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工)’자형의 인물

2009. 2. 16. 18:52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공(工)’자형의 인물

 

염치없는 지식인들이 어제, 오늘 신문지상에 이름 석 자를 들이댄다. 아니, 행태로 보아서는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 영원무궁할 형세이다.

어릴 적에 장마철이 되면 할머니는 긴 빗자루로 호박꽃을 때리곤 하셨다. 호박꽃은 이 매질에 떨어지고 잎은 찢기지만, 꽃에 있던 꽃가루가 빗자루에 묻어 다른 호박꽃잎에 옮겨 놓는다. 튼실한 열매는 여기서 맺히는 것이다.

하나마나한 소리이련마는 공부는 우리를 바로 잡아 튼실한 삶을 만들어주는 저 빗자루요, 도지개다. 도지개란, 틈이 나거나 뒤틀린 활을 바로 잡는 틀이란 의미이다. 그래 저렇듯 빗자루 공부, 도지개 공부를 착실히 한무릎공부해낸 이들이 ‘예의’, ‘윤리’, ‘염치’, ‘정의’ 따위의 옷을 갖추어 입고 우리 사회를 이끄는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허나, 공부가 출세의 수단으로 격하된 지금, 붉은 글자로 ‘지식인’이란 만장(輓章)이라도 써야하려나 보다.

그래,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지식인상을 이렇게 조심스럽게 그려본다.

공부(工夫)의 ‘공(工)’자형의 인물이다.

맨위:󰡈��: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다방면의 견문을 갖춘 사람) 중간: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 맨아래:󰡈��:휴머니스트(humanist:인문적 교양을 갖춘 사람)

한 영역에서 엘리트로 인정받으려면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여기에 다방면의 견문을 얹어 폭 넓은 시야를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을 떠받치는 인문적 교양이다.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가 뇌의 소관이라면 ‘휴머니스트’는 인문적 교양을 담당하는 마음의 영역이다. 뇌에는 아픔을 느끼는 기관이 없다.(뇌수술은 환자의 정상적인 의식상태에서 하는 경우가 많다한다.) 그래 아픔을 느낄 줄 아는 가슴이 필요하다. 지식과 견문을 담당하는 이성적인 뇌와 인문적 교양을 담당하는 감성적인 가슴이 조화를 이룰 때만이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예의’, ‘윤리’, ‘염치’, ‘정의’ 따위가 그 인문적 양심이다.

이 인문적 양심이야말로 ‘바람직한 지식인상’의 바탕이요, ‘도덕적 해이’의 방부제다. 공부하는 이에게서 저러한 인문적 양심을 발라내면 무엇이 남겠는가.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이런 <하여가何如歌>류의 삶-, 남의 눈비음을 맞추기 위한 지식이라면 저 앞의 향원밖에 더 되겠는가. 그래 ‘공부工夫’를 하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벽癖 하나쯤은 있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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