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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 3. 20:10중앙대/실용한문

<到來한 千字文 時代를 有感함>

 

그리스의 神 프루크루스테스(Procrustes)는 짧은 침대와 큰 침대 둘이 있었다. 사람을 끌어들여 키가 크면 작은 침대에, 키가 작으면 큰 침대에 눕혔다. 길면 손발을 잘랐고 모자라면 억지로 늘였다. 프루크루스테스에게 잡혀와 침대에 뉘인 자들은 모두 죽었다.

 

‘敎育’이란 美名下에 벌어지는 모지락스런 어른들의 工夫 商品化가 무섭다.

이런 時流를 타고 漢字 學習 또한 갖은 모양으로 學生들에게 짐을 지운다. 그 중, 『千字文』을 傳家의 寶刀 처럼 휘두른다. 인터넷 ○○文庫 들어가 『천자문』에 관한 책을 찾아보니 무려 600여 卷이 넘게 뜬다. 학생들이 있는 집에는 어김없이 『천자문』 한 권쯤은 예사로이 볼 수 있다. 가히 『천자문』의 華麗한 復活이다.

端的으로 말한다. 『천자문』을 배우느니, 차라리 『明心寶鑑』이나 『推句』 등을 학습케 하는 것이 낫다.

 

마을의 꼬마 녀석이 천자문을 배우는데 읽기를 싫어하여 꾸짖었답니다. 그랬더니 녀석이 말하기를, “하늘을 보니 파랗기 만한데 ‘하늘 천天’자는 푸르지가 않아요. 이 때문에 읽기 싫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아이의 총명함이 창힐을 주려 죽일만합니다.

里中孺子 爲授千字文 呵其厭讀 曰 視天蒼蒼 天字不碧 是以厭耳 此我聰明 餒煞蒼頡

 

燕巖 朴趾源(1737-1805)의 「答厓蒼之三」이란 글이다. 全文 겨우 서른 넉자에 불과한 글이지만 우리에게 示唆해주는 바가 많다. 어린아이와 先生의 對話를 통해 연암은 자신의 言語認識을 재미있게 드러냈지만 저기에 『천자문』의 虛가 있다.

純眞無垢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본 하늘은 그저 파랄 뿐이다. 그런데 ‘하늘 천(天)’자에는 전혀 그런 내색조차 없다. 『천자문』의 첫 자부터 이러하니 999자를 어떻게 堪當해 내겠는가. 그러니 ‘읽기 싫다’고 외치는 어린 아이의 내심을 똥겨주는 말이렷다.

사실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이 ‘天地玄黃’이란 이 넉 자의 풀이는 쉽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 아닌가? 그렇다면 저 꼬마둥이처럼 글자 속으로 좀 들어가 보자. ‘하늘이 왜 검지요?’

……?

아마도 이에 대한 답은 東西古今을 無不通知로 넘나들이하는 碩學 선생이라야 可能하지 않을까?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풀어 말할 수 없는, 宇宙의 眞理를 담은 妙句이다. 그러니 저 아이만 나무랄게 아니다. 선생이 제대로 說明치 못 하니 아이들은 외울 뿐, 다음부터는 공부란 그러려니 하고 그저 염불 외듯 읊어 댈 뿐이다.

연암 선생이 저 글을 쓴 이유를 좀 더 살펴보자.

저 위의 짧은 글은 便紙이다. 연암과 후일 척을 두고 지낸 擬古主義者 창애 兪漢雋이란 이에게 보낸 것이라는 점을 注意한다면 意味가 例事롭지 않다. 유한준은 秦漢古文을 追從하는 文章家로 이름이 높았던 이이기 때문이다.

유한준과 진한고문은 두어 文段 아래서 다시 보고 말을 좀 돌려 보자.

종종 人生板의 行馬法을 攄得한 이들은 妙手를 잘 둔다. 그것은 시대와 適當한 妥協을 벌이는 것이다. 이른바 社會的으로 公認된 ‘觀念’ 틀거지에 스스로를 가두고 世上을 바라본다는 의미이다. 저 시절, 저러한 눈으로 『천자문』을 바라보니 이보다 더 좋은 글은 없었다. 혹 있다손 치더라도, 『천자문』을 代替할만한 새로운 글을 만들 자신도 없으니, 굳이 그러한 생각을 他人들에게 엿보일 이유가 무에 있겠는가.

