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차 이물견물(以物遣物) 닭치는 일을 글로 풀어내라.

2011. 11. 27. 18:59삶(각종 수업 자료)/고전에서 미래를 읽다 (강의자료)

 

고전에서 미래를 읽다(4).ppt

4: 이물견물(以物遣物) 닭을 치는 일을 글로 풀어내라

속학은 속되고 정도가 낮은 학문이고, 아학은 고상하여 정도가 높은 학문이다. 다산 선생은 이 세상에 살면서는 두 가지 학문을 겸해서 공부해야 하니, 하나는 속학이요, 하나는 아학이라 한다. 그러나 속학과 아학 공부는 각따로가 아니다. 속학이 아학이며 아학이 곧 속학이기 때문이다.

안동-답답이는 기둥을 안은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는 뜻이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와 매미에게 바다 이야기와 겨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격이다. 쇠귀에 경 읽기요, 말 귀에 봄바람이다.

이 책을 만들 무렵 풍 맞은 친구를 만났다. 말을 주고받음은 물론이요, 간단한 산책에 한잔 술도 괜찮았다. 벗은 뇌의 99%를 쓰지 못한다고 병원에서 진단받았다. 1% 뇌의 기능만으로 생활을 한다. 다만 음식 맛을 보거나, 냄새는 맡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가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는 이 모든 것이 뇌의 영역임을 알았다. 입이 맛을 보고, 코가 냄새를 맡는 것이 사실 뇌의 영역이다. 슬픈 일이 있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른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았으니 안동답답이가 따로 없다.

안동답답은 다산의 글 도처에 보인다. 아래 글은 <상중씨(上仲氏)>로 다산은 자연의 색깔이 다양하거늘, 어찌 안동답답이처럼 일곱 가지 색으로만 규정짓느냐고 우리의 됫박만한 앎을 통매한다.

시험 삼아 풀잎이나 나무껍질을 채취하여 즙을 내기도 하고 달이기도 하여 물을 들여 보니, 흑 따위의 오색이나 자주색녹색 이외에도 이름 지어 형용치 못하는 여러 색깔이 튀어나와 기이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매우 많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색 이외에는 오직 자주색과 녹색 두 색깔만 알고는 이외의 모든 물건의 빛깔을 다 버리고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안동답답(安東沓沓: 융통성이 없이 미련하다는 뜻)이겠지요.

 

다산의 <중씨께 답함(答仲氏)>이란 글도 그렇다. “옛 사람의 법은 따를 만하면 따르고, 어길 만하면 어겨야합니다.선생께서는 요즈음 수학을 전공하시더니 문자를 보면 반드시 수학으로 해결하려 드는군요. 이는 마치 선배 유학자 중에 선()을 좋아하는 자가 불법으로 대학을 해석하려던 것과 같고, 또 정현(鄭玄)이 별자리 모양을 좋아하여 이로써 주역을 해석하였던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은 치우쳐서 두루 섭렵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병통(不周之病)’입니다라고 한다.

다산은 옛 사람의 법은 따를 만하면 따르고, 어길 만하면 어겨야합니다.(古人之法 從則從之 遠則遠之)”라고 전제한 다음, 수학을 안다고 세상을 수학만으로 읽고, 선을 좋아한다고 불법으로 대학, 또 후한 때 선비인 정현이 별자리로만 파고드는 주역해석도 영 못 마땅해 한다. 두루 섭렵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병통을 해결하기 위해 다산은 속학과 아학을 겸해야한다고 한다.

글 지을 마음으로 사물을 본 이덕무의 <잡제>1이라는 시다.

비 온 못에 개골개골 무척이나 시끄러워(雨池閤閤太愁生)

돌을 던져 개구리 울음을 그치게 하렸더니(拾石投䵷欲止鳴)

안녕하시오여뀌뿌리 푸른 글자를 내고(無恙蓼根靑出字)

비늘 고운 금붕어는 물결 차며 놀라 뛰네.(潤鱗金鯽撇波驚)

 

잠시 귀기울여본다. 누구나 듣는 개구리 울음이 한 편의 멋진 시가 되었다. 개굴개굴 개구리 울음이 꽤 시끄럽다. 그래, 조용하라고 돌멩이를 던졌나보다. 퐁당! 돌이 떨어져 파문이 이는 곳을 보니 여귀뿌리 파랗게 드러나고 금붕어는 물결치며 놀랜다. “‘안녕하시오여뀌뿌리 푸른 글자를 내고라는 표현이 참 멋들어지다. 글 지을 마음이 없고서야 여뀌뿌리가 어찌 인사를 하겠는가.

벌레 수염과 꽃 잎사귀를 연암도 보았다. 연암이 한 번은 어떤 촌사람과 함께 잠을 잔 적이 있는데, 그 사람이 꽤 코를 골았나보다. 벌레 수염과 꽃 잎사귀를 보듯 가만히 그 사람을 들여다본 연암은 <공작관문고서>에 이렇게 적어 놓았다.

 

코 고는 소리가 얽매이지 않아 마치 토하는 것도 같고, 휘파람 부는 것도 같고, 한탄하는 것도 같고, 숨을 크게 내쉬는 것도 같고, 후후 불을 부는 것도 같고, 솥의 물이 끓는 것도 같고, 빈 수레가 덜커덩거리며 구르는 것도 같았으며, 들이쉴 땐 톱질하는 소리가 나고, 내뿜을 때는 돼지처럼 꿀꿀대었다.

 

여간 흥미롭지 않은 글이다. 코고는 사람을 묘사하려고 무려 9가지의 비유를 들어 열거한다. 코를 고는 하찮은 것도 세밀히 보았을 때, 저토록 재미있는 글로 이어진다. 이 글이 글쓰기에 관한 글임을 상기한다면, 하찮은 일상이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 알게 된다. 연암이 똥구덩이를 보고도 장관이라고 하고 똥장군을 지고 평생을 살다간 예덕 선생을 소설 속 주인공으로도 삼은 이유도 여기서 찾는다.

연암의 <도강록(渡江錄)> 호곡장(好哭場한 구절만 더 본다.

 

사람들은 단지 칠정 가운데 오직 슬픔만이 통곡하게 만드는 줄 알고 칠정 모두가 통곡이 됨을 모른다. 기쁨이 극에 달하면 통곡이 되고, 성냄이 극에 달하면 통곡이 되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통곡이 되고, 사랑이 극에 달하면 통곡이 되고, 미움이 극에 달하면 통곡이 되고, 욕심이 극에 달하면 통곡이 된다.

 

연암의 말대로 통곡을 부르는 것이 어찌 슬픔만이겠는가. 사실 기쁨, 성냄,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이 지나치게 되면 통곡으로 이어진다. 우물 안 개구리와 밭두덕 두더지처럼 안동답답이가 되지 않으려면 통곡 또한 벌레 수염과 꽃 잎사귀를 보듯 자세히 살펴야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열린책들.

말로 모건 지음, 류시화 옮김, 무탄트 메시지, 정신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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