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조론

2008. 12. 15. 11:14중앙대/실용한문

志操論 -變節者를 爲하여 조지훈

 

 

지조란 것은 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信念이요, 눈물겨운 情性이며, 냉철한 確執이요, 고귀한 鬪爭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敎化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苛酷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評價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指導者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一朝에 陷穽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無節制와 背信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尊敬하고 그 困苦를 이해할 뿐 아니라 安心하고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이기 때문에 지조 없는 지도자, 배신하는 변절자들을 慨歎하고 憐憫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驚醒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敎養人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敎養人과 指導者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人格的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識見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지사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 운동을 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 다 지사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政黨 運動의 단계에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들에게 선비의 森嚴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 ― 정당 운동을 통한 정치도 國利民福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政商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 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口腹과 名利를 위한 浮動은 無志操로 규탄되어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權謀術數에 능한 職業政治人보다 志士的 品格의 정치 지도자를 더 대망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衷情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廉潔公正 淸白剛毅한 志士政治만이 이 국운을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 모든 정치 지도자에 대하여 지조의 깊이를 요청하고 변절의 惡風을 唾罵하는 것은 백성의 눈물겨운 호소이기도 하다. 志操와 貞操는 다 같이 절개에 속한다. 지조는 精神的인 것이고, 정조는 肉體的인 것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지조의 변절도 육체 생활의 利慾에 매수된 것이요, 정조의 부정도 정신의 쾌락에 대한 방종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정치인의 무절제와 장사꾼적인 이욕의 계교와 淫婦的 환락의 耽惑이 합쳐서 놀아난 것이라면 과연 極言이 될 것인가.

<下略>

 

'중앙대 > 실용한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료  (0) 2009.03.03
모자철학  (0) 2008.12.15
청춘예찬  (0) 2008.12.15
차라리 怪物을 取하리라   (0) 2008.12.15
노마디즘  (0) 2008.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