다.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처음 들었을 때에는 매우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우들과의 토론을 진행하면서 한 명이 명예교사와 같은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는 점, 진정한 통일이 아니라는 점, 교육이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분리될 것이라는 점 등에서 많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내가 가장 놀란 것은 ‘핫콜’의 효과였다. 핫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학우들이 어떻게 발표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주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논문들도 찾아보면서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질문을 생각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에서 ‘자문자답’의 효과를 느꼈다. 단순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답을 생각해보면 건설적이면서도 고차원적인 답이 나오기도 하고, 뻔한 질문인데도 오래 생각해서 답을 찾은 질문도 있었다. 또한 실제로 발표를 한 학우들에게 질문한 경우, 학우들의 답변과 교수님께서 덧붙인 말, 그리고 그에 반응한 생각들, 마지막으로 토론문을 작성하면서 더욱 심화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토론문을 쓰면서도 느낀 것인데 ‘이러한 수업이, 이러한 생각이 지금도 물론이지만 교직에 나가서, 혼란 속에서 나를 잡아줄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네 단계의 피드백이 융합된 생각과 가치관이 굳어지는 것을 보면서 신기했고 내가 정말 대학생이 되었구나 라는 뿌듯함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직접 발표한 것보다 ‘핫콜’이 더 기억에 남으며, 더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마냥 길게만 느껴졌던 한 학기가 다 지나갔다. 맨 처음 견습 조각공으로 커다란 돌을 보고 막막했던 때가 떠오른다. 스스로 조각하는 법을 몰라 막막하고 힘들었던 학기 초, 이제 막 스스로 조각하는 법을 배우고 신기해한 학기 중반,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나간 지금, 나의 조각은 어떤 모습일까. 아직 갈고 닦아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기에 끝나버린 수업이 아쉽고 어렵게만 생각해 너무 늦게 이 수업의 의미를 깨달은 것 같아 안타깝다. 조금은 막막했지만 스스로 조각을 깎으며 했던 생각들, 조각에 담으려고 했던 내 뜻을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조각을 완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만든 이 조각이 평생동안 만들 조각 중에서 가장 울퉁불퉁하고 예쁘지 않은 조각일 것 같지만 가장 진심을 담은 조각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아직 어린 견습 조각공이지만, 조금씩 조금씩 한 단계 밟아 나가 진정한 ‘어른 조각가’가 되어 ‘스승 조각가’가 될 때까지 열심히 조각해 보고 싶다. 끝으로, 철이 없던 내가 아직 아이임을 자각하고 조금씩 성장해 어른이 되는 단계를 밟을 수 있게 이끌어주시고 조용히 기다려주신 ‘스승 조각가’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