그래서 연암은 「鐘北小選自序」에서 창힐이 글자를 만든 뜻을 크게 여기지 않았다. 연암은 “글자를 만들 때 內容을 들어보고 形象을 그려내며 또 그 형상과 義를 빌려서 쓴 것(造字亦不過 曲情盡形 轉借象義如 是而文矣)”이라고만 하였다. 연암은 창힐이 ‘내용을 들어보고 형상을 그려내’ 漢字를 처음 만들었듯이, 사람의 글인 人之文은 늘 만들어 진다는 의미로 앞 문장의 저 글을 써놓은 것이다.

쉽게 풀어 보자.

연암의 말은 창힐이 한자를 만들 때 새의 발자국을 보고 ‘창의적으로 만든 것일 뿐’이라는 소리이다. 당연히 천자문은 인지문의 定型이 아니다. 맞지 않으면 고쳐야하는 것이고, 변하지 않는 사물이 없듯이 언어 또한 固定的일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당대의 문장가들, 이 편지를 받는 유한준 같은 이들은 ‘문필진한’이니, ‘시필성당’이니를 외워대며, 『천자문』을 아이들에게 강요하였다. ‘文必秦漢’은 문장을 하려면 선진양한을 본받아야 하고, ‘詩必盛唐’은 시를 지으려면 盛唐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는 事大主義의 典型的 思考 아닌가. 연암은 『천자문』을 아이들에게 强要하는 것이 이렇듯 고정된 사고를 暴壓的으로 학습시키는 못된 행동으로 여겼다. ‘아이의 聰明함이 한자를 만든 창힐을 주려 죽일 만하다’는, 이 맺음 말결에서 『천자문』 학습의 잘못됨을 경고하는 연암의 意圖를 確然히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연암 혼자만이 아니었다.

中國 梁나라의 周興嗣가 武帝의 命에 따라 지었다는 이 『천자문』은, 우리나라에서 어린아이들의 學習敎材로 널리 인식되었음은 분명하다. 『日本書紀』에 百濟의 王仁이 일본에 『천자문』과 『論語』를 전하였다는 記錄도 있으니 우리와의 親分은 꽤 깊다. 이 기록이 285년이니 말이다. 허나 『천자문』은 1句 4字 250구, 모두 1,000자로 된 古詩이기에, 註釋 없이는 理解하기 어려운 部分이 지나치게 많다. 당연히 여러 先覺者들에게 批判의 對象이 되었고, 특히 朝鮮後期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학자들은 더욱 그러하였다. 연암 이외에 代表的인 학자를 들자면 丁若鏞 선생이다.

정약용 선생은 『談叢外記』에 실린 그의 「千字文不可讀說」이라는 글에서 『천자문』은 어린 아이들에게 暗記爲主의 문자 학습을 하도록 강요하여, 實際 經驗世界와 遊離시키는 結果를 招來한다고 연암과 같은 見解를 披瀝하였다. 즉, 『천자문』은 天文槪念에서 色彩槪念으로, 또 다시 宇宙槪念으로 急激한 思考轉換을 하기에, 어린 아이들로 하여금 事物에 대한 一貫性 있는 이해를 喪失하게 한다는 主張이다. 『茶山詩文集』 제17권 「贈言」‘반산 정수칠에게 주는 말’에서는 『천자문』의 弊害를 더욱 直說的으로 써놓았다.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徐居正의 『類合』과 같은 것은 비록『爾雅』와 『急就篇』의 雅淡하고 바른 것에는 미치지 못하나 周興嗣의 『천자문』보다는 낫다. 玄․黃이라는 글자만 읽고, 靑ㆍ赤ㆍ黑ㆍ白 等等 그 部類에 대해서 다 익히지 않으면 어떻게 아이들의 知識을 길러 줄 수 있겠는가? 初學者가 『천자문』을 읽는 것이 우리나라의 제일 나쁜 더러운 버릇이다.”

 

저러한 선각께서 “이것은 우리나라의 제일 나쁜 더러운 버릇이다(最是吾東之陋習)”라고 까지 極言을 하셨거늘, 오늘날 모든 어린 아이들의 冊床에 『천자문』이 놓였으니 어찌된 셈인가?

『천자문』으로 공부깨나 한 분에게 黥을 칠 일인지도 모르겠으나, ‘비단보’에 개똥’이라는 우리네 俗談을 생각해봄직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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