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1류 공무원, 김수팽

2009. 2. 12. 16:39글쓰기/이 세상은 사각의 정글이 아니다!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범해서이다 -조선의 1류 공무원, 김수팽.

 

 

탁지부(度支部)의 창고에 나라 보물로 저장한 금바둑쇠 은바둑쇠가 수백만 개가 있었다. 이것을 검사할 때에 판서가 한 개를 가져가거늘 수팽이 나아가 말했다.

“무엇에 쓰시려고 하십니까?”

판서가 말하였다.“어린 손자에게 주려고 한다.”

수팽이 대답하지 않고는 금 바둑쇠 한 움큼을 취하야 소매에 넣으니 판서가 말하였다.

“무슨 연유로 이것을 그렇게 많이 가져가는 게냐.”

수팽이 말하였다.

“소인은 내외 증손자가 많아서 각기 한 개씩을 주려한다면 이것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얼굴빛을 바로하고 말했다.

“이는 나라보물이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에 대비하여 충당하려 대대로 이것을 전한 것입니다. 대감이 손자에게 주신다하니 이것은 공적인 물건을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대감의 체통으로 크게 옳지 않은 것이며 또 대감이 한 개를 취하시면 참판이 또한 가져갈 것이요, 일부 관료가 각자 취할 것이요, 서리 수백 명이 또한 가져갈 것입니다. 이는 이른바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범해서이다.’라는 것입니다. 가져가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간호윤, <기인기사>, 푸른역사, 2008에서.

 

‘법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부터 범해서이다’

가망 없는 기대일지 모르나 김수팽과 같은 공무원을 기대하며 잔망스런 사설을 늘어놓습니다.

신문에서 아래와 같은 기사를 보았습니다.

 

국정홍보처의 한 공무원이 “우리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했다 한다. 그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하는 자리에서였다. …

[○○신문] 2008년 01월 05일(토)

 

‘영혼이 없다’면 산사람이 아니거늘, 우리 눈에 보이는 저이는 뭐란 말입니까. 아마 우리가 허깨비를 보고 있나 봅니다. 건강한 나라의 필요조건이 김수팽과 같은 줏대와 청렴도를 지닌 공무원임은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 공무원은 나라의 양심이요,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관가 돼지 배 앓는 격’이라는 속담이 정녕 저이들에게 써야할 듯 싶습니다.(‘관가 돼지 배 앓는 격’은 한자로 관저복통(官猪腹痛)이라고 한다. 이 속담은 ‘관가의 돼지가 배를 앓거나 말거나 자기와는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즉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어서 아랑곳하지 않을 때 쓰는 속담.) 성공한 나라를 보면 저렇듯 언죽번죽한 공무원은 없습니다.

 

속성 이(李)요, 호를 백암(柏庵)이라 하는 성총(性聰, 1631 ~ 1700)이란 스님이 계셨습니다.

“‘심불참(心不懺:마음은 후회 없이’, ‘면불괴(面不愧:얼굴은 부끄러움 없이)’, ‘요불굴(腰不屈)허리는 굽힘 없이(아첨하지 말라)’”이란 말씀을 남기셨지요. 후회할 짓 말고, 부끄러운 짓 말고, 아첨하지 말고, 세상살이 힘들어도 당당하게 살라는 뜻입니다.

스님도 저러하거늘, 하물며 국가의 높은 자리에 앉아계신 공무원들께서 ‘저러한 짓’과 통성명이나 해대서야 어디 쓰겠습니다. 백성들이 부끄럽습니다. 영혼이 없다하는 분들에게 육두문자(肉頭文字)는 쓸 수 없으니, 문자풍월로 내 속내를 놓아 볼까합니다.

“예끼, 천탈관득일점(天脫冠得一點)에 내실장횡일대(乃失杖橫一帶)!”

“효제충신예의염(孝悌忠信禮義廉恥)에 일이삼사오육칠(一二三四五六七)!

두 번째만 간략히 설명하겠습니다.

‘무치망팔(無恥忘八)’이라는 뜻입니다. 원래 앞 구절은 ‘효제충신예의염치’이지요. 그런데 ‘치(恥)’가 없습니다. 그러니 ‘무치(無恥)’요, 해석하자면 ‘부끄러움을 모른다’입니다.

앞 구절로 미루어 ‘일이삼사오육칠’이 아니라, ‘일이삼사오육칠팔’이지요. 즉 ‘팔’이 없습니다. 그러니 ‘망팔(忘八)’이지요. 여기서 ‘팔(八)’은 삼강(三綱)에 오륜(五倫)을 더한 것이니, 인간의 기본 윤리인 삼강과 오륜이 없다는 뜻입니다.

‘욕은 덕담’이요, ‘약’이라 하였으니, 선인들이 쓰던 덕담 한 마디 해보았습니다.

허나, 그저 속말일 뿐입니다.