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5)

2009. 5. 27. 06:49글쓰기/글쓰기는 연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애도하며(5)


"순수, 열정, 정의롭게 살고자 한 노무현 대통령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어제 시민들이 송내역에 마련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5시가 좀 넘은 시각이다. 조문 행렬은 한 10분쯤은 기다려야할 듯 했다.

봉하마을로 보낸다는 방명록에 위와 같이 적었다.

옆에 초등학교 1,2학년쯤 된 한 꼬마둥이도 무어라 열심히 쓴다. 가만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국화 한 송이와 근조(謹弔)라 쓴 상장(喪章)을 받아 들었다. 아버지 상을 당하였으니, 두 번째 가슴에 다는 상장이다.


빈소에 들어섰다.

생전의 모습이다. 누구의 빈소를 찾든 망자의 영정은, 생전의 모습으로 자기의 주검을 찾은 자를 맞는다. 나는 늘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면 눈가가 참 깨끗하다고 생각했다. 그 말이 참 순순하다고 생각했고, 그 행동이 정직하다고 생각했다. 여느 사진에 비해 다소 경직된 모습이나 눈과 입매가 다름없는 그다.


팍팍한 이 사회를 살아가는 나지만, 잠깐 그의 사진에 물안개가 핀다. 안내자의 말에 따라 받아 든 국화 한 송이를 영정 앞에 놓고 두 번 절을 하고, 상주를 대신한 이와도 예를 표했다. 좀 전 꼬마둥이 녀석의 상가예법도 어른 못지않다.


버스를 타고는 가슴에 단 상장을 만져본다. 검은 천에 흰 글씨로 ‘근조(謹弔)’라 쓰여 있다.

그의 대통령 재임시절에도 근조라는 말이 있었다. 그땐 ‘근조국회(謹弔國會)’였었다. 아마 국어사전에 ‘신어 <사회>’로 올라가 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안을 가결한 국회에 대하여 크게 반대하는 일반 시민들이 국회도 이제 사망한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잘못된 말이다. 그때 그들은 죽었는데, 그래 ‘삼가 죽은 국회에 대해 애도를 표한다’는 근조를 달았는데, 죽지 않았다.

그때 나는 상장을 달지 못했다.

상장을 다는 게 부끄러워서였다.


어제, 오늘 일부러 매스컴을 접하지 않았다.

신문도, TV도-, 보아도 되고 아니 보아도 된다면 모르겠거니와, 보면 마음이 불편하니 아니 보는 것이 상책이다.

이 글을 쓰는 책상 앞 창가 한 귀퉁이로 그제 내건 반기가 보인다. 아침바람에 깃 폭이 살짝 살아난다.

오늘은 상장을 달고 집을 나서야겠다.

도덕, 정의, 순수, 열정이 시험지의 선택지로 된, 이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아파트 창밖의 하늘은 참 파랗다.


2009. 오월 스므이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닷샛날.

         간호윤

 

 

어느 님께서 올려 놓으신 '아기'를 놀린 노간지'라는 제목의 사진입니다.

언제 우리는 또 다시 저러한 정치인을,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요?

'없는 다리도 놓아주는 것이 정치인'이라는 말도 있는 이 나